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제11차 국제질병분류(ICD-11)에 ‘게임이용 장애’를 포함시키자 보건복지부가 적극 호응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달 30일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보건복지부 차관회의 후 김강립 복지부 차관이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될 만한 필요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됐고 그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고 말하면서 이같은 분위기는 극에 달했다.
반면 문체부는 “복지부가 주도하는 협의체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복지부와 대립하는 입장에 섰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앞선 지난달 9일, 경기도 판교의 게임업계를 방문해 “게임 과이용에 대한 진단이나 징후, 원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밝힌바 있다.
이처럼 양 부처가 완전히 대립되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곤란해 진 것은 중앙 정부다. 실제로 이낙연 총리는 이견 조율을 하겠다며 지난달 28일,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관계부처들은 향후 대응을 놓고 조정되지도 않은 의견을 말해 국민과 업계에 불안을 드려서는 안 된다”고 양 부처에 경고하기도 했다.
이어 이 총리는 “체계적 조사와 연구를 통해 게임이용장애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은 기대된다”면서도 “게임이용자에 대한 부정적 낙인과 국내외 규제로 게임 산업을 위축시킨다는 것은 우려된다”며 곤란해 하는 정부의 입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양자의 입장을 천천히 들여다 보면 사실 ‘게임이용 장애’를 둘러싼 상황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미 복지부는 공정한 입장에서 판단할 위치에 서기에는 과거 행보에서 ‘게임은 질병’이라는 시선을 여과 없이 드러낸 바 있다.
게다가 지난 2015년에는 ‘게임중독,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파괴합니다’라는 문구를 내세운 대중광고를 하는가 하면, 2013년에는 예산을 들여 인터넷게임 중독 선별도구로 개발된 게임 중독 진단 척도 기준까지 발표한 바 있다. 특히 광고와 관련해서는 “프로게이머는 환자냐”는 비꼬는 반응들이 나왔지만 복지부에서는 이에 대해 어떤 의견도 낸 바 없다.
이같은 복지부의 움직임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전통’을 잇는 것으로 보인다. 게임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인 1990년대부터 만화와 함께 공연윤리위원회로 대표되는 검열 기관의 타깃이었으며, 만화가 어린이날 등의 기념일에 모아서 태워지는 ‘분서갱유’ 상황에 처할 때 함께 비토의 대상이 됐던 그 전통이다.
공중파 언론도 이제까지는 게임계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이돌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 공중파 뉴스에서까지 다뤄주지만 국내 게임이 해외에서 히트를 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다뤄주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면 문체부는 최근 논란이 일기 전 까지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나마 현 박양우 장관이 콘텐츠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진흥책을 내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산하 기관장 등이 언론에 기고 글을 내는 것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셧다운제’를 포함해 다양한 규제책이 나와 있고, 아예 ‘게임세’를 걷겠다는 법안까지 올라온 바 있을 정도로 ‘사회악’이라는 낙인이 찍힌 게임계 입장에서는 그동안 불리한 상황에서 여론은 게임은 안좋은 것이라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나마 게임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이 나오는 이유는 국내 게임 산업이 갖고 있는 규모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8년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약 14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게임 산업 규모는 중국, 미국, 일본 세계 4위이며, 영화·음악·출판 등이 포함된 2018년 콘텐츠 전체 수출액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62.1%에 달한다. 대표적인 수출 상품에 끼워 넣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같은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보니 늦었지만 움직임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한국게임개발자협회-한국인디게임협회-스마트폰게임개발자그룹, 그리고 근래 설립된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산하의 게임사 노조들(넥슨, 스마일게이트 등)을 비롯한 게임 제작자 단체들이 공동으로 WHO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다음날인 29일에는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를 비롯한 90여개 단체가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사회악’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엔 게임계의 목소리는 너무 작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게임 중독이 질병인지 아닌지를 다루기는 어려워 보인다. K팝의 10배, 한국 영화의 100배에 달한다는 문화 수출의 황금거위는 이대로 배가 갈라질 것인지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