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성호 기자) 한국이민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22만6000여명에 달하고 있으며 이중 15만9000여명이 불법취업자로 추산된다. 이는 불법체류 외국인 31만2000명의 51%에 해당하는 수치다.
법무부에 의하면 건설업은 특성상 일당지급 형태로 신분확인이 허술하고 고임금을 받을 수 있어 단기체류 외국인은 물론 불법체류자까지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다보니 내국인의 일자리가 크게 위협 받고 있으며 특히 목수·용접공·미장공 등 40~50대의 숙련된 근로자의 일감마저 외국인이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분야 불법취업 및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현황을 보면, 2015년 982명에서 2016년 2213명, 2017년 3743명, 2018년 3433명, 2019년 9월 기준 1340명이다.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외국인 불법고용이 왜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국내 건설업계의 구조적 병폐 때문이다. 일단 공사 현장은 ‘원도급인(법인)-하도급인(법인)-팀장(개인, 속칭 오야지)-건설노동자(불법체류자 포함)’로 내려가는 다단계 형태다.
현행법은 외국인이 대한민국에서 취업하려면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받도록 하고, 해당 체류자격을 가지지 않는 사람을 고용하는 행위 및 그 고용을 알선하거나 권유하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맹점이 있다. 현재까지 판례가 원도급인의 책임을 묻지 않고 직접 고용한 현장팀장·현장소장 등에게만 그 책임을 따지고 있어 단속이 되더라도 벌금형 위주로 처벌이 이뤄지고 다른 사람을 내세우면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즉, 하수급인·현장팀장(십장)들은 임금과 근로시간 등에 있어 탄력적 운용이 가능한 불법체류 외국인 고용을 선호하는 측면이 있고, 건설사업자들은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불법고용 단속에 적극적이지 않다.
해결책은 없을까. 최근 강력한 법안이 입법 준비 중이어서 건설업계가 초긴장 상태다.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건설공사 현장 전반을 관리할 책임이 있는 건설사업자(원청업체)에게 하청업체가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도록 방지할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토록 하고 있다.
그동안 “나 몰라라” 했던 원청 건설사에게 총괄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강화시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법을 위반했을 경우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얘기다.
법무부도 외국인 불법고용이 증가해 국민의 단순노무 일자리 잠식이 심화되고 있다는 인식 아래 이 개정안에 적극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3일 법무부는 한정애 의원과 공동으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의견 수렴을 위한 ‘건설현장 외국인 불법고용 방지 토론회’를 여는 등 조속한 법 개정을 위한 작업을 꾀하고 있다.
건설사들 “직접 고용한 자가 책임져야”
건설업계는 개정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수많은 공종별 하도급과 건설근로자들이 시공에 참여하는 건설업 특성상 원도급인인 건설사업자가 불법 외국인력 고용을 사전에 완벽하게 방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8695개사를 회원사로 둔 대한건설협회(건협)는 국회 상임위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특히 대형건설사들의 반대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건협 회원사 중 중견기업 이상 규모인 건설사는 삼성물산·현대건설·대림산업·GS건설·대우건설·포스코건설·현대엔지니어링·롯데건설·HDC현대산업개발·호반건설·SK건설·한화건설·반도건설·태영건설·부영주택·한신공영·중흥토건·계룡건설산업·코오롱글로벌·금호산업·호반산업·효성중공업·두산건설·삼성엔지니어링·제일건설·한라·한양·신세계건설·삼호·아이에스동서·쌍용건설·KCC건설·대방건설·우미건설·동부건설·동원개발·서희건설·화성산업·금강주택·양우건설·중흥건설·한진중공업·시티건설·CJ대한통운(건설부문) 등이다.
건설사들은 직접 고용한 자의 자기책임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의 현장 배치 또는 채용 시에 적법 근로자격 확인으로 인한 하도급인의 해당 공종작업 지연 등으로 시공효율성 저해를 초래하고 공기부족·비용증가 등 업계와 사회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더불어 특정 현장의 하수급인의 불법 외국인력 채용으로 원청업체가 처벌받을 경우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원도급인의 모든 현장에서 외국인력 고용제한을 받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될 소지가 있다며 고개를 젓고 있다.
‘건설현장 외국인 불법고용 방지 토론회’에서 계훈성 선산토건 부장은 “수백개 하수급업체가 매일 수만명의 근로자를 다양한 형태로 고용하고 있는데, 원도급자에게 불법고용 방지의무를 부과하고 처벌하는 것은 오히려 합법적 외국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선의의 하도급업체에 피해가 전가된다”며 업계의 입장을 전했다.
고용제한을 받게 되면 풍선효과로 불법 외국인 노동자 투입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선 부장은 “국내 근로자가 매우 부족한 건설업계에서는 되레 합법적인 외인 노동자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건설업체가 자발적으로 불법고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상생하는 외국인력 도입제도의 개선이 요구된다”고 제안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도 개정안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법사위에 따르면, 외국인 고용시 체류자격을 확인할 의무가 있는 고용인과 달리, 고용인이 아닌 원도급인을 하수급인 등이 불법 외국인력을 고용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
또한 불법 외국인력 고용을 감소시키기 위해 건설사업자에게 불법 외국인력 고용 방지의무를 부과하고 형사처벌하는 수단이 적정한지, 아울러 제조업의 경우에도 하도급·재하도급에서 불법취업이 발생할 수 있는데 건설업 분야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견해가 있다.
한편, 법무부는 현행처럼 처벌대상에서 원도급인을 제외한다면 앞으로도 건설현장의 불법고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건설사업자에게 법 위반의 고의 및 과실이 없는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책임을 면할 수 있게 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반발 등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이 개정안은 지난달 19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제안설명·검토보고 등을 마치고 소위에 회부된 상태다. 그러나 공수처법·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여·야의 대치 정국이 계속되고 있어 임기종료가 다가오는 20대 국회 내 통과는 불확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