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6-667호 문화경제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0.02.03 09:29:48
(문화경제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0년이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올해의 첫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가? 20년 전의 오늘은 기억나는가? 2000년의 시작,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과 기대, 설렘,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났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다지 먼 옛날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우리)의 삶 많은 부분이 변했다. 물론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내(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떠올려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상황이 나아지기만 한 것도 아니다. 어찌 되었든 시간은 흘렀다.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계속 진행 중이다. 무조건적 긍정도, 비관도 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사건들이, 순간들이 쌓여간다. 우리는 시간을 온전히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포기할 수는 없다.
‘밤이 낮으로 변할 때’는 인간의 실존적 주제인 시간에 관한 근원적인 탐구, 시간의 축적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 사회의 변화와 정체를 여성 작가들의 시선으로 담아낸 전시이다. 다섯 명의 작가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바라보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제 곧 현재가 될, 도래할 미래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시간을 탐구하고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30대 다섯 여성 작가”
아트선재센터 김해주 부관장과의 대화
Q. 전시 ‘밤이 낮으로 변할 때’는 시간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다양한 매체로 시간을 탐구하는 동시에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30대 여성 작가의 이야기’라는 주제를 중심에 놓은 이유를 듣고 싶다.
A.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이 기간에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찾다 보니 시간성과 여성의 서사로 집중되었다. 나에게 2020년은 SF적인 숫자로 다가왔다. 전시를 준비하던 2019년의 시점에서 2020년은 곧 도래할 미래인데도 굉장히 먼 미래의 숫자로 느껴졌다. 2000년대를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과거의 세상에 묶여 있는 것 같았다. 여성에 대한 시각을 비롯해 세상이 크게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미래의 숫자를 맞이한 것 같은 이질감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변하는 시간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작가들이 느끼는 이격감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또한, 과거와는 다른 시간대로 진입하기 위해 꼭 풀어야 하는 문제이자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여성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시간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주제로 좁혀졌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작가들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작가들이 최선을 다해 전시를 준비해주었다. 참여 작가의 연령을 30대로 특정한 것은 아니지만 아트선재센터가 근래 진행했던 전시들의 흐름을 봤을 때 젊은 세대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를 들을 시점이라고 판단했고, 현장에서 흥미로운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는 30대의 작가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물론 30대가 아니어도 시간과 여성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Q.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담론이나 이슈들을 전시 주제로 다룰 경우, 의미의 폭이 좁아질 위험이 있다. 기획자의 의도와 달리 한두 개의 해석만 집중되어 거론되는 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미술 외에도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적극적인 사회 운동의 방식일 수도 있고 논리적인 글일 수도 있다. 전시는 물질과 사건의 생성으로 타인에게 대화를 건네는 매체이다. 전시를 통해 여성의 이야기를 했을 때 흥미로운 지점은 시각적인 결과물이 만들어내는 은유, 형식적 효과 등이 다양한 의미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업에서조차도 간접적이고 다의적인 층위(layer)가 존재한다. 특정 상황에 대한 감각을 물질로 전달하고 공유하는 장르인 미술과 전시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Q. 전시 제목인 ‘밤이 낮으로 변할 때’의 의미를 설명해주면 좋겠다.
A. ‘변했다’처럼 완결형이 아니라 진행 중인 시간의 흐름이 전달되길 원했다. 2019년에 시작된 전시가 2020년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고, 미술관에서는 일정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전시가 계속 진행 중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달라졌으면 한다, 변해야 한다’와 같은 기대와 요구가 표현된 것이다.
Q. 조금은 근원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이다. 단어 그대로 시간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나에게 시간은 움직임과 연결된다. 시간은 움직임의 단위로 감지된다. 개인적으로 퍼포먼스 작업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움직이고 있는 어떤 행위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시간성을 강하게 느낀다. 움직임이란 신체적인 움직임이 될 수도 있지만 메시지의 전달과 효력처럼 의미적인 운동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 시간은 움직임, 운동, 변화 등으로 물리적인 부분과 비가시적인 것을 오가는 개념이다.
Q. 이제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질문을 해보겠다. 신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권력 관계를 전복시키는 윤지영 작가의 ‘레다와 백조’(2019)는 꽤 직접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정적으로 아픈 몸’을 상징하는 조형물에 새겨진 문신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자 기억처럼 다가온다. 한편 이혜인 작가의 작업도 시간과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꽤 명료하게 전달된다. 창밖의 장미와 실내의 어머니가 짝을 이루는 작품에서도 여성의 삶을 연상할 수 있다. 익숙한 듯 낯선 정원을 보여주는 강은영 작가의 작업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많은 사람이 꽃이 바니타스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자체로 시간성을 함유하는 소재이자 재료인 것이다.
A. 윤지영 작가는 설치에 사용되는 오브제들의 형태나 연속적인 사용, 물리적 관계 형성, 그로 인한 변화 등을 고민해왔다. 피부색을 띠어 신체 기관을 연상시키는 사물들, 흑경(검은 거울), 탄성이 느껴지는 재료 등에서는 이전 연작과의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작업에 나왔던 오브제가 역할을 유지한 채 다음 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윤지영 작가 작업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동안 조각에서부터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이렇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형상을 다루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고전적 신화의 이미지를 전복적으로 재현한 신작은 윤지영 작가에게도 매우 새로운 시도였다. 여성의 시각에서 신화 속 가해자와 피해자를 재해석하는 작업에서 작가는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억눌림에 저항한다. 이런 이유로 세 명의 여성 타투이스트들과 함께 진행한 원형 조각인 ‘계속 밤+’ 시리즈(2019)의 제작 과정에서 일어난 공감과 연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혜인 작가는 야외에서 특정한 시간대의 빛과 풍경을 그림으로써 작업하는 순간의 환경들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담아낸다. ‘알베르틴’(2017)은 부모님 댁 정원의 장미를 세 시간씩 시간을 나눠 그림으로써 24시간을 담아낸 작업이다. 그림이 시간의 지표가 된 것이다. 신작인 ‘Mom_looking outside’(2019)와 ‘Mom_looking inside’(2019)는 눈앞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작가 내면에서부터 구성해낸 그림이다. 전자는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다면 후자는 이를 보는 작가의 마음(내면)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강은영 작가는 실제 ‘식물상점’이라는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평소에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조합으로 꽃을 다룬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꽃을 떠올렸을 때 잘 연결되지 않는 푸른빛이 두드러지는 낯설고 기이한 꽃,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꽃을 만들었다.
Q. 상대적으로 안초롱 작가의 작업은 그 의미가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숨겨진 것처럼 보인다. 촬영하거나 수집한 사진들을 활용해 시간성을 탐구한다는 것 외에 작업에 대한 부연 설명을 부탁한다.
A. 안초롱 작가는 자신이 오랫동안 수집한 사진들을 선택, 재구성하면서 개인의 서사와 여성들의 서사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선택된 사진들에는 전시에 참여한 다른 동료작가들 - 강은영, 송민정 - 의 작업과 조응하는 것들도 있다. 작업이 다소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매우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하는 이미지들이 있으나 그 일화들을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오히려 의미 생성의 다양성을 보증한다. 관객들이 전시장에서 작품을 관람하며 자신의 과거 경험과 작품의 이미지를 연결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Q. 송민정 작가의 작업은 매우 감각적이다. ‘Window’(2019)에서는 해체된 내러티브와 통일된 내러티브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음악과 이미지의 조합도 인상적이다.
A. 송민정 작가는 두 개의 영상으로 밤과 낮의 대조 혹은 연결을 만들었다. ‘AKSARA MAYA’(2019)에서처럼 게임 속의 상황들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고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의 대화가 나온다. 2층 구조물에서 아래를 조망하며 보는 ‘Window’(2019)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네 명의 여성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준다. 내러티브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놓인 상황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재현하지 않고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전개하지 않아도 보편적인 경험과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시간의 흐름을 뒤집거나 재조합하는 행위가 이번 전시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Q.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지만, 아트선재센터는 예술성과 실험성을 중심에 놓는 미술관이라는 인식이 있다.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전시를 기획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A. 각각의 기관마다 자신의 역할이나 전시의 방식에 대한 지향점이 있을 것이다. 아트선재센터가 낯선 새로운 형식들을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된다면 반가운 일이다. 평소에 언어화되지 못하고 시각화되지 못했던 무언가가 환기되거나 경험될 수 있는 전시를 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개별 전시도 중요하지만 1년, 2년, 혹은 더 긴 기간 동안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들 사이의 상호관계, 그것들이 종합적으로 만들어내는 흐름이나 전체적 그림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 특히 공공적인 역할을 하는 미술관으로서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어 ‘색맹의 섬’(2019)에서는 생태를 통해 공감의 문제를 다뤘었고, ‘구동희: 딜리버리’(2019)에서는 배달에 대해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적 언어와 서사 전개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시의성이 주류 혹은 대중성과 늘 함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시를 통해, 작가의 작업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예술이 가진 특유한 형식이나 물질감, 공간감 등으로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