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2호 옥송이⁄ 2019.12.17 08:34:08
고전(古典)은 그 자체로도 가치 있지만, 재해석할 때 살아 숨 쉰다. 원작을 살리되 현시대의 풍토에 맞게 고치는 번안(飜案)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소환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진행하는 설화문화전 ‘미시감각:문양의 집’은 ‘나비, 꽃, 새’라는 과거의 소재를 현대언어로 풀어낸 전시. 흐드러진 상징들을 따라 ‘집’을 거닐다 보면 잊고 있던 전통문양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다.
전통문양의 현대적 ‘번안’ … 품격 되새기는 시간
‘나비’ 따라 이어지는 일상공간 ‘낯설게 하기’
설화수는 친숙한 공간인 ‘집’에 ‘낯설게 하기’ 기법을 입혔다. 시나 소설에서 비유나 역설을 사용해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듯, 집에 과거의 표식을 입히는 것으로 일상공간을 생경하게 탈바꿈했다.
새하얀 오솔길을 따라 ‘문양의 집’ 현관에 들어서면, 짙은 명도의 복도가 나타난다. 그것도 한순간, 이내 첫 번째 공간 ‘리빙룸(거실)’이 시선을 압도한다. 소파, 식물, 화면, 커튼, 의상 등이 자리한 것은 여느 거실과 다름없지만, 붉은 펜화로 섬세하게 터치한 새, 나비, 꽃문양이 공간을 잠식하고 있다.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천장에 달린 새장마저 이들을 가두지 못한다. 자유로워 보이는 이 세 가지 문양은 고미술작품 ‘호접도10폭병풍’에 등장하는 것들로, 현대적 드로잉을 통해 되살아났다.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 ‘다이닝룸’으로 이동한다. 나비는 어느샌가 기다란 테이블에 숨어들었다. 일명 ‘미디어 퍼니처’로 불리는 이 테이블 안에서 이 ‘안내자’는 새파란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닌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면 ‘바다와 나비’의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모든 구성이 정적이다. 특히 바닥부터 천장, 벽, 장식장, 도자기까지 온통 백색으로 마감돼 식탁 상판의 영상을 더욱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는 후각과 미각의 공간에 시간성과 풍경을 도입하려는 시도다.
‘베드룸’은 마치 암막 커튼을 친 듯 어둡다. 은은한 조명이 천장 곳곳에 매달린 패브릭을 비춰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패브릭에는 새들이 깃들어있다. 고요하게 지저귀는 새들의 모습은 침대 위에 어른어른 그림자를 드리운다. 몽환적인 취침공간은 이곳의 모티브가 된 고미술작품 ‘화조영모도10폭병풍’과 배치된다.
클라이맥스는 ‘파우더룸’이다. 색감 절제가 눈에 띄었던 앞선 세 방과 달리 화려함의 극치다. 방금 어두운 공간을 지나온 탓에 조명이 더욱 ‘눈부시게’ 느껴진다. 이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정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원형 거울과 경대다. 관람객들은 문양이 투영된 거울을 통해 ‘나’와 겹쳐진 모습을 목격하며 전통문양과의 ‘물아일체’를 경험한다. 이렇게 전시는 마무리된다.
설화수 “설화문화전 통해 전통-현대 이어나간다”
아트상품 판매 수익금은 무형문화재 전액 기부
설화문화전은 지난 2003년 전통문화 후원을 위해 발족한 ‘설화클럽’에서부터 이어온 설화수의 대표 메세나(사회공헌) 활동이다. 브랜드의 뿌리로 여기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한 취지다.
설화수 관계자는 “전통문화에서 찾은 미학과 지혜는 설화수의 바탕이다. 설화문화전은 문화교감을 위한 활동”이라며 “특히 ‘전통’을 어렵게 느끼는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의 뿌리가 된 전통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에 대해서 공감을 유도하고, ‘전시’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전통’과 ‘현대’를 이어나가는 소통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화문화전이 본격적인 문화행사로 도약한 건 2009년부터다. 단순 전시를 넘어 전통 장인과 현대 작가, 시대와 장르를 초월한 작품을 선보이면서다. 설화수 측에 따르면 지난 2014년에는 전통문화의 요소들을 다양한 현대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세대공감’, ‘오감소통’ 등 적극적 전시 형태를 펼쳤고, 이듬해에는 아시아인이 모두 공감하는 전통 설화를 주제로 택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설화문화전은 직접 만들 수 있는 문양노트, 텀블러, 테이블매트 등 다양한 아트상품 판매를 통해 관람객들의 오감까지 높였다.
설화수 관계자는 “아트상품은 매년 판매하고 있으며,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수익금 및 기부금은 한국문화재재단의 선정을 거쳐 중요 무형문화재에 전액 기부될 예정”이라며 “특히 올해부터는 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무형문화재 종목인 갓일, 배첩장, 자수장을 선정하고 기부함으로써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행보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지금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서 전통문양의 가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며 “관람객들이 일상의 공간인 집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전통문양을 만나며 그 가치와 중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됐으며, 현대 작가들이 새롭게 해석한 전통 문양을 자세히 보고 감각적인 경험을 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