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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45) 최선 작가] “‘이런 건 나도 하겠다’는 생각들게 미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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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76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0.05.29 10:26:27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작가 최선은 미술의 의미와 역할, 그 안팎에 존재하는 위계질서를 고민한다. 또한 작품에 미술과 사회의 관계를 예리하게 담아낸다. 이를 위해 예술의 권위에 질문을 던지고, 하찮게 여겨지던 대상들을 전면에 내세워 가치를 뒤집는 작업을 선보인다.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미술을 위해 우리 모두 소유하고 공감하는 요소들을 작업에 들여오기도 한다. 최선의 작업을 경험할수록 미술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즐거운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미술은 참으로 묵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임을 확인하게도 된다.


최선 작가와의 대화

- 작가 최선의 작업은 현실과 분리된 예술, 예술의 모호함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미술이 현실을 적극적으로 담아내야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작가가 의식하지 않아도 작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이 제작된 시대적 상황, 사회적 현실이 담기게 된다.

내가 말하는 ‘현실의 이야기’는 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현실을 뜻한다. 나는 작가로서 나의 일상과 현실에서 이야기들을 가져와 그것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나의 현실과 유리된 미술을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현실이 아름답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은 대로 작품에 담아내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호한 이야기를 하는 작업은 온전히 이해될 수도, 감상될 수도 없다. 미술이라 불리는 행위와 그 결과물이 하나의 의미만을 갖지 않으며 다양한 모습과 층위를 갖는다고는 하지만, 작가마다 지향하는 서로 다른 하나하나의 미술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명의 작가로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미술을 할 뿐이다. 첨예한 현실을 다루고 싶다는 목표는 내가 현실을 많이, 잘 알아서가 아니라 나도 알고 당신도 아는 공유된 의식 속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뜻하지 않게 난관을 마주하는 현대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도록 돕는 도구와 같은 작업을 추구한다.
 

최선, ‘나비’, ink on canvas, 160 x 914cm x 6pieces, 2014~2018 ⓒ금호미술관

- 작가노트에서 ‘예술이 사라져 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술품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내도 최선의 작업 역시 미술 작품으로서 전시되고 유통되며 예술적 가치를 갖게 된다. 미술의 권위를 해체하고자 하는 작품이지만 결국엔 그 안에 포함되거나 스스로 권위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모순 혹은 한계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분명 미술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업한다. 나에게 과거의 미술은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술이란 전통적인 통념과 아우라에 구속된 미술이다. 나는 내 작업이 작품은 작가만의 창작물이라는 생각을 뛰어넘는 데에 이바지했으면 좋겠다. 조금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나는 미술이라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가치로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임에도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제시되는 미술이 싫다. 그래서 이해하고 싶지 않은 미술, 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존재하는 미술을 벗어나기 위해 누구나 할 수 있는 미술을 찾아낸다.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참여하거나 내가 하더라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작업을 한다. ‘이런 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방식과 형식으로 작품과 예술의 가치를 드러내 보이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때론 작품이라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고, 작품이 아니라 여겨져 버려진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내 작품을 객관화하고 보편성에 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술의 절대적 가치나 우상화를 의심하는 현대미술의 역사 앞에서는 작가 자신도 한 명의 감상자로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최선, ‘오수회화’, acrylic on canvas, 97 x 130.3cm, 2019 ⓒ최선

- ‘한국식 팬케이크’(2019)는 노숙인에게 얻은 골판지에 인공색소와 향, 와플 크림 등으로 작업했다. ‘팬케이크’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영역 다툼, 세력 나눔과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그와 같은 의미를 담은 것인가?

‘팬케이크’라는 단어가 그와 같은 의미로 읽혀도 좋다. 전적으로 의도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팬케이크’라는 제목이 붙은 직접적인 이유는 작업에 사용된 재료가 실제 팬케이크를 만들 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 향이나 식용색소로 만들어진 음식이 가짜로 만들어진 미술과 같다고 생각했다. 골판지는 새 골판지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구했다.
 

최선, ‘깊은 그림’, Kimchi juice on Korean paper, 193 x 130cm, 2005(2015 remaked) ⓒ최선

- 식재료를 사용한 ‘한국식 팬케이크’도 그렇고, ‘받아쓰기(비타민 회화)’(2019)에서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비타민 음료가, ‘깊은 그림’(2016)에서는 김치국물이 사용되었다. 온전한 보존이 불가능해 보인다. 작품이 변해가는 과정도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식 팬케이크’의 경우에는 1년이 지나도록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변색도 안 되었고 크림에 곰팡이도 피지 않았다. 인공적인 식재료에 그처럼 상상을 초월한 방부제가 들어가 있다. 방부 처리된 음식과 미술, 이 모두가 현대미술과 현대 사회의 모습인 것도 같다. 그 밖의 작품들은 계속 변하고 있다. 보존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삶이 다 그렇듯이 변하는 과정도 모두 작업이고, 그 과정을 확인하는 것도 의도된 것이다. 변하면 변하는 대로 모두 담으려고 한다.
 

최선, ‘한국식 팬케이크’, packed butter cream containing synthetic colors and artificial fragrance on corrugated cardboard of homeless people, 240 x 158cm, 2019 ⓒ최선

- 침, 혈액, 뼛가루, 모유 등 예사롭지 않은 재료들도 사용했다. 이러한 재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체액을 떠올린 것은 아니다. 너와 나, 모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재료(질료)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사용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혈액은 몸 밖에 나가면 불쾌하거나 괴기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인간에게 생존을 위한 가장 소중한 물질이기도 하다. 공유라는 부분을 생각하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는 날숨으로 ‘나비’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나만의 숨이 아닌 모든 사람의 숨이 담긴 작업이자 살아 있는 순간 그 자체가 기록되는 작업이다. 국경과 경계, 장애를 넘어서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숨을 담아보자는 다소 황당한 목표의 이 프로젝트에는 인종이나 국적, 성별과 무관하게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신체적 조건과 사회적 조건도 크게 상관없다. 만 두 살의 어린아이에서부터 아흔 살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참여했다. 그림을 그릴 때 반드시 물감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전통적인 회화의 재료와 방식을 새롭게 확장시키면서 현대성을 드러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최선, ‘Black Painting’, waste oil on canvas, 193 x 130cm, 2005(2015 remaked) ⓒ최선

- ‘나비’의 작업 과정에 관한 설명을 부탁한다.

참여자 앞에 놓인 캔버스에 내가 울트라마린 색의 잉크를 동전 크기만큼 직접 떨어뜨려 놓는다. 2018년 서울 독산동 두산초등학교 타일에 작업할 때는 청화안료를 사용했다. 잉크의 양은 조금씩 다르게 제공된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숨으로 잉크를 움직인다. 잉크를 부는 과정은 들숨과 날숨의 반복이다. 나는 참여자들에게 특정한 형태를 만들려 하지 말고 잉크를 부는 행위만 생각하라고 요청한다. 숨 그 자체에만 집중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모두가 공유하는 지점을 찾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미술 행위를 진행하는 작업이다. ‘나비’라는 제목도 자신의 작업이 나비 같다는 한 참여자의 소감을 듣고 따라 붙였다. 2014년에 딱 한 번만 진행하려던 처음 계획과 달리 꽤 긴 프로젝트로 지속되고 있다.

- 특정한 형태를 생각 안 하고 잉크를 분다면 더 불규칙한 이미지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완성된 작품 이미지를 보면 꽤 균일하다. 정말 나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캔버스가 올려진 탁자의 높이나 참여자의 위치와 같은 숨을 내쉬는 환경이 비슷하다 보니 결과물도 비슷하게 나오는 듯하다.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같지는 않다.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같다고 표현하고 싶다.
 

최선, ‘멍든 침’, acrylic on canvas, 204 x 560cm, 2016 ⓒ최선

- ‘오수회화 - 적분의 그림’(2014), ‘멍든 침’(2016) 등을 보면 색채가 매우 선명하다. 감각적이고 세련되었다는 인상도 받는다. 그런데 제목을 보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불편해진다. 오염된 물, 침을 소재로 작업을 했는데 완성된 작품은 선명하고 깨끗하다.

‘오수회화’나 ‘멍든 침’은 우리가 일상에서 인지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발색이 좋고 보존력도 좋은, 소위 고급이라 말하는 안료로 그림으로써 아우라가 부여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멍든 침’은 사람들이 길에 침을 뱉는 것을 보고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하다 ‘입이 써서 삼킬 수 없는 지경인 것은 아닐까’라는 답변을 떠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사람의 침은 투명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투명한 물감 같다. 그래서 가장 뚜렷하게 보이도록 선명한 보라색을 쓰게 되었다. 과거 보라색은 상류층에서만 누릴 수 있는 고급 안료였다. 나는 가장 낮은 것을 역사적으로 가장 귀했던 고급 안료로 그려냄으로써 그 위치를 이동시켰다. ‘오수 회화’도 부패한 오수에 떠다니는 부유물을 시각적으로 청명해 보이는 파란색으로 그린 것이다.

- 오늘날 작가로서 활동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미술의 역사는 용기 있는 작가들의 대범한 시도와 도전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들은 어떤 상황을 뒤집어서 생각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나는 창의력은 다른 어느 때보다 난관에 직면했을 때 새로운 해결방법을 생각하면서 강하게 발휘된다고 본다. 비록 가진 것 없는 빈손일지라도 작가는 낯선 순간, 어려운 고비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 역시 그런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별 작가들이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들이 공유될 때 사회는 예술적 감수성으로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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