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2호 옥송이⁄ 2020.03.25 09:23:30
X, Y, 밀레니얼에 이어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 ‘Z’까지 왔다. 이른바 ‘Z세대’. 국내 인구 21.7%에 달하는 이들이 ‘미래 소비 주역’으로 부상하면서, 유통가에서는 맞춤형 시도가 한창이다. 뷰티 업계는 남성 색조 화장품·유명 댄스팀과의 협업 브랜드를 내놨고, 신세계백화점은 15~25세 소비자를 위해 오롯이 한 층을 꾸몄다. 각 회사가 Z세대의 특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살펴봤다.
1000평을 가득 메운 ‘패션 놀이터’ … 브랜드, 공간구성 모두 ‘Z’ 고려
놀이를 위해서는 고정적인 공간과 재미를 줄 도구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놀이터 성립조건이다. 신세계백화점은 관점을 달리해 새로운 놀이 공간을 만들었다. 대상은 Z세대, 재미를 줄 도구는 패션 브랜드, 공간에는 백화점을 대입했다. 최근 리뉴얼 개점한 영등포점 ‘영패션 전문관’ 이야기다.
일단 ‘터’가 눈에 띄게 넓다. 지하 2층 전체를 1525세대(15~25세)에게 할애한 이곳의 크기는 약 1000평. 33개의 매장이 있지만, 새로운 소비 주역들의 취향을 최우선 고려했기에 유기적이다. 스트리트 브랜드가 주를 이룬다. 덕분에 구획들이 동떨어져 보이지 않고 하나의 편집숍처럼 인식된다.
Z세대 ‘패션 놀이’가 콘셉트인 만큼 곳곳에 ‘재미’ 요소를 갖췄다. 10대 초반, 20대 중반이 선호하는 패션잡화 콘텐츠를 다양하게 구성해 쇼핑의 즐거움을 충족시킨다. 수퍼플레이(SUPER PLAY), 플레이 옵티컬(PLAY OPTICAL) 등 신세계가 단독 입점한 브랜드와 휠라, NFL, 널디(NERDY) 등의 스트리트 감성 브랜드가 들어섰다.
공간 디자인도 ‘재미’의 포인트 중 하나. 공조관·에어컨이 드러난 노출 천장은 기존 백화점에서 볼 수 없었던 연출이다. 연남동·성수동 등 Z세대가 선호하는 핫플레이스처럼 꾸몄다는 것이 사 측의 설명이다.
리빙관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영패션 전문관의 대표 촬영 명소다. 빨려 들어갈 듯한 주황빛 터널은 홍성준 작가와 인기 스트리트 브랜드 반스(VANS)가 협업한 아트월이다. 홍성준 작가는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기업 크리스티(CHRISTIE’S)가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선정한 바 있다.
다채롭게 구성됐지만 지하 2층의 심장부는 단연 ‘스타일 쇼케이스’다. 이 매장은 신세계가 새롭게 선보이는 스트리트 브랜드 편집숍으로, 신세계 바이어가 Z세대 눈높이에 맞춰 엄선한 브랜드를 주기적으로 소개한다. 일종의 ‘패션 카탈로그’인 셈이다. 단, 직접 만져보고 입어볼 수 있는 체험형 카탈로그다.
현재 스타일 쇼케이스에 입점한 브랜드는 21개로, 10대와 20대에게 인기 있는 로라로라(ROLA ROLA), 네온문(NEON MOON), 크럼프(CRUMP), 프레이(FRAY) 등이 대표적이다. 오프라인 소비를 선호하는 타깃 고객 성향을 고려해 SNS 등 온라인에서 입소문 난 브랜드를 오프라인으로 끌어냈다.
신세계 측은 “패션 상품만 선별해 보여주는 기존의 편집숍과는 달리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와 1525 고객들이 좋아하는 잡화를 다양하게 소개하는 차별점을 갖고 있다”며 “SNS나 온라인 등에서만 소개됐던 신진 브랜드의 판로 확대를 돕는다는 장점도 있다. 신세계는 스타일 쇼케이스를 신진 디자이너(브랜드)의 인큐베이팅 플랫폼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Z세대 ‘낮은’ 브랜드 충성도? “다양한 브랜드 입점으로 백화점이 오히려 다채로워졌어요”
신세계백화점이 특정 세대를 대상으로 한 층 전체를 선뜻 내놓은 데는 확실한 소비 주축이 될 것이란 판단이 있어서다.
신세계 측은 “Z세대는 현재 소비 주축인 밀레니얼 다음으로 인구가 많아, 소비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영등포점은 신세계 전체 점포 중 20대 고객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라며 해당 지점에 영패션 전문관을 설치한 배경을 설명했다.
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 SNS에 익숙하지만, 직접 체험한 뒤 소비하는 오프라인 구매를 선호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개성으로, 희귀한 아이템과 맞춤형 제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높다.
이 때문에 Z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기존 유명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분석이 많다. 백화점이 충성도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수익 기대보다는, 다소 생소한 브랜드 입점이라는 모험을 해야 하는 이유다.
이 회사 관계자는 “백화점은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명품이나 특정 브랜드만 다루는 곳이 아니기에, 젊은 세대를 공략해 스트리트 브랜드 입점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리스크가 아니라고 본다”며 “시장 분석을 기반으로 영패션 전문관을 구상했다. 유동적이고 빠르게 트렌드를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브랜드 충성도보다는 ‘개성’을 중시하는 Z세대 특성을 고려한 해법이 ‘스타일 쇼케이스’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업데이트해 10대 20대의 쇼핑 만족도를 높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모레·애경 ‘남성 색조 브랜드’ LG생건 ‘댄스 스튜디오와 협업’
Z세대가 미래 큰손으로 주목받자 뷰티 업계도 각자의 방식으로 고객 맞이에 나섰다.
아모레퍼시픽과 애경산업은 남성 색조 전문 브랜드를 선보였다. 아모레 측은 “서울대 컨슈머 트렌드 센터가 지난해 진행한 Z세대 남성 조사에서 18~24세 남성 10명 중 3명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페이스 메이크업을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남성 화장품 시장의 성장세와 함께 색조 화장에 관심 많은 Z세대 남성을 주목했다”고 출시 배경을 밝혔다.
이 조사는 Z세대 남성 설문결과 가장 사용하고 싶은 메이크업 제품으로 선정된 ‘파운데이션’을 지난해 9월 첫 제품으로 출시했으며, 최근에는 자연스럽게 착색되는 립밤을 선보였다. 또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1525세대가 선호하는 SNS를 마케팅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
애경산업은 앞서 2018년 남성 스타일링 브랜드 ‘스니키(SNEAKY)’를 선보였다. 평소 메이크업에 관심이 있지만, 주위 시선을 걱정하는 1824세대 남성들을 타깃으로 설정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스니키는 ‘엉큼하다, 몰래하다’는 뜻”이라며 “계획 단계부터 일반적인 스킨케어보다 남성 색조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과도하게 티 나지 않고 사용하기 편한’ 제품들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은 안무 크리에이티브 팀과 협업했다. 지난해 9월 출시한 ‘밀리언뷰티(Million Beauty)’는 ‘원밀리언댄스스튜디오(이하 원밀리언·1M)’와 함께 개발한 브랜드. 원밀리언은 1500만여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세계적인 안무팀으로, 개발된 화장품 브랜드는 온라인 전용이다.
LG생활건강 측은 “획일화된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즐긴다는 콘셉트 아래 제품 기획 단계부터 원밀리언과 협의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