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경제가 얼어붙고 있다. 이 가운데 집밥을 대체하면서도 장기 보관이 용이한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은 국내외에서 수요가 급증하는 등 힘을 발휘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4만 명을 넘어서며 큰 폭으로 늘고 있는 미국에서는 CJ제일제당과 농심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미국에서 비비고 만두, 햇반 등의 판매량이 평소 대비 2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위치한 록펠러 센터에서 열렸던 ‘비비고 팝업스토어’도 흥행했다. 지난해 말 오픈해 두 달 동안 운영 예정이었던 팝업스토어는 누적 방문객이 2만여 명 이상에 이르며 5월 말까지 연장 계획을 밝혔던 바 있다. 현재는 미국 정부 시책에 맞춰 3월 19일부터 영업을 잠정 중단한 상태지만, 오픈 후 한 달 동안 매일 최고 매출을 경신하고, 하루 매출 400~500만원 수준을 안정적으로 기록하는 성과를 보여 왔다. 만두를 비롯해 스낵 메뉴 7종, 도시락 메뉴 3종 중 가장 인기 메뉴는 만두였다고.
CJ제일제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엔 비비고 만두가 국내외에서 매출 8680억 원을 달성했다. 이중 해외 매출이 5520억 원을 차지하며 전년(3690억 원) 대비 약 50% 증가했다. 여기서도 미국 시장에서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비비고 만두는 2018년 처음으로 2000억 원 매출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363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국내 매출(3160억 원)을 추월하는 등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농심의 짜파게티도 미국에서 사랑받고 있다. 농심에 따르면 해외에서 짜파게티 판매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으로, 2월 짜파게티 매출에서 70만 달러를 차지하며 압도적 1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농심 관계자는 “해외 공급망의 높아진 수요에 맞추기 위해 미국, 중국 내 법인 공장을 풀가동하며 제품 생산을 늘리고 있다. 지금은 제품 공급이 많이 원활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중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삼양식품에 따르면 2월 중국 수출이 지난해 동월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 이상 성장했고, 3월 주문량은 지난해 대비 약 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상반기 중국 수출액은 전년 대비 20% 상승한 500억 원을 기록했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라면 전체 물량 중 80%를 삼양식품이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해외 주문이 크게 늘면서 생산 라인을 풀가동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간편식 수요 급증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해외 시장에서의 K푸드 가공식품 수요가 급증한 것은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그 저변엔 문화 소비도 함께 깔려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농심 관계자는 “2월 9일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짜파게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수출이 없던 칠레, 바레인, 팔라우, 수단 등의 나라에서 짜파게티 수입을 요청해 올해 짜파게티 수출국이 70여 개 국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라면은 한국적인 특성이 강한 음식으로 과거엔 해외 시장에서 현재만큼 수요가 높진 않았다. 이 가운데 영화 ‘기생충’을 통해 짜파게티를 접한 소비자들이 SNS 영상 등을 통해 서로 후기를 공유하며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이것이 매출 증가로도 이어졌다고 본다”며 “농심은 1970~80년대부터 꾸준히 해외 시장에 짜파게티뿐 아니라 신라면 등 한국 음식을 알려 왔다. 그 기반이 영화와 만나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낸 측면도 크다”며 단순히 단기적인 코로나19 특수로만 바라보긴 어려울 것 같다고 짚었다.
CJ제일제당 또한 비비고 팝업스토어의 성공에 대해 “최근 한국 영화와 K팝의 인기가 높아진 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류 열풍이 한국 식문화로도 이어진 것”이라며 “록펠러 센터 및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등이 점심시간에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서 비비고 메뉴를 구매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에서 가정간편식 수요가 늘어난 요인으로는 변화하는 식문화 트렌드를 꼽았다. 수치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은 1월 1일~3월 24일 냉동간편식 매출을 분석한 결과 전년 동기대비 52.1%, 3월(1~24일)에만 43.8%의 신장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은 2월 28일~3월 1일 서울을 포함한 전국 광역시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슈에 따른 식소비 변화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코로나19로 개학 연기, 재택근무 등 가정 내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직접 조리나 가정간편식 제품 활용 등 내식(內食)의 비중이 83%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23.5%포인트(p) 증가했다고 밝혔다. 반면 방문 포장과 외식은 각각 4.3%p, 19.1%p 줄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직접 조리가 늘었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84.2%에 달했으며 ‘가정간편식 소비가 늘었다’고 응답한 사람도 46.4%를 기록했다. ‘가정간편식을 늘릴 것 같다’는 응답자는 65.4%를 기록했다. 품목으로는 가정간편식의 구매가 증가했다. 집밥을 대체하면서도 장기 보관이 가능한 생수, 즉석밥, 라면 등과 더불어 국물요리, 상품죽, 냉동만두 등의 구입이 늘었다.
CJ제일제당 남성호 트렌드전략팀장은 “경제적·사회적 이슈는 물론 소비자의 생활 방식과 소비 패턴 변화가 식문화 트렌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특히 올해 코로나19 영향으로 가정간편식에 대한 취식 경험이 새로 생기거나 늘었다. 이는 향후 소비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외출을 꺼리는 사람들은 집 안에서 보관 기간이 길고, 조리도 간편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음식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여기에 가정간편식이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하게 가정간편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식생활에서도 편리함을 찾는 세계적인 소비 트렌드를 봤을 때 현재의 현상은 미래에 예기된 식문화 트렌드였다”며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급작스럽게 앞당겨졌고, 사재기 등 급증한 수요에 맞추기 위해 혼란을 겪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젠 미래의 식문화를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