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5호 옥송이⁄ 2019.04.17 17:48:37
‘통큰 치킨’으로 논란의 주인공이 됐던 롯데마트가 이번에는 ‘극한 한우’로 화제를 일으켰다. 비록 단기성 행사지만, 일반 한우의 절반 수준인 극한 한우의 가격에 소비자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지난 통큰 치킨 당시와 달리 부정적 논란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롯데마트가 잘했다’는 소비자 의견이 많다. 왜일까. 유통 대기업의 축산 과정 참여로 드러난 ‘저렴한 한우’의 가능성을 살펴봤다.
‘100g에 4000원대 한우’에 엇갈린 반응
지난 2010년 ‘통큰 치킨’으로 파격을 선보인 바 있는 롯데마트가 ‘파격 신작’을 내놨다. 21번째 생일을 맞아 진행한 ‘극한 할인’ 행사를 통해서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17일까지 ‘극한 도전’을 주제로 진행된 해당 행사는 총 1600여 품목의 상품이 할인됐다. 이처럼 대규모로 진행된 행사지만,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단연 ‘극한 한우’다. 비록 단기성이지만 ‘프리미엄 식품’의 대명사 한우를 정상가의 약 절반 수준에 판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4일부터 10일까지 진행한 ‘극한 한우’는 100g당 9200원에 판매되는 1등급 한우 등심을 4968원, 정상가 4400원의 1등급 한우 정육은 3268원, 1만 9800원에 판매되던 한우통우족은 50%인 9900원에 판매했다.
이 같은 놀라운 가격 때문에 극한 한우는 ‘통큰 치킨’에 비견됐다. 2010년 출시됐던 통큰 치킨은 당시 한 바스킷 당 5000원으로, 너무 저렴한 가격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됐다. 특히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의 큰 반발로 인해 통큰 치킨은 자취를 감춰야 했다.
그러나 극한 한우에 대한 반응은 다르다. 특히 소비자들은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4일 행사 시작일과 동시에 저렴하게 한우를 구매했다는 소비자 A씨는 “아무리 ‘한우가 좋다’고 해도, 솔직히 비싸서 엄두가 안 난다. 한 번씩 집에서 소고기를 먹을 때도 호주산에 손이 가는 이유”라며 “마침 이번 행사를 알게 돼서 저렴하고 기분 좋게 한우를 구매했다. 앞으로도 한우 행사를 자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정육점을 운영하는 소매업자들은 우려를 금치 못한다. 응암동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B씨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지나갔으면 한다”며 “만약 대기업들이 축산 유통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면 이는 명백히 골목상권 죽이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극한 한우는 롯데마트가 창립을 맞이해 진행한 ‘행사’지만, 이처럼 소매업자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롯데마트가 ‘매매 참가인 자격’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매매참가인 자격이 무엇이기에
한우는 복잡한 유통 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오른다. 일반적으로 ‘농가-수집반출상(우시장)-도축장-도매-소매-소비자’ 순으로, 적어도 6~7단계를 거쳐야 한다. 한우가 비싼 이유는 이처럼 복잡하고 과도한 유통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6~7단계에 이르는 유통단계만 줄여도 소매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 꾸준히 지적돼왔다. 즉, 생산자로부터 소비자 손에 이르기까지 단계가 너무 많아 불필요한 유통 마진이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 됐다는 것.
그렇다면 최근 롯데마트는 어떻게 ‘파격적인’ 가격에 한우를 판매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앞서 언급한 ‘매매 참가인 자격’ 때문이다. 롯데마트가 이번 행사에 앞서 취득한 ‘매매 참가인 자격’은 말 그대로 한우 매매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다. 한우 공판장 또는 경매장에서 이뤄지는 매매 단계에서부터 직접 참여함으로서, 길고 복잡한 유통 단계를 축소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 롯데마트 측의 설명이다.
유통 과정을 줄인 덕분에 저렴하게 판매된 한우는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갔지만, 정육점을 운영하는 소매업자들이 우려를 표하는 이유 역시 확연히 줄어든 유통 과정 때문이다.
롯데마트가 매매 참가인 자격을 획득한 만큼 지속적으로 저렴한 한우를 공급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정책적인 유통과정 개선이 아닌, 대형마트 등 민간업자의 참여로 인해 한우 유통과정이 줄어들거나 크게 개선될 경우 소매업자들의 경쟁력이 취약해지기 쉽다는 판단이다.
"골목상권 죽이기" vs "유통 구조개선 신호탄"
유통 대기업들의 한우 유통 참여로 한우 가격이 크게 절감된다면 불거질 시사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소매업자들의 우려대로 소상공인·골목상권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종 소비자들은 주로 대형마트나 정육점을 통해 한우를 비롯한 고기를 소비한다. 유통 단계를 과감히 생략한 대형마트의 한우 판매가 상시 펼쳐진다면, 소상공인의 매출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산지 특성 역시 훼손될 우려가 있다. 한우는 고급화 과정을 거치면서 ‘브랜드화’ 됐다. 한우 산지마다 고유한 특성에 따른 ‘이름’이 붙여졌고, 현재는 강원한우, 경주천년한우, 의성마늘한우, 대관령한우, 합천황토한우 등 한우가 유명한 지역마다 대표 한우 브랜드가 있을 정도다.
따라서 대기업이 한우 유통에 본격 뛰어든다면, 대형마트의 저렴한 가격 때문에 각 지역의 한우 브랜드와 산지가 특색을 잃거나 대형 마트 아래 편입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장점은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한 복잡한 축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할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소비자들이 적정한 가격에 좋은 제품을 소비할 수 있게 돼, 궁극적으로는 소비자 권익 증진에 보탬이 된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의 한우 및 축산물 유통과정 참여는 골목상권 죽이기 논란과 동시에, 유통구조 개선의 신호탄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가 상충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극한 한우처럼 초특가 가격으로 한우를 연중 판매하는 것을 무리가 있다. 시세의 영향도 있고, 120여 개에 달하는 롯데마트 전점에 공급할만한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도 “연중 내내 진행은 어렵겠지만, 유통과정을 줄인 만큼 저렴한 가격의 한우 행사는 되는 대로 상시 진행할 계획”이라며 지속적인 한우 공급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쟁사인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도 저렴한 한우를 공급하기 위한 행사를 비롯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마트 측은 지난 2010년 축산물공판장에서 직접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매매 참가인 자격을 얻은 이후, 현재까지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또 2011년에는 미트센터를 업계 최초로 설립했다. 이는 육류처리를 간소화 해 공급가를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는 계획 하에 진행된 것으로, 홈플러스도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천안에 미트센터를 설립하고 있다.
이처럼 대형마트 업계의 축산물 유통 간소화를 통한 저렴한 한우 공급이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한우 유통 구조개선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