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오늘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야기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상의 많은 풍경을 바꿔놓았다. 이맘때면 누렸을 봄날의 축제도, 만개한 벚꽃 즐길 여력도 없다. 하물며 장 보러 동네 마트 가는 것도 꺼려진다. ‘집콕’이 미덕인 시대, 일부 유통업계가 ‘당연한’ 상식을 벗고 달라지고 있다. 접근성이 장점인 덕에 배달할 필요 없던 편의점, H&B스토어 및 화장품 로드숍이 당일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부르면 그날 오는’ 서비스를 이용해봤다.
GS25·CU, “집 앞이니까 배달해드려요”
5일 밤 10시. 깜빡 초저녁잠에 들었다가 깼다. 친구들과 주말 약속 잡는 것도 오래전 일, 그저 주말에도 집에 있는 게 상책이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냉장고 여니 뭣도 없다. 혼자 사는 설움은 이런 거다. 귀찮은데 죄다 혼자 해야 한다. 게다가 걱정은 이럴 때만 도진다. 갑자기 밤에 혼자 나다니는 게 무섭고,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도 겁난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물은 있어야지 싶어, 편의점에 갈까 하다가 ‘설마 생수도 배달해주나’ 생각에 핸드폰을 앱을 켰다. 세상에, 편의점에서 물은 물론이고 치킨도 튀겨서 갖다 준다. 신세계다. 정확히 20분 뒤, 경쾌한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내 손엔 생수, 오징어, 과자, 아이스크림 따위 주전부리와 내일 아침으로 먹겠다며 야무지게 주문한 샌드위치까지 들려있다. 최소 구매 비용 맞춘다는 핑계로 먹고 싶은 거 다 샀다. 비록 최소 비용 만 원은 훌쩍 넘겼지만, 발품 안 팔게 해준 배달 서비스가 감사한 밤중이었다.
코로나 사태 두 달 경과. 사회 내 벌어진 ‘간격’은 ‘언택트(Untact. 비대면)’가 메우고 있다. 편의점업계도 비대면의 일환인 배달 서비스 확대에 나섰다. 편의점은 말 그대로 고객 편의를 위한 상점이다. 그만큼 뛰어난 접근성이 장점. 집 근처 등 생활 반경 어디에나 위치해 배달 서비스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최근 ‘집콕족’이 확산하자 접근성을 최대한 활용해 배달을 강화하고 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지난달 2일부터 배달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지난해 4월 배달 업체 ‘요기요’, ‘따릉’과 함께 직영점 10곳에서 진행한 시범 테스트가 좋은 반응을 얻은 데 따른 확장이다. 서울·경기·강원·제주지역 600여 가맹점에서 1차 배달 서비스를 개시했고, 이어 전국 600여 가맹점에서 추가 오픈해 총 1200곳에서 해당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GS25 측은 “배달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기에 앞서, 위치 기반 및 실시간 재고 연동 기술을 사용한 3세대 배달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고객이 배달앱에 접속하면 위치를 기반으로 배달 가능한 GS25 매장을 파악할 수 있고, 상품재고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또 전국 GS25 매장에 배달 서비스 운영 상품을 전용으로 관리 할 수 있는 발주(상품 주문) 창을 신설해 가맹 경영주의 운영 효율성을 높였다. 주문 가능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 최소 구매 금액은 1만 원, 배송료는 기본 3000원이다.
이 회사의 배달 서비스는 코로나사태 장기화와 맞물려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GS25 관계자는 “최근 일주일 배달 주문 실적(3월 23일~29일)이 전 주 대비 약 16배 증가했을 정도”라며 “배달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한 첫 주(3월 2일~8일) 실적 대비 2주 차는 89.9%, 3주 차(3월 16일~22일)는 전 주 보다 39.2% 신장했다.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언택트 소비 트렌드가 강해져 편의점 배달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 역시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배달 서비스 이용 건수가 급증했다. CU의 3월 배달 서비스 일 평균 이용 건수는 코로나19 발생 전(지난해 11월 ~ 올해 1월) 대비 73.2% 늘어났다. 특히 20시~23시에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3월 전체 이용 건수의 약 34%를 차지했다.
심야 시간 배달 수요가 늘어나자 편의점 CU는 24시간 배달을 시작했다. 기존 11시부터 23시까지로 한정되어 있던 요기요 배달 서비스 운영 시간을 0시에서 24시로 확대한 것.
CU 24시간 배달 서비스는 기존과 동일하다. 심야 시간에도 배달 앱을 통해 최소 주문 금액(1만 원)과 배달료(3000원) 할증 없이 동일한 가격으로 제공된다. 서비스는 우수 운영점 50곳에서 한 달간 테스트를 진행한 후 고객 반응에 따라 순차 확대된다. 이 외에 커피 배달 서비스도 테스트한다.
BGF리테일 조성해 서비스플랫폼팀장은 “CU 배달 서비스는 고객들이 안심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쇼핑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며 “배달 서비스가 최근 감소한 유동인구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맹점에 긍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배달 전용 상품 및 이벤트를 기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똑 떨어진 화장품? 스마트폰으로 당일 배달 가능
화장품 업계도 당일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 며칠씩 걸렸던 업체 배송과 달리, 배달 전문 업체와 협력해 소비자가 주문한 날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언택트 소비 증가와 더불어, 같은 화장품을 주기적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특징을 공략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H&B스토어 랄라블라는 지난달 13일부터 ‘요기요’와 손잡고 배달 서비스 시범 테스트를 시작했다.
배달 서비스가 제휴된 랄라블라 점포는 △신촌 △홍대 △잠실 △신림 △구로디지털 등 서울시 주요 상권 내 5개 점포다. 주문 가능 상품은 화장품, 미용 소품, 건강 기능 식품 등 100여 종이며,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주문할 수 있다. 최소 주문 금액은 2만 원, 배송비는 4300원이다. 랄라블라는 4월부터 배송 가능 상품을 200여종 이상으로 확대하는 한편, 시범 운영을 통해 전국 점포로 서비스 확대를 검토 중이다.
랄라블라 정용식 영업기획팀 과장은 “화장품 이용 고객들은 같은 상품을 주기적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온라인몰 등을 통한 비대면 구매도 많은 편”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소비가 더욱 늘어나면서 이번 배달 서비스 제휴가 고객들에게 큰 편의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했다.
에이블씨엔씨의 화장품 브랜드 미샤는 심부름·배달 업체인 ‘김집사’와 손잡고 4월부터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비스 제공 매장은 △송파 △수지 △분당 △용인 △수원 지역 5개 미샤 매장과 1개 눙크 매장이다. 해당 매장 인근 1.5㎞내 거주하는 고객은 김집사 앱으로 화장품을 주문하고 주문 당일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해당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주문할 수 있으며 주문 가능 최소 금액 제한도 없다. 서비스 이용료는 2000원이다.
에이블씨엔씨 조영한 영업본부 전무는 “김집사와의 협업으로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며 “향후 더 많은 지역의 고객들이 미샤와 눙크 제품을 보다 편하게 만나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