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7호 옥송이⁄ 2020.05.28 15:31:40
짧게는 8년, 길게는 10년. 카드사들이 온라인 채널을 운영해온 기간이다. 그동안 기업·상품 홍보,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로 구독자를 늘려온 해당 채널들이 최근 빛을 발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관객 발길이 끊겨 어려움을 겪는 예술업계의 ‘디지털 무대’를 자처하면서다. 온·오프라인 공연장 무료 대관부터 영상 제작, 홍보까지 지원한다. 구독자들이 랜선 관객, 나아가 팬이 되는 건 덤이다.
신한카드, ‘예술단체’ 공연 지원 … 전통예술·클래식·대중음악 망라
“얼씨구야!”
어두운 조명을 배경으로, 한바탕 놀이판이 펼쳐졌다. 이 놀이를 주도하는 건 장구. 장구의 긴장감 있는 장단 위로 피리의 음률이 농염하게 내려앉는다. 때때로 북·징 따위 타악기와 태평소·생황 등의 관악기가 더해지거나 빠진다. 닮은 듯 다른 전통 악기들이 모여 만들어낸 이 음악은 물결이 되기도 하고 풀잎, 길도 된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풍경(Landscape)’이 된다.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타악기연주자 김소라의 공연명. 연주자는 지난 22일, 제목처럼 풍경을 주제로 한 8곡을 온라인에서 선보였다. 신명 나는 장단에도 어깨를 들썩이는 관람객은 보이지 않는다. 무관중으로 제작된 공연이기 때문. 다소 현장감은 덜하지만, 음악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랜선 관객들의 반응은 좋다.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을 볼 수 있어 기쁘다”, “장구로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공연에 목말라 있었는데 멋진 퍼포먼스 감사하다”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해당 공연은 신한카드가 기획한 ‘디지털 스테이지(Digital stage)’의 세 번째 무대. 디지털스테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단체의 공연 기회를 확대하고, 온라인 진출 활성화를 돕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신한카드는 온라인 공연 지원사업 진행에 앞서 서울문화재단과 협약을 맺었다. 서울문화재단은 참여단체 모집 및 선정 절차를 맡았고, 신한카드는 공연장 대관 및 무대 장비 대여, 온라인 콘텐츠 제작·송출에 참여했다.
지난 4월 27일부터 5월 4일까지 지원 대상 신청이 진행됐고, 서울문화재단의 심의를 거쳐 최종 12팀이 뽑혔다. 선정 분야는 전통예술, 클래식, 무용, 재즈, 다원 예술, 대중음악 등으로 장르를 망라한다.
선발된 공연예술단체들은 6월 말까지 ‘신한카드 판(FAN)스퀘어’에서 무관중 온라인 공연을 펼치고, 일부 공연은 디지털 스테이지에서 공개된다. 신한카드는 기부 캠페인도 동시에 펼친다. 이른바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시민도 참여할 수 있다. 오는 6월 30일까지 신한카드 기부플랫폼 ‘아름인(人)’ 홈페이지를 통해 기부하면 신한 측이 동일한 금액을 추가로 기부한다. 후원금은 문화예술계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공연이 어려운 상황에서, 고객들이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고려하게 됐다”며 “동시에 관객을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중소극단 등 공연업계와 상생하는 방안으로 디지털 스테이지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015년부터 인디밴드, 신인 뮤지션을 발굴·지원하는 ‘신한카드 루키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올해에는 매월 1팀의 뮤지션을 선발해 유튜브 뮤직비디오 영상 제작 및 홍보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KB국민·현대카드, 온라인 라이브·독특한 콘셉트 공연으로 ‘공연 갈증’ 해소
KB국민카드와 현대카드는 공연 관람에 목 말라하는 이들의 ‘갈증’ 해갈에 초점 맞췄다. 비록 대면 콘서트와 공연은 줄어들었지만, 집에서도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콘셉트의 영상을 선보였다.
KB국민카드는 지난 3월 가수 스텔라장·에이프릴·노라조·윤수현·국카스텐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참여 가수들이 출연하는 ‘보이는 라디오’를 실시간 중계했다. 대세 가수들이 등장한 해당 영상들은 공개 한 달 만에 조회 수 300만 회를 넘어서기도 했다.
현대카드는 4월 가수 강민경·그레이·제시와 함께 ‘슈퍼마켓 콘서트’ ‘방콕라이브’ 등의 콘텐츠를 제작했다. 특히 슈퍼마켓 콘서트는 ‘거리두기’로 인해 생활반경이 집 앞 가게 정도로 좁아진 점에 주목, 오래된 슈퍼마켓 앞에서 공연하는 콘셉트로 진행했다. 레트로 감성을 자아내는 공간에서 같은 곡을 가수마다 다른 느낌으로 소화해, 보는 재미와 듣는 즐거움을 더했다.
전염병이 불러온 예술업계 ‘직격타’ … 카드사들 “지원 절실 공감”
2500여 건.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취소 또는 연기된 공연·전시 규모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계의 피해액은 약 520억 원에 달하며, 예술인 10명 중 9명의 수입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사들이 예술업계 원조에 나선 배경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카드사들은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큰 중소상공인 지원을 늘리고 있는데 문화예술계 원조 역시 비슷한 취지”라며 “규모가 영세한 예술계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동시에, 고객에게 지속적인 문화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서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카드업계는 고객들에게 공연이나 전시 등 각종 문화 혜택을 제공해왔으나, 최근 코로나로 인해 기존 대면 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무대를 온라인으로 옮겼다”며 “예술업계 언택트 공연 지원은 무대에 목마른 예술인들과 공연이 그리운 고객, 양쪽의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