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업 직원과 고객이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된다. 동서식품은 재능 있는 여성 신인 작가를 발굴 및 지원하는 ‘삶의 향기 동서문학상’, 동원그룹은 부모와 아이의 독서를 장려하는 ‘동원 책꾸러기’ 캠페인을 진행 중이고, 크라운해태제과는 직원들의 창작 시집 ‘바람이 세운 돌’을 최근 출간했다.
기업들이 문학 활동을 장려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삶의 향기 동서문학상’(이하 동서문학상)의 경우 역사가 꽤 됐다. 1989년 시작돼 30여 년 동안 맥락을 이어왔다. 올해 15회를 맞아 공모를 진행 중이고, 응모자들의 창작 활동을 돕기 위해 기성작가와 예비작가가 소통하는 ‘멘토링 클래스’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식품기업과 문학 활동과의 연결고리가 처음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잘 살펴보니 그 안엔 소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먼저 동서문학상의 주체엔 여성이 있다. 1973년 시작한 ‘주부에세이’를 모태로, 여성 신인문학상으로서의 정통성 강화에 힘써 왔다. 여성 소비자는 커피를 주요 상품으로 내세우는 동서식품에게 중요한 고객층이다. 동서식품이 2018년 4월 오픈해 2년간 누적 방문객 수가 약 40만 명에 이르는 맥심의 브랜드 체험 공간인 ‘맥심 플랜트’의 포인트 가입 정보에 따르면, 전체 가입자 중 20~30대 여성의 비율이 약 60%에 이르는 등 여성 고객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주요 고객층에게 동서식품은 광고 이미지와 홍보성 멘트로 회사를 알리기보다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소통하면서 친근한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힘을 기울였다. 동서문학상이 배출한 이은정 작가는 “동서문학상을 통해 20년 만에 작가의 꿈을 이뤘다”고 벅찬 수상 소감을 밝혔고, 동서문학상을 거친 김경희 작가, 최분임 시인 등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원그룹 또한 고객과의 소통에 문학 활동을 끌어 들였다. 2007년부터 시작돼 만 6세까지의 자녀를 둔 가정을 대상으로 매월 그림책을 무료로 보내주는 ‘동원 책꾸러기’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는 교육용 그림책 ‘코로나바이러스’를 배포해 학부모의 호응을 받았다. ‘동원 책꾸러기’와 관련해 동원그룹 측은 “기존의 가치보다 뛰어난 생활 문화의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창의력 증진 → 소통의 연결고리
크라운해태제과는 내부 직원과의 소통에 문학 활동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11년부터 전개 중인 ‘아침을 여는 사람들’은 직원들이 작가가 되는 자리다. 최근 출간한 시집 ‘바람이 세운 돌’은 ‘아침을 여는 사람들’ 시리즈로는 네 번째로, 크라운해태제과의 직원들이 2년 동안 창작한 4000여 작품 중 현역 시인이 고른 우수작 223편을 담았다.
크라운해태제과가 ‘아침을 여는 사람들’을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는 문학을 통한 창의력 증진이다. 크라운해태제과 측은 “원가를 확 낮춰 싸구려 과자로 가거나, 스토리와 예술적 감성을 담은 명품 과자를 만들거나, 제과업계가 살아남을 방법은 이 두 가지뿐이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고 밝혔다.
이런 창의력 증진 기반의 중심을 이루는 게 소통이다. 주말에 등산 동원 또는 체육 대회를 하거나, 영양가 없는 딱딱한 회의를 늘어놓는 형식적 소통이 아니다. 흥미를 느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를 통해 서로 소통하며 성취감을 느끼도록 이끄는 것. 크라운해태제과 측은 “사내 교육 정도로 의미를 뒀던 직원들도 창작시집이 실제로 출간되는 걸 보면서 시에 대한 열정이 자연스럽게 높아졌고 작품 수준도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예술을 통한 소통의 시너지 효과는 기업 내외부에서 드러나고 있다. 동서문학상은 30여 년 동안 6000여 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동원그룹이 배포한 ‘코로나바이러스’는 보름도 채 되지 않아 1만 부 이상 배포가 완료됐으며, 고객과 함께 독서 습관을 길러 성장한다는 친근한 브랜드 이미지도 쌓았다. “직원들의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크라운해태제과 측은 몇 년 전 대박을 쳤던 허니버터칩 또한 소통을 기반으로 한 예술 경영의 결과물로 분석하고 있다.
한 줄의 글, 한 권의 책은 때로는 인생을 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준다. 그만큼 문학이 지닌 소통의 힘은 강력하다. 그 소통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보다 많이 전개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