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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31) 타임드테이블 - 분리된 독백 퍼지는 방백] 낯밤 경계 없앤 인간, 왜 무너져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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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47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19.08.26 09:35:40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스페이스엑스엑스(space xx)에서 진행된 전시 ‘타임드테이블(Timed Table) - 분리된 독백 퍼지는 방백’은 관객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장이 24시간 열려 있었고, 실시간으로 전시장을 촬영한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전시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 - 강정은, 박지인, 박현진, 장우주 - 들은 24시간 동안 깨어있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 그들이 사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물론 해가 뜨면 일어나 활동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한 뒤 잠을 청하는 생활은 아직도 일반적이다. 그러나 밤새 깨어있는 삶 역시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24시간 깨어있어도 크게 심심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에 ‘24시간’을 검색해보면,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제공되는 서비스들에 관한 정보가 쏟아진다. 그런데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것, 그것은 누군가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타임드테이블 - 분리된 독백 퍼지는 방백’에 참여한 작가들은 ‘과연 이 상황이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것일까? 24시간이라는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24시간 깨어있음으로 인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고스란히 공개한다. 작가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정해진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머에 의존해 정해진 노동(작업)을 수행한다. 노동하는 시간 동안에는 어떤 대화와 소통도 불가하다. 시간은 늘어났는데 오히려 더 바빠졌다. 나눔의 시간이 사라졌다. 그렇게 노동해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비눗방울은 만들어지는 순간 사라지고, 크림으로 만든 조각은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전시장 벽은 매번 다른 색으로 칠해져 앞선 노동의 흔적들을 지우고, 거울 퍼즐은 전시가 끝나면 다시 해체될 것이다. 허무함의 감정과 아쉬움의 마음이 밀려온다.


24시간 깨어있게 된 오늘날의 현실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이 시대의 현실이다. 그러나 한 번쯤 24시간이라는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물론 쉽게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오늘 나의 시간표는 어떤 모습인가?

 

장우주, 노력이 지워질 때, 벽에 페인트, 가변설치, 2018, 사진 제공 = 장우주 작가

“‘작품 남지 않는 작품’ 펼치고 생중계”
박지인, 장우주 작가와의 대화


Q. ‘타임드테이블 - 분리된 독백 퍼지는 방백’은 강정은, 박지인, 박현진, 장우주, 네 명의 작가가 함께 기획하고 진행한 전시이다. 24시간 동안 깨어있는 세상, CCTV 영상의 실시간 송출, 인터넷을 통한 감시(관람) 등은 현대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들을 떠올리게 한다. 네 명의 작가가 함께 전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A. 박지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 사이여서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함께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타임드테이블’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전시의 맥락에 각자의 작업이 유동적으로 반응하며 작동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빛이 없는 방’이었다. 만약 빛이 없다면 우리는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대는 24시간의 시대다.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햇빛이 사라진 시간에도 깨어있으며 다양한 활동을 한다. 24시간 돌아가는 사회는 노동이 멈추지 않는 상황을 가져왔다.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한정된 공간에서 인공 빛에 의지해 노동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24시간 노동하게 만드는 조건들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CCTV와 인터넷이 떠올랐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전시장의 모습을 촬영해 인터넷에 공개하게 되었다.

장우주: 근대적 입장에서 24시간은 유토피아(utopia)적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시간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이기도 하다. 시간을 분절해 사용하는 것 자체도 인위적이지만, 24시간이란 시간개념은 더욱 인위적인 시스템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통제와 감시, 노동하며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타임드테이블’은 개인들이 24시간을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함께 기획했음에도 전시 기간 중 네 명의 작가가 모여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현대인들은 각자에게 분담된 시간을 혼자 견뎌야 한다.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음에도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외롭게 자신을 소진하고 있다.
 

박지인, 위로가는 위로, 생크림, 폴라로이드 사진, 가변설치, 2019, 사진 제공 = 박지인 작가

Q. 전시장은 24시간 촬영되고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전시장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작가들뿐 아니라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를 원하지 않는 관객이 생길 수 있다.

A. 박지인: 전시장 내부가 촬영되기 때문에 관객의 얼굴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걱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자신의 모습이 인터넷에 송출되는 방식을 재미있어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그 부분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한 관객은 아직 없었다. 촬영하고, 촬영되는 것에 익숙해진 시대여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강정은, 최소활동, 비눗방울, 음향장비, 가변설치, 2019, 사진 제공 = 강정은 작가

Q. 전시장을 24시간 열어 두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스페이스엑스엑스여서 가능한 일 같기도 하다. 작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밀폐된 장소에서 24시간 노동하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밤에도 전시장이 열려 있다. 전시장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전시장에서 혼자 작업(노동)하고 있으면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A. 박지인: 밤에 오픈된 장소에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전시를 시작하면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전시장 안에는 지정된 작가 혼자 머물지만, 전시장 건물에 지인들이 함께 머물며 도와줬다. 그런데 막상 전시장에 들어서면 무섭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지하 공간에 계속 머물다 보니 낮인지, 밤인지 시간관념 없이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오로지 45분 노동, 15분 휴식을 알리는 타이머에만 의지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작업할 때 무섭다기보다는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작업실에서는 혼자 있어도 행동에 제약이 없으니 외롭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되는데, 전시장에서는 정해진 시간 동안 수칙을 따르며 일정 부분 제약을 받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Q. 박지인 작가는 크림으로 조각을 만든다. 작업의 의미를 설명해주면 좋겠다. 여름이기 때문에 크림이 흘러내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실제 작품을 보니 단단해 보인다. 이전에도 크림으로 작업했던 적이 있는가?

A. 박지인: 크림은 이번에 처음 사용했다. 생크림에 녹말을 더해 조금 더 조밀하고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내려앉아 계속 끌어올리려 노력한다. 크림 조각은 24시간 노동하는 이 시대의 사랑을 다루는 시작점과 같은 오브제이다. 시작점이기 때문에 아직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24시간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대에 우리가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까?’와 같은 회의적 질문을 담고 있다. 크림은 달콤하면서도 쉽게 꺼지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사랑의 인상과 닮았다. 조너선 크레리(Jonathan Crary)의 ‘24/7 잠의 종말’(2013)이나 철학자 한병철의 책을 읽으며 이와 관련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크림으로 조각을 만드는, 불가능해 보이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에 관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박현진, touch, 거울 퍼즐 조각, 가변설치, 2019, 사진 제공 = 박현진 작가

Q. 장우주 작가의 ‘노력이 지워질 때’(2018)는 작가에게 할당된 6시간 동안 전시장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퍼포먼스이다. 매번 벽의 색이 바뀌던데 선택의 기준이 있는가? 6시간 동안 벽을 채우려면 시간 조절이 필요할 것 같다.

A. 장우주: 정해진 색이 있는 것은 아니고 앞서 칠했던 페인트 색을 고려해 결정한다. 단, 흰색에서 시작해 흰색으로 끝낸다는 것은 정해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8번 페인트 색이 바뀌었는데 첫 번째와 여덟 번째 칠한 색이 흰색이었다. 주어진 벽을 6시간 동안 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간이 많이 남는 것은 아니다. 최소 5시간 조금 넘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롤러 브러시에 새겨진 ‘try’라는 글자 부분에만 페인트가 묻기 때문에 일반적인 페인트 칠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선택한 글자는 작가로서 추구하면 할수록 무색해지고 힘들어지는 것들을 함축한다. 이전 전시 때는 ‘new’, ‘anti’와 같은 단어가 적힌 롤러 브러시를 사용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작가는 사명처럼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러나 작업을 진행할수록 새로움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술의 규범도 마찬가지다.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Q. 전시장에 완성된 작품이 놓이지 않고, 작가들이 퍼포먼스를 진행해도 결과물이 남지 않는 상황이 관객들에게 난해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작업을 하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관객들과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부분은 중요하다.

A. 장우주: 관객들이 작품을 마주할 때 세세한 부분까지 다 이해하고 공감하면 좋겠지만 모두에게 완벽히 전달될 수 있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전시가 과연 어느 선까지 친절해져야 하는가에 대해 네 명이 모여 고민을 많이 했다. 거울 퍼즐 조각을 맞추는 박현진 작가의 ‘touch’(2019)나 박지인 작가의 ‘위로가는 위로’(2019)의 경우에는 일시적이긴 하지만 전시장에 결과물이 남아 있다. 그러나 비눗방울을 만드는 호흡 활동을 보여주는 강정은 작가의 ‘최소활동’(2019)과 전시장 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나의 작업은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현장을 보지 않으면 작품 자체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기록이나 자료에 대한 부분도 많이 고민했다. 작가로서 당연히 관객의 존재를 생각하지만, 전적으로 그들에게 맞춰 전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번 전시가 불친절하고 낯설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부분까지도 관심 있어 하는 관객들을 생각하며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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