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3호 이될순⁄ 2019.12.25 08:49:55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며 저비용항공(LCC) 업계 강자로 우뚝 섰다. 그동안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환율 상승과 한일 갈등으로 인한 여객 수요 둔화로 LCC 업계의 실적은 악화됐다. 일부 저비용항공사는 존폐 기로에 놓이기도 하면서 항공산업 구조조정의 시작이 시작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제주항공이 그 신호탄을 쏜 셈이다.
제주항공, ‘경영난’ 이스타항공 인수
제주항공이 18일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주식매매계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지분 39.6%를 보유하고 있는 이스타홀딩스의 보통주 51.17%(497만 1000주)를 인수할 계획이다.
이번 계약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경쟁에서 쓴맛을 본 제주항공으로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점유율을 확대해 시장 주도권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경영불안을 겪은 이스타항공에게도 이번 결정은 도움이 된다. 이스타항공은 B737-max 기종 4대를 주문하면서 중장거리 노선에 투입할 계획이었지만, 해외에서 잇따른 추락사고가 발생하면서 해당 기종의 운항을 중단하는 등 차질을 빚었다. 게다가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일본 노선 축소와 여객 수요 둔화 역시 영업에 타격을 입혔다.
비상장사인 이스타항공은 분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항공업계에서는 2분기에 이어 3분기에 수백억 원대 영업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스타항공은 지난달 직원들에게 무급휴직과 장기휴가를 신청받는 등의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또한 위기 극복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기도 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완료하면 보유 항공기가 65대로 늘어나 74대의 아시아나만큼 몸집이 불어난다. 사실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곳의 ‘대형항공사 + LCC’ 구도에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이스타항공의 ‘빅3 + LCC’ 구도로 재편된 셈이다.
저비용항공(LCC) 업계 지각변동 신호탄 될까
업계는 이번 합병을 공급 과잉에 직면한 LCC 시장의 구조조정 신호탄으로 인지하고 있다.
올해 플라이강원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신규 LCC 3곳이 들어서면 국내 LCC 9개 업체가 경쟁하게 된다. 미국과 숫자가 같고, 일본(8개), 독일(5개)보다 많다. 미국의 경우 항공사가 난립하며 과잉 경쟁이 벌어졌고 생존을 위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구조조정이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LCC의 영업환경이 악화됐다는 점도 인수합병을 부추길 수 있다. 이스타항공 외에 다른 LCC 중에도 단거리 운행에 주력하다가 한·일 관계 경색으로 노선을 줄인 곳도 많아서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3분기 일본행 탑승객 수는 439만명으로 전년 동기 (513만명) 대비 14.6% 감소했다. 항공기를 다른 노선으로 돌릴 수 있는 대형 항공사와 달리, 단거리 운행에 주력했던 LCC 업계의 타격이 더 컸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현재 인수합병 대상이 될 수 있는 LCC로는 HDC그룹에 인수될 아시아나 계열이 꼽히고 있다. 아시아나 관계자는 최근 CNB저널과의 통화에서 “매각 시 에어부산 등이 함께 인수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HDC그룹 측에서 인수 시 유불리를 따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시선이 많다.
인수합병 대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LCC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단거리 위주인 노선을 중거리 이상으로 늘리려는 움직임이다. 예를 들어 에어부산은 항속거리가 7400㎞에 달하는 A321네오LR 도입을 예고했고, 티웨이항공도 이르면 내년 에어버스 A330-200 등 중형기 도입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LCC 업계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리한 투자를 줄이고 여객 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일 필요가 있다”며 “변화 없이 도태되면 인수합병 절차가 진행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