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사업이 항공사 불황 돌파의 ‘묘수’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로 한국발 여객기 입국 제한을 시행 중인 국가들이 화물기는 막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항공사들은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하면서 화물 운송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반도체, 전자제품, 농산물 등 여객기 화물칸에 투입
대한항공은 베트남 호찌민 노선에 약 20t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A330-300을 화물기로 투입했다. 비행기 내 좌석은 비워두고 화물칸에 반도체, 전자제품, 농산물 등 화물만 싣는 방식이다. 호찌민 노선은 베트남 정부의 입국 제한조치로 2월부터 여객 운항이 중단된 상태지만, 화물기 운항은 가능하다. 또 여객기가 운항하지 못하고 있는 중국 칭다오에도 3월부터 여객기를 투입해 화물을 수송하고 있다.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은 지난달 임원 회의에서 “유휴 여객기의 화물칸을 이용해 화물 수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면 공급선을 다양화하는 한편 주기료 등 비용까지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14대의 화물기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18일부터 호찌민과 타이베이 노선에 여객기를 활용해 화물을 운송하는 벨리 카고 영업을 하고 있다. 벨리 카고는 여객기에 손님의 짐을 싣고 나서 남는 공간에 싣는 화물이다.
진에어는 여객기 하부 전체를 화물칸으로 쓰는 방식으로 인천~타이베이 노선에 B777-200ER을 투입하기로 했다. B777-200ER은 다양한 종류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중대형 기종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3일까지 원단, 의류, 전기 및 전자 부품류 등의 화물을 총 6회에 걸쳐 수송할 예정이다.
진에어 관계자는 “화물기 투입은 코로나19로 인한 항공기 운항 축소로 항공화물 수송에 어려움을 겪는 국내 수출입 기업을 돕는 동시에,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이유에서 추진됐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통계에 따르면 인천공항을 통한 화물 운송량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월 화물 운송량은 23만 7106t으로 2월 21만 9719t, 1월 20만 8064t으로 각각 7.9%, 14.0% 증가했다. 국내 항공사들이 최근 쉬고 있는 여객기까지 동원하면서 화물 운송 시장에 뛰어들어 자구책을 마련해 온 결과로 풀이된다.
인천공항 오간 항공기, 전달 대비 63.2%↓
항공사들이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하는 이유는 여객 이용 비중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매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인천공항을 오간 항공기는 총 9861편으로 전달(2만 6803편) 대비 63.2% 줄었고, 지난해 같은 달에 3만 4187편에 비해선 71.2% 감소했다.
대한항공의 지난 3월 인천공항 출발 편 혹은 도착 편 탑승객 수는 한 달 전과 비교해 78.4% 줄었고, 아시아나항공도 78.3% 감소했다.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은 3월 탑승객 수가 2월보다 87.9% 떨어졌다.
지난 2월 중순부터 국내에 코로나19가 확산되자 한국은 전 세계 181개국으로부터 입국 금지 혹은 그에 준하는 조치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달 초에는 일본 정부가 한국인 입국을 강하게 제한하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들의 국제선 노선이 대폭 감소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여객 비중이 급격하게 준 이후부터 수익성 악화는 물론, 공항 주기장료(항공기 주차료)와 같은 고정비용 지출이 늘어났다”며 “지난달 12일에는 김포공항 국제선의 일일 이착륙 항공기 수가 0편을 기록했는데, 이는 항공 산업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항공사들은 비상 경영체제를 유지하면서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애를 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화물 운송물량·운임 ↑… 실적 방어요인
다만 화물 항공 수요가 공급을 웃돌면서 운임이 상승하고 있다. 홍콩에서 발표하는 항공화물 운임지수인 TAC 지수에 따르면 홍콩에서 북미로 향하는 화물 운송료는 3월 기준 kg당 3.59달러로 2월 넷째주보다 12.5% 상승했다. 중국과 북미 간 화물 운임은 2배 이상 올랐다.
이한준 KTB 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에 “코로나19로 예상치 못했던 항공화물 호황 전개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실적 방어요인이 발생했다”라며 “화주 및 포워더(화물의 운송에 관련된 업무를 취급하는 운송주선인)들은 화물 스페이스(space)를 구할 수 없어 올해 상반기까지 운임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