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하는 사람들 집 옆에 (임대주택) 지으세요.”
온라인 부동산카페 청년임대주택 반대 글에 적힌 댓글 중 하나다. 게시글은 중랑구 묵동에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오니, 이 글을 본 동네 사람들은 구청과 시청에 민원을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그 글엔 찬성과 반대의 설전이 오가면서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같이 임대주택 반대 여론은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니다. 정부는 2013년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행복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양천구 주민들은 행복주택을 지으면 지역 학교와 교통이 과밀해지고, 집값과 임대료가 떨어진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양천구는 행복주택 반대 행정소송을 제기해 국토부에 패소했지만, 정부는 주민과의 갈등이 심각해 사업을 접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행복주택은 대학생과 청년,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임대주택이다.
재작년엔 영등포구청역 인근 하이마트 부지에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서려 한다며 인근 한 아파트에서 ‘하이마트 부지 기업형 임대아파트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명의로 ‘5평형 빈민 아파트 신축 건’이라는 안내문이 붙기도 했다. 안내문에는 ‘아파트 가격 폭락’, ‘빈민 지역 슬럼화로 범죄 및 우범지역 등 이미지 손상’, ‘아동·청소년 문제, 불량 우범 지역화 우려’와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어 논란을 불렀다. 청년임대주택은 역세권에 주로 들어선다.
지방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2020년 8월 완공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행복주택 건설을 추진했지만, 공사 중단 상황이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행복주택 건축 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사업 현장 앞에서 수개월째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행복주택 2000가구를 짓겠다고 계획했지만 주민 반대로 반 토막 났다. 인근 주민들이 임대주택 과잉에 따른 피해, 교통난 등을 주장하며 대신 주민 공공시설을 지어달라고 요구해서다.
이처럼 임대주택을 환영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찾아보기 드물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역 주민들이 세금 낭비 등을 이유로 들며 공공주택을 반대하지만 청년 주택을 혐오 시설로 인식한 결과 나타난 님비(NIMBY) 현상”이라고 말한다. 님비 현상이란 분뇨처리장이나 화장장 같은 시설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청년주택을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사례를 지켜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기자는 행복주택에 사는 당사자기 때문이다. 역에서 15분 거리. 월세 9만원. 최대 8년 거주 가능.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에서 이 정도 수준의 아파트를 구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지도, 계약 만료에 전전긍긍해 하지 않아도 돼 삶의 불안 요소가 감소했다.
취재 차에 만난 대학생 A 씨는 임대주택을 ‘가뭄에 단비’라고 말했고, 직장인 B 씨는 ‘복권 당첨’이라고 했다. 둘 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온 사람들이었다. 매매가 불가능한 임대주택임에도, 가뭄에 단비나 복권 당첨에 비유될 정도라면 이들에게 집이란 척박한 세상에 마음을 뉘일 작은 공간쯤은 되는 것이 아닐까. 집을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과는 다른 공간으로 여기는 게 분명하다.
싱가포르는 국민의 86%가 임대주택에 거주한다고 한다. 그래서 집을 경제적 가치로 보지 않고 거주의 공간으로 대체로 인식한다. 물론, 싱가포르 전 토지의 90%가 국유지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공공주택 제공을 위해 국가가 토지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현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토지와 주택은 일반적 재화와는 다른 특수한 성질을 가진 것으로서 무조건 시장에만 맡기기보다는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임대주택 = 저소득층이 사는 곳’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됐으면 좋겠다. “우리 집 옆에 제발 (임대주택) 지으세요”라는 댓글이 가득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