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7호 김금영⁄ 2019.04.30 09:48:45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체험’하는 자리다.”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전을 마련한 아드리안 돈스젤만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매니징 디렉터와 김용관 ‘마스트미디어’ 대표이사는 입을 모아 말했다.
2016년 중국 베이징, 올해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거쳐 이번엔 서울에서 개막한 이번 전시를 위해 마스트미디어와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이 손을 잡았다. 김용관 대표는 “7~8년 전 쯤 멀티미디어 전시, 특히 반 고흐의 전시와 관련된 제안을 해외에서 많이 받았다. 벽에 영상을 깔고 공간 전체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방식도 좋지만 ‘좀 더 반 고흐에 대해 알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더 기다렸고 이후 그레뱅 뮤지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며 “이때 반 고흐의 방이 재현된 모습을 보고 ‘이제 전시를 열어봐도 되겠다’는 생각에 조사를 시작했고,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의 존재를 알고 직접 연락했다”고 전시가 열리게 된 과정을 밝혔다.
10년의 세월 동안 850점이 넘는 유화와 1200점이 넘는 소묘를 남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은 현 시대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끼치고 있으며, 그의 작업을 주목하는 전시도 꾸준히 열려 왔다. 아드리안 돈스젤만 디렉터는 “반 고흐의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관심과 수요는 끊임없이 높아져 왔다. 이번 전시는 관객들의 열정에 보답하고자 마련됐다”고 전시 배경을 밝혔다.
수요가 많다는 것은 인기의 반증이기도 하지만 또 너무 거듭되다 보면 뻔해질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수많은 반 고흐 주제 전시들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번 전시가 내세우는 차별화는 바로 ‘체험’. 기존 멀티미디어 전시의 경우 벽에 움직이는 영상을 투여해 수동적이고 정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면, 이번 전시는 더 나아가 아예 관람객이 작품의 일부로 들어가 체험하는 방식에 중점을 뒀다는 설명이다.
아드리안 돈스젤만 디렉터는 “반 고흐의 작품은 작은 자극에도 훼손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작품이 다른 장소로 대여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일부 작품의 경우에는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도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그래서 작품 원본을 운반하는 대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콘텐츠로 관람객이 작가 반 고흐의 삶에 들어가서 직접 체험하는 방식에 중점을 뒀다. 전시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볼 수 있다. 침대에 누워볼 수도, 프레임 안에 직접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즉 이번 전시는 시각뿐 아니라 촉각, 청각까지 동원한다. 체험을 위해 설계된 전시의 모든 요소는 테마파크, 관광 명소, 라이브 공연 등에 사용되는 첨단 기술을 융합했고, 중앙 제어실에서 전시의 모든 부분을 통제한다.
후지필름 유럽과 협업해 3D 프린터 기술을 개발한 반 고흐 미술관은 9개의 엄선된 반 고흐의 명화를 한정적으로 인쇄한 ‘반 고흐 미술관 에디션’을 갖추고 있다. 해당 에디션은 260개 수량으로 제한 생산됐고, 반 고흐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여기에 일련번호를 기록하고 보증을 마쳤다. 이번 전시에서 반 고흐 미술관 에디션의 명화 중 8점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
반 고흐 미술관 에디션 중 8점 소개
구어체로 듣는 오디오 가이드
전시장 각 섹션에 인터랙티브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현미경 테이블에서는 반 고흐가 사용했던 재료, 기법, 도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고, 그의 작품 ‘추수’를 확대한 입체 모형을 통해 특유의 화법인 덧칠하기에 따른 물감층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다.
직접 자화상을 그릴 수 있는 코너가 삼원색 테이블에 마련됐고, 원근틀 그리기 테이블은 원근법의 개념을 좀 더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돕는다. 또한 시간별로 그림자극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돼 전시장 안에 작은 소극장이 마련된 것 같은 느낌도 살렸다. 그림자극은 반 고흐가 예술 작업을 하며 느꼈던 희망, 괴로움 등을 담은 이야기로 구성됐다.
이 모든 체험을 돕는 역할로 오디오 가이드가 사용된다. 김용관 대표는 “기존 전시에서 오디오 가이드가 선택 요소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약 1시간 반 정도 분량의 오디오 가이드가 필수 요소”라고 말했다. 오디오 가이드에 녹음된 내용은 이번 전시의 백미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전시 오디오 가이드의 경우 전시, 작품과 관련된 정보가 담겼지만 이번 전시는 학습용 정보를 나열하는 대신 ‘반 고흐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를 콘셉트로 내세웠다.
예컨대 반 고흐가 생전 동생 테오 등에게 썼던 수백 통의 편지의 내용을 들려주고, 반 고흐의 죽음에 대한 친구들의 회상 등 그에 대한 당시대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서술형이 아니라 정말 이야기를 들려주듯 구어체로 녹음했다. 따라서 이론적인 어려운 내용보다는 반 고흐와 관련된 일화 등을 중심으로 구성돼 어린 관람객 또한 듣기에 용이하다.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전시장에 발을 들이면 눈앞에 바로 황금색의 밀밭이 펼쳐지며 반 고흐의 격동적인 화풍을 만나는 ‘화가로서의 시작’ 섹션이 시작된다. 이어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긴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파리의 거리와 카페로 이어지는 섹션이 기다린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반 고흐의 그림 속 '감자 먹는 사람들'의 식탁을 그대로 재현한 식탁에 앉거나, 몽마르트의 탕부랭 카페 의자에 앉아볼 수 있다.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 등 실제 카페에서 들릴 법한 소리들이 공간을 채웠다.
전시 공간은 이처럼 반 고흐가 생전에 거닐었던 카페, 마을과 집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그가 느꼈던 환희와 불안, 다양한 상상력을 관람객이 함께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어지는 또 다른 섹션에서는 반 고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페이지로 구분되는 아를에서 탄생한 명작들의 풍경에 들어가 보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노란 집’에 등장하는 커다란 짚더미 위에 누워 머리 위로 하늘의 색이 변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또한 반 고흐가 생전 봤을 꽃핀 과수원과 추수를 맞이한 밭을 전시장에서 바라보는 관람객들은 어느덧 그의 시선에 동화돼 화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빈센트 반 고흐에 다가가게 된다.
고갱과의 설전 후 차차 정신 분열증이 악화되기 시작한 반 고흐의 심리에 집중한 섹션도 마련됐다. 관람객들은 반 고흐가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렸던 유화와 소묘 속 풍경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정신병원의 작업실 창문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면서, 그가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순간들을 묘사하는 반 고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어 생레미의 사이프러스 나무와 올리브 나무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반 고흐의 이야기가 시작됐던 프랑스 북부의 바람 부는 언덕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생전엔 고통스러웠지만 사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반 고흐의 이야기를 담은 섹션은 전시 말미에 마련됐다. 그의 작품 세계를 계승하는 화가, 음악가,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프로젝터 영상에 펼쳐짐과 동시에 가장 최근 경매에 올랐던 반 고흐 작품의 낙찰을 선언하는 망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최후의 섹션.
이곳에서는 반 고흐가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낸 수많은 작품을 모두 모아놓은 미디어월이 펼쳐진다. 모든 작품에 대한 정보가 기재된 미디어월에서는 작품을 하나씩 만져보며 다시 한 번 반 고흐의 삶을 되새겨볼 수 있다. 전시는 우정아트센터에서 8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