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8월 일본 차 판매량이 대폭 줄었다. 지난달 일본차 신규 등록 대수는 1398대로 전년 동기 3247대와 비교해 57% 감소했다.
렉서스는 지난해 8월 재고 부족으로 역대 최저 수준의 판매를 기록한 탓에 올해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토요타 59%, 혼다 81%, 닛산 87% 등 엄청난 감소폭을 보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7일 닛산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할 가능성을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차 판매량 감소세는 한동안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당장 8월 판매량에는 1~2개월 전 계약한 이후 대기 시간을 거쳐 8월에 인도된 차량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불매운동의 효과가 제대로 반영된 수치는 더 낮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불매운동의 자발적 주체인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본차에 대한 반발심이 여전히 거센 만큼 불매운동의 영향력이 약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본차 8월 판매량 관련 보도에 누리꾼들은 전년 동월 대비 57%라는 수치에 만족하지 못한 듯 “99.9%로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더욱 거센 불매운동을 전개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불매운동 초기부터 우려되어 온 문제가 9월 이후로 무시할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일본을 겨냥해야 할 냉정한 분노가 방향을 잃고 무분별한 폭주로 변하는 사례를 점점 자주 접하게 되고, 앞으로 그런 사례가 늘어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바로 일본이나 일본차 브랜드가 아닌, 일본차 구매자를 향한 테러 문제다.
국내 최대 자동차 이용자 온라인 커뮤니티인 보배드림 등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본차를 탄다는 이유로 괴롭힘 및 테러를 당한 사례가 게시된다.
침을 뱉어 놓거나 오물을 투척한 경우는 양반이다. 누군가는 백미러가 부서졌고, 못으로 차 문을 긁어놓거나, 바퀴에 펑크를 내거나, 창에 돌을 던져 깨뜨리는 등 심각한 사유재산 손괴 행위에 대한 증언도 나온다.
주유소에서 주유 거부를 당했거나, 도로에서 차선 변경을 방해받았거나, 위협 운전의 대상이 되었다는 하소연도 있다. 위협 운전은 안전 문제와 직결된 심각한 범죄다.
믿기 힘든 것은, 당한 사람들의 게시글 외에 일본차를 보면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느니, 긁어버리겠다느니 하며 스스로 가해자 또는 잠재적 가해자임을 자처하는 발언을 당당히 하는 게시글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차 박살나도 징징대지 마라”며 자신에게 명분이 있다는 태도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본차 테러는 매국노 심판이 아니다. 일본차를 향한 테러 피해자는 역시 대부분 우리 국민일 것이고, 수많은 상품 중 어느 한 브랜드를 선택한 사람일 뿐이다. 그가 치른 구매대금이 전부 일본 자위대 군자금으로 쓰이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그 사람이 진짜 친일파 후손이며 현재 정세에 대해서도 일본 편을 드는 사람이어도, 테러를 해도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폭력은 폭력이고,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
그리고 그나마 그동안은 “이번 사태 이전부터 일본 차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이 무슨 죄냐”며 무분별한 감정적 대응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 많고,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잠재 테러리스트들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역사적으로 평가절하됐다느니” 하며 테러를 합리화하고, 자신들이 독립투사인 줄 착각한다. 명분이 있으니 폭력은 괜찮고, 그로 인해 처벌받는 것은 독립운동 탄압이라고 외칠 기세다.
그런데 이 잠재적 일본차 테러리스트들에게 하나의 명분이 더 생겼다. 바로, 이달 1일부터 시행된 신규 자동차 등록 번호판 제도다.
이달 들어 새로 등록하는 차량은 기존의 7자리 번호판이 아니라 8자리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 이달에 일본차를 새로 등록하는 사람들이 번호판 자릿수만으로 쉽게 구별된다는 뜻이다.
잠재적 일본차 테러리스트들은 ‘불매운동 이후에도 일본차를 구입한 사람은 진짜 매국노’라는 논리로 타겟을 더 좁히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새 번호판이 주홍글씨 낙인이 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러한 과격 발언은 일부 누리꾼들에 국한된 것이고, 게다가 실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더욱 적은 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이 나오고, 지지를 받는 요즘 온라인 공간의 분위기가 대중에게 공포에 가까운 우려를 만드는 것은 사실이고, 이처럼 아주 작은 테러 가능성에 대한 우려만으로도 잠재적 일본차 구매자는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한 수입차 딜러사 관계자는 일본 수입차 전시장 방문객 수가 불매운동 이전과 비교해 90% 이상 줄었으며, 중고차 시장에서도 일본차는 쌓여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러니 8자리 번호판 시대에 이러한 추세는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게 진짜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과 정의에 근거를 둔 ‘불매운동’의 의의에 부합한 감소 효과일까?
안타깝게도, 9월 이후 일본차 판매량 추가 감소가 일어난다면, 이는 일부 과격 극단주의자들의 명분만 더해주는 부끄러운 결과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테러리스트가 이기는 셈이 될까 싶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