요즘 기업 마케팅의 대세는 캐릭터다. 28살 짱구(1992년 첫방송)부터 9살 라인프렌즈(2011년 출시)까지 나이불문 낯익은 얼굴들이 제품 홍보 전면에 나서고 있다. 30대 이상에겐 향수를 불러일으켜서, 이모티콘을 자주 쓰는 10~20대 사이에선 친숙해서 인기다. <편집자 주>
① 이랜드·야쿠르트·매일유업…짱구에서 라인프렌즈까지
(CNB저널 = 선명규 기자)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지난 18일 이랜드월드의 SPA 브랜드 스파오 명동점 4층. 스피커에서 추억의 만화 카드캡터 체리 OST가 흘러나오자 여성 고객 대부분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층은 스파오가 카드캡터 체리, 짱구, 해리포터 등 인기 영화와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과 협업한 상품들로 꾸민 ‘컬래버레이션 그래픽 티셔츠 아일랜드’. 곳곳에 포스터를 걸고 포토존을 만들어 만화영화의 한 장면으로 들어간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만난 대학원생 유연희씨는 “어릴 때 체리는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며 “체리 스타일의 블라우스, 스커트 등 갖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옛 기억에 젖어 흥이 돋은 건 유씨뿐 아니다. 다음 선곡으로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하는 세일러문 주제곡이 나오자 또 다시 많은 여성 손님들의 입꼬리가 들썩거렸다.
‘방탄소년단’을 마신다?
요즘 마트, 의류 매장 등 유통가에선 익숙한 얼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기업들이 인지도 높은 캐릭터를 내세운 제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음료업계를 평정한 건 방탄소년단이다. 한국야쿠르트는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제품에 방탄소년단을 ‘그려’ 넣었다. 멤버들의 사진이 아닌,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Art Nouveau)’ 풍으로 각자의 매력을 해석해 패키지에 반영했다. 로스팅 일자가 표시된 스티커에 큼지막하게 ‘BTS’를 넣어 협업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매일유업은 한정판으로 라인프렌즈와 방탄소년단이 협업해 만든 캐릭터인 BT21을 활용한 제품을 내놨다. 지난달부터 온라인쇼핑사이트 G마켓에서 ‘썬업 브이플랜 BT21 캐릭터 에디션 스페셜 패키지’ 세트를 3000개만 선착순으로 판매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고민보다 GO’ ‘너답게 RUN’ 등 방탄소년단 멤버 개개인의 메시지를 담은 제품을 출시해 팬들 사이에서 ‘필수 소장템’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반대로 디저트 제품이 캐릭터 속으로 들어간 경우도 있다. 오리온은 지난해 10월 ‘초코파이 하우스’ 매장을 열었는데, 장소가 라인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 명동역점 안이다. 대형 브라운 인형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촬영 스폿으로 자리매김한 이곳에서 글로벌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 구매욕 자극
소비자 반응도 좋다. 이랜드가 작년 말 선보인 ‘스파오 X 해리포터’ 컬래버레이션 상품은 온라인에서 4분 만에 준비한 3만장이 전부 팔렸고, 매장에선 25만장이 2시간 만에 완판을 기록했다. 출시 당일 스파오 강남점, 홍대점, 명동점 등 주요 매장에선 오픈 1시간 전부터 100여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도 낳았다.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방탄소년단 스페셜패키지’의 경우 빈병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등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이처럼 캐릭터와 손잡은 제품들의 인기 비결은 뭘까? 업계에선 소비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의 소비심리를 자극한 것을 우선으로 꼽는다.
한 관계자는 CNB에 “요즘 가장 활발한 소비를 하고 있는 20~30대들은 구매할 때 제품 성능 이외의 것, 즉 스토리까지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며 “성장을 함께 한 만화영화 속 인물, 무대 위 스타 등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캐릭터 상품을 구매하는 요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② 현대차·동화약품·오리온…“이런 협업은 처음”
‘10시 10분을 가리키며 치켜뜬 눈. 빨강과 금색이 섞인 피부색’.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인기 캐릭터 아이언맨이 차와 한 몸이 됐다. 현대자동차의 코나다.
차량 윗부분에 크게 얼굴을 새겨 차체가 몸체로 보인다. 철안(鐵顔)은 바퀴와 문에도 장착됐다. 짙은 회색 바탕에 아이언맨을 상징하는 레드 컬러를 포인트로 살짝살짝 입혀 특징만을 부각시켰다. 정면 램프에 불이 들어오면 출격을 마친 아이언맨처럼 안광이 번뜩인다. 지난 1월 1700대 한정판으로 국내 시장에 나온 ‘코나 아이언맨 에디션’이다.
기업과 캐릭터 간 협업에선 ‘외모’만 빌려와 제품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자체로도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이다. ‘코나 아이언맨 에디션’은 손잡은 캐릭터의 설정을 대거 가져왔다는 점에서 차별화 된다. 예컨대 시트에는 영화 속 토니 스타크(아이언맨)가 운영하는 회사명인 ‘스타크인더스트리’ 로고가 박혀있다. 크래쉬패드에는 그의 서명도 새겨져 있다. 차에 타는 순간 영화 속으로 탑승한다는 착각이 드는 이유다.
현대차는 이 차량 개발을 위해 마블과 2년 동안 협업했다. 세계 최초 마블 캐릭터 적용 양산차라는 기록을 남기면서 동시에 세계 3대 디자인상(if 디자인상·레드닷 디자인상·IDEA 디자인상)을 석권하는 등 디자인적 가치도 인정받았다.
마블을 선호하는 것은 은행권도 마찬가지다. SC제일은행이 대표적.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등 히어로를 새긴 ‘마블 체크카드’를 연이어 선보이며 마니아들의 소장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임 속 주인공된 ‘고래밥’
‘과자로 캐릭터를 만든다?’ 이런 독특한 발상에서 개발된 게임이 있다. 오리온과 게임업체 게임펍이 모바일용으로 만든 ‘고래밥: 버블슈터’다. 익히 알려진 영화나 만화 속 등장인물을 제품에 적용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과자인 ‘고래밥’을 캐릭터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역발상이다.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퍼즐게임을 지향하는 이 게임은 유저들의 평점과 재접속률,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하는 ‘구글 추천게임’에 오르기도 했다.
브랜드가 오래 되면 로고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대중에게 각인되기도 한다. 여기, 유명한 두 로고가 만나 시너지를 폭발시킨 사례가 있다. 패션 브랜드 게스와 동화약품의 100년 넘은 장수 제품 부채표 활명수가 만나 탄생한 ‘게스 활명수’다.
초록색 바탕에 반듯하게 쓰인 ‘활명수’로 유명한 ‘문양’이 게스 티셔츠에 프린트돼 전에 없던 디자인이 탄생했다. 출시 직후 온라인 패션커뮤니티에선 “진정한 뉴트로(새로움과 복고의 합성어·New+Retro)란 이런 것” 같은 찬사가 쏟아졌다. 지난해 봄, 게스와 동화약품이 한정판으로 내놓은 티셔츠 4종, 청바지 1종, 가방 1종 중 일부는 현재도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거래가 이뤄질 정도로 인기다.
“티셔츠인가 소화제인가?”
둘의 만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화약품은 지난해 창립 121주년을 맞은 활명수 기념판을 선보였는데, 두 로고를 적절히 배합해 새로움을 창조했다. 청바지를 연상시키는 바탕 위에 게스의 상징인 역삼각형 로고와 물음표를 넣고, 그 안에 활명수라는 이름을 새겨 이질감 없는 컬래버레이션을 완성했다.
동화약품 측은 게스와의 협업에 대해 “새로운 도전을 통해 젊은 세대와 더욱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캐릭터를 찾는 건 기업뿐 아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5일 카카오프렌즈의 ‘어피치’를 홍보대사로 임명한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어피치의 역할은 일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홍보 활동.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는 점에서 전격 발탁됐다. 이제 ‘나라의 얼굴’이 되기까지 하는 요즘은, 그야말로 캐릭터 전성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