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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언택트, 이게 되네!”가 놀랍고 무서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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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76호 최영태 편집국장⁄ 2020.05.29 10:26:27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이른바 언택트 시대를 맞아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5월 20일 SK텔레콤이 실시한 ‘언택트 유튜브 기자간담회’(15쪽에 기사)가 그렇다. 여태껏 기자간담회라면 한 장소에 기자들을 모아놓고 현장에서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받고, 모인 김에 추가로 다과나 식사 또는 작은 선물까지도 전달하는 게 관례였다. 사람과 물건이 다수 동원되고 교통비까지 추가되니 고비용 방식이다. 반면 SK텔레콤의 ‘유튜브 기자간담회’는 회사 관계자들이 카메라 앞에 앉고 기자들은 각자의 책상에서 컴퓨터를 열고 회사 측 설명을 들으면서 채팅 창을 통해 질문하고 응답을 받기에, 비용이 극소화된다. 방송장비 등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는 초기에 한 번만 투자하면 된다. 극히 경제적이고, 기자회견의 요체인 질의응답이라는 기능에는 거의 아무런 문제도 없다.

물론 기자와 기업 홍보담당자 사이의 인간적 교류, 즉 흔히 말하는 ‘밥상머리 정’처럼 한국인이 극히 중시해온 대면문화(face to face)는 이런 온라인 만남 방식에서는 발붙이기 힘들다. 아쉬울 수도 있지만, 어쩌랴. “모이면 죽는다. 흩어져라” 시대인데….

이런 온라인 기자간담회는 ‘기술적으로는’ 이미 진즉에 가능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다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어떤 업체가 이런 혁신적인 기자간담회를 기획했다면, “기자를 뭘로 알기에”로 시작하는 엄청난 공격에 시달렸을 것이다.

가능하면 다 이뤄지는 줄 알지만, 가능하지만 이뤄지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다. 기술적으로 가능해도 익숙한 옛날 방식에 머물고자 하는 인간 ‘기질’ 탓에 새로운 기술적 성취가 바로바로 현실화하는 건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신기술이 즉각 현실에 적용되는 시기가 있다. 과거에는 전쟁이 그런 역할을 했다. 생명이 죽어나가는 전시에는 신기술이 초고속으로 현장에 적응된다. 그러기에 ‘전쟁은 비극이지만 전쟁 덕이 이런 과학의 혜택을 입는다’는 씁쓸한 경험을 인류는 품고 있다.

 

5월 24일자 뉴욕타임스는 부고를 1면 헤드라인 기사로 가득 채워 독자들을 놀래켰다.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24일자 뉴욕타임스 1면은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개개인의 명단을 끝없는 부고기사로 실어 신문을 받아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런 지구촌에서는 전쟁 때 그렇듯, 신기술-신구상이 지체 없이 팍팍 현실에 적용된다. 평화 시라면 이런 전격 변화에 강하게 저항했을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시간이 없음을 너나없이 알기 때문이다.

비상한 시기의 비상한 결정들

그래서 이번 호 ‘문화경제’는 이처럼 전격적으로 이뤄지는 한국 경제의 양상을 일부나마 짚어봤다. 야구장에 직접 나가 구경하는 ‘직관’만큼 재밌다는 프로야구의 ‘집관’(집에서 관전, 18쪽), 컴퓨터 장비와 시스템으로 온라인 교육을 돕는 이통 3사 이야기(22쪽) 등이다.

 

5월 15일 광주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팬들의 응원문이 나붙은 가운데 팬들이 펜스 밖에서 관전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프로야구를 집에서 본다는 것(집관)은, 사실 프로야구의 출발 동기를 살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기도 하다. 건축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유현준 홍익대 건축과 교수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서로 바라볼 수 있는 대형 공간은 조직의 문화에 영향을 끼친다. 밥상에 둘러앉아 마주 보며 밥을 먹는 식구가 더 돈독한 가족애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 로마의 콜로세움이다. 로마는 정복지마다 콜로세움 같은 원형경기장을 지었다. 콜로세움은 둥그런 형태로 관객이 서로 마주 보는 구조다. 다 같이 검투사 경기를 보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계승해 각 도시마다 농구, 야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짓고, 각 계절마다 사람들을 서로 쳐다볼 수 있는 경기장에 모아 놓음으로써 국민 통합을 꾀한다.(65-66쪽)

한국에서야 프로야구가 1980년 전두환이 광주에서 국민을 죽이며 집권한 뒤에 국민정신 혼미용으로 3S(스포츠, 섹스, 스크린) 중 하나로 컬러TV 방송 전격 개시와 함께 도입한 것이어서, “프로야구는 TV로 보는 게 더 재밌다”는 논리가 통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원산지 미국에 가면 사정은 좀 다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조용한 나라다. 온 나라의 수사기관과 언론이 몇 달 동안 한 사람을 처단하는 이른바 ‘조국 사태’ 같은 게 없는 나라인지라 평상 생활이 한국만큼 쩌릿쩌릿하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인들은 홈팀의 프로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하루 종일 야구장 근처에서 노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오후 7시에 경기 시작인 데도 낮 12시만 되면 벌써 경기장으로 나가 출근하는 선수들의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음식을 사먹으면서 경기장에서 노는 식이다.

 

KT가 5월 16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와 영상통화를 통해 입시설명회 생중계를 하고 있다. 사진 = KT

프로 경기만이 아니다. 지역 고교 라이벌끼리의 경기가 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면 예매 열기와 응원 행렬 덕에 체증이 빚어질 정도다. 필자가 살던 소도시에는 연중 차가 막히는 일이 없는데 고교 라이벌 경기 때는 길이 막혔다. ‘경기 현장에 둘러앉고자 하는 열기’가 이 정도다.

그런데 이런 ‘밥상머리 온기’, 즉 인간에 기본장착된 본능을 코로나19가 없애려 하고 있으니 참으로 비극은 비극이다.

비상한 해고 사태 안 일어나얄 텐데…

앞에서도 말했듯 전쟁이나 팬데믹 같은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평화 시라면 불가능했을 온라인 기자간담회나 ‘집관뿐인 프로야구’가 그런 사태다. 그런데, 비상한 일 중에는 ‘위기 자본주의(crisis capitalism)’라는 것도 있다. 위기가 일어나면 부동산 같은 자산 가치는 절반 이하로 뚝뚝 떨어지고, 노동자들은 자본가를 신 보듯 할 수밖에 없기에 거부들은 “위기야 제발 일어나라”라고 바라고, 또 위기를 기획하기도 한다는 게 위기 자본주의의 개념이다.

‘밥상머리 온기’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아니 밥상머리에 모이면 안 되는 세상에서, 위기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자본가들은 대량 해고를 떠올린다. 평상 시라면 대량 해고의 댓가가 혹독하지만, 팬데믹 상황에선 “아니, 모이면 죽는다며?”라며 당당하게 대량해고-공장자동화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언택트, 이게 되네!”가 놀랍고도 무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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