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2호 윤지원⁄ 2020.08.24 16:53:59
상반기 우리나라의 순수 전기자동차(EV) 시장은 절반 이상 미국 기업 테슬라에게 잠식당했다. 전기차 신차도 없고, 이렇다 할 이슈도 없이 잠잠했던 국산 완성차 업체들은 하반기 들어 그동안 갈아 둔 저마다의 무기를 하나씩 선보이며 향후 전기차 시장이 새로운 판도로 그려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상반기는 ‘테슬라 천하’ ... 경쟁자 없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전기차 판매량은 2만 2267대로 전년 동기보다 23% 증가했고, 이중 전기 승용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2.7% 감소한 1만 6359대였다.
전기 승용차 시장에서 국산차와 수입차의 상반기 성적은 극명하게 갈렸다.
국산 브랜드의 전기 승용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3.1% 감소했다. KAMA는 신모델 출시 지연 및 대당 보조금 축소, 개인완속충전기 보조금 폐지 등을 주된 감소 이유로 분석했다.
반면에 수입차는 564.1%나 급증했다. 다수의 신모델들이 선전한 결과다.
특히 미국의 테슬라 판매량은 모델3의 본격적 투입 확대로 전년 대비 무려 1587.8%나 증가했다. 상반기 국내 전기 승용차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43.3%였다. 7월까지 테슬라가 국내에서 판매한 모델3는 6888대나 된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도 테슬라는 다수의 완성차 업체들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뛰어난 실적을 거뒀다.
르노와 다임러, 폭스바겐, 포드 등 유럽과 미국의 완성차 업체 대부분이 올해 상반기 한화로 조 단위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런데 테슬라는 2분기에만 매출 60억 달러(한화 약 7조 1000억 원)에 1억 400만 달러(약 1200억 원)의 순익을 내면서 ‘나홀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지난 1년간 주가는 무려 500% 폭등했고, 토요타를 넘어 전 세계 자동차 회사 가운데 시가총액이 가장 많다.
반면 국산 대표 전기차들의 성적은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전기차 1위를 기록한 코나 일렉트릭(EV)의 상반기 판매량은 4078대로 동급 경쟁모델인 테슬라 모델3 판매량의 3분의 2에도 못 미쳤다. 그 결과 현대차의 올 상반기 전기차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43% 감소한 총 4877대에 그쳤다.
판매량 3위 니로를 앞세운 기아차 역시 55% 줄어든 2309대에 불과했고, 쉐보레의 볼트EV는 23.5% 줄어든 1285대 팔렸다.
르노삼성차는 상반기 SM3 Z.E. 457대, 트위지 421대를 각각 판매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상반기 국산 브랜드의 전기차 판매 부진은 불가피한 결과였다. 테슬라 모델3의 본격적인 인도가 시작된 가운데 이에 맞설만한 신차 출시 계획을 가진 국산 브랜드는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차 코나EV의 연식변경 모델이 올해 초 출시되긴 했지만,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가 10.25인치로 커진 것, 공기청정모드, 2열 열선시트 옵션 등 실내 편의기능이 일부 추가됐을 뿐 성능에 대한 변화는 없었다.
국내 브랜드, 칼 빼들었다
그런데 이처럼 상반기 복지부동하던 국내 브랜드들이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공수 교대를 예고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테슬라 독무대나 다름없던 국내 전기차 시장에도 서서히 변화가 감지된다.
1번 타자로 나선 것은 르노삼성자동차다. 르노삼성차는 8월 18일 소형 전기 해치백 차량인 르노 조에(Renault ZOE)를 한국 시장에 공식 출시했다.
르노 조에는 2012년 유럽 시장에 처음 선보인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약 21만 6천 대의 판매량을 기록한 베스트셀러 전기차고, 이번에 한국에 출시된 모델은 지난해 부분 변경을 거친 3세대 모델이다.
르노 조에는 유럽 전기차 시장 1위를 장시간 이어가고 있는 모델이며,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테슬라의 모델3 폭격에서도 권좌를 빼앗기지 않았다.
앞서 8월 10일에는 현대차가 향후 국내 및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공략할 전기차 전용 브랜드 ‘아이오닉’을 론칭하고, 내년 준중형 CUV ‘아이오닉5’(IONIQ 5) 출시를 시작으로 2024년까지 3종의 신형 전기차를 출시한다고 예고했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전기차 56만 대를 판매하여 전기차 선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올해 1~5월 전기차 판매량에서 세계 6위에 오른 현대차가 세계 1위로 도약할 발판으로 아이오닉 브랜드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울러, 유일하게 전기차 모델이 없던 쌍용자동차도 드디어 내년 1월 첫 전기차인 준중형 SUV ‘코란도 e-Motion’(이모션)의 생산에 들어가기 위한 막바지 품질 점검에 한창이다.
차기 전기차 시장은 각양각색 매력 전쟁
그런데, 이처럼 최근 새롭게 소개됐거나 소개될 예정인 전기차들은 저마다 다른 장점들을 내세우고 있으며, 테슬라의 베스트셀링 모델들이나 국내 시장의 기존 인기 전기차 모델들과도 다른 전략을 펼쳐 전기차 시장 자체의 판도를 새롭게 재편할 전망이다.
겉모습만 봐도 각양각색이다 르노 조에는 소형차고, 아이오닉5는 최초의 국산 자동차 ‘포니 쿠페’를 모티브로 한 콘셉트카 ‘45’를 기반으로 한다. 또, 코란도 e-Motion은 코란도 기반의 국내 첫 준중형 SUV 전기차가 될 예정이다.
르노 조에는 올해 상반기 유럽 시장에서 테슬라 모델3를 누르고 전기차 판매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모델3와 동일한 성능 및 상품성을 겨뤄 이긴 것이 아니다. 르노 조에와 모델3는 여러모로 다른 차다.
우선, 르노 조에는 소형 해치백이다. 폭스바겐 폴로, 르노 클리오 등의 작은 차들은 유럽에서 특히 각광 받는 편임을 생각하면 르노 조에도 인기를 끌만하다. 쏘울 EV, 코나 EV, 니로 EV 등 우리나라의 전기차 차급은 대체로 소형 SUV~준중형 SUV로 나와 있는데, 조금 더 작다. 테슬라 모델3도 중형세단이다.
차가 작고 가벼운 만큼 탑재한 배터리 용량은 54.5kWh에 불과하다. 완충 시 주행 가능 거리는 309km(WLTP 기준 395km)이다. 모델3는 가장 낮은 트림을 제외하면 75kWh 용량의 배터리가 탑재되어 완충 시 415km~492km(WLTP 기준 530~600km)를 갈 수 있다.
단, 유럽은 미국에 비해 땅 크기는 작고 인구밀도는 높으며 전역에 걸쳐 크고 작은 도시가 발달해 있다. 유럽의 전기차 소비자는 대체로 미국인에 비해 일상적으로 다니는 거리가 짧다.
한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유럽의 전기차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완충 시 주행 가능 거리가 300km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있어 모델3의 주행 가능 거리가 딱히 장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르노 조에, 부담 없는 가격의 소형 전기차
모델3를 비롯한 테슬라 전기차의 또 다른 장점은 뛰어난 자율주행 기술과 첨단 운전 보조 기능이다. 하지만 자동차 자율주행과 관련된 규정은 아직 국가별,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테슬라 전기차에는 자율주차 기능은 물론이고 주차되어 있던 차를 호출하면 자율주행으로 운전자에게 찾아오는 기능이 있으며, 호평이 자자한 편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주차장에서 자율주차나 차량 호출을 하더라도 운전자가 일정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한, 도로 주행 중 자율주행 기능으로 차로를 변경할 때에도, 차로 변경 개시부터 완료까지 5초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런 점은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이 무용지물이 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르노 조에의 또 다른 뚜렷한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이다. 테슬라 모델3의 국내 가격은 보조금 지원 전 기준으로 5239만~7239만 원이다. 국산 중 가장 판매량이 많은 코나EV는 4700만~4900만 원 정도다. 반면, 르노 조에는 3995만~4495만 원이다. 서울시에서 보조금을 받으면 최저 2809만 원에 구매할 수 있다.
르노삼성은 그동안 차급별 모델의 가격을 타사 경쟁 모델보다 저렴하게 책정하여 재미가 쏠쏠했던 경우가 적지 않다. 올해 초 출시된 중형 SUV XM6의 인기도 세련된 디자인이나 첨단사양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주된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르노 조에도 유럽 시장에서 검증된 상품성에 가격경쟁력이 더해지며 국내 전기차 시장 새로운 강자로 도약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아이오닉, ‘모빌리티와 삶의 결합’ 추구
현대자동차가 새로 출범시킨 아이오닉 브랜드는 이제부터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현대차의 의지가 담겨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전기차를 ‘차세대 전기차’라고 부르며 기존 경쟁 전기차 모델들보다 우월해진 성능은 물론, 전기차라는 개념에 대한 접근법부터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선, 아이오닉의 신차에는 현대차가 새롭게 개발한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가 적용된다. 이 신규 플랫폼에 그동안 축적된 현대차의 전동화 기술이 합쳐져 획기적인 성능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 일례로 현대차는 아이오닉 전기차가 20분 내 충전이 가능하고, 완충 시 450km 이상 주행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현대차는 또한 아이오닉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전동화 경험의 진보’(Progress electrified for connected living)라며, 전동화 기술에만 관심을 두기보다는 고객에게 새로운 모빌리티 경험을 선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예컨대, 현대차는 아이오닉 브랜드의 전기차가 ‘실내 공간 극대화’를 통해 ‘이동수단’을 넘어 다양한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생활 공간’으로 그 개념을 확장한다고 밝혔다.
자율주행 기술이 발달하고, V2X(Vehicle to Everything) 기술로 자동차가 모든 것과 연결되는 시대에는 자동차가 단순히 이동만 하는 수단이 아닌, 새로운 생활 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는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실제로 담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인해 인류는 ‘드라이브 인 진료’, ‘드라이브 인 주주총회’처럼 자동차의 비중이 더욱 커지는 새로운 시대의 삶의 방식을 이미 경험하기 시작했다.
테슬라 오너들의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이들은 테슬라의 고질적인 단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단차 등의 조립 불량 문제라던가, 어려운 서비스 문제, 비싼 보험료 등에는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대신 이들은 테슬라 전기차가 갖춘 슈퍼카 수준의 성능,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 화학전에서도 살아남을 정도의 공기청정 성능 등등의 혁신 기술들이 마치 10년 전 등장한 애플의 아이폰이 ‘스마트폰’ 이라는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미래를 열었을 때와 같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현대차가 아이오닉 브랜드의 전기차를 통해 제공하려는 것도 이처럼 지금과는 다른 고객 경험이 포함된 미래 모빌리티의 가치인 것이다. 이런 의도는 현대차가 다시금 부활시킨 '아이오닉'이라는 브랜드명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현대차는 2016년 제네바모터쇼에서 미래 모빌리티 혁신 연구 활동인 ‘프로젝트 아이오닉’을 출범시킨 바 있다. 프로젝트 아이오닉은 ‘이동의 자유로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모빌리티와 삶의 결합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충족 ▲전통적 모빌리티 제약 극복을 핵심 연구 영역으로 정하고, 사회·공학·예술 등 다양한 부문과 함께 미래 모빌리티와 고객 라이프 스타일 혁신을 위한 연구에 주력했다.
그리고 현대차는 그 철학과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이번에 아이오닉 브랜드를 출범시켰으며, 이를 통해 ‘전기가 동력원인 이동수단’이라는 개념을 넘어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대차 고객경험본부장 조원홍 부사장은 “아이오닉 브랜드는 고객 경험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며 “전기차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고객에게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기반 진보한 전동화 경험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