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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왜 한국은 ‘중세의 성’ 같은 기업 고집하며 디스카운트 당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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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84호 최영태 편집국장⁄ 2020.09.28 10:22:12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이번 호 ‘문화경제’는 최근 펼쳐지고 있는 기업들의 살길 찾아 나서기를 두 개의 묶음으로 다뤘다. 하나는 “돈이 더 들더라도 친환경 포장재”를 적용하는 기업들의 [친하려면 친환경] 특집(1)이고, 다른 하나는 백화점 매장에 미술 작품이 들어선 변화를 다룬 [쇼핑&아트] 특집(2)이다.

모두 변모를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지만 1과 2는 목적하는 때(時)가 조금 다르다. 1 친환경 노력은 장기 플랜의 성격이 짙다. 친환경에는 아무래도 돈이 더 들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미래의 고객’을 잡기 위한 노력으로서 친환경에 나선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특집 제목을 [(미래 세대와) 친하려면 친환경]으로 잡았다.

기후변화로 난리다. 이 코로나19 난리 와중에도 유럽인들의 최고 관심사는 기후변화란다. 코로나19보다 기후변화가 더 무섭단다. 이 기후변화의 범인은 누구인가? 한국으로 국한하면 1960년대 이후 산업화에 나선 장-노년층이다.

기성세대 전체가 ‘원수’ 되기 전에

기후변화가 더 심해져 현재의 장-노년 세대가 고생함은 물론, 미래세대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즉 폭우와 고열로 해안가가 물에 잠기고, 폭우가 인가를 휩쓸어 버린다면, 앞으로 수십 년간 소비자가 될 미래세대들은 친환경에 뒤진 기업들의 물건을 절대로 사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기업들의 친환경 노력은 더이상 장식품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회 기후 비상선언 결의안 채택 촉구 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두 번째 [쇼핑&아트]의 백화점 변신은 좀 더 ‘당장’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 코로나19가 ‘집으로 배달’ 시대를 훅 앞당김에 따라 배송 업체는 물량 폭주에 시달리는 반면 대형 매장들은 점점 한산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대형 매장들은 “택배 시대에 사람들을 매장으로 모으려면 어째야 하나?”라는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백화점들에 전국의 맛집들이 입주하고 도서관이 들어선 게 바로 이런 집객 효과를 노린 것이었지만 배달음식 전성시대가 되면서 “방금 만들어진 음식을 식당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상식도 과거지사가 되고 있으니, 이제 “그래도 예술 작품은 현장에서 몸으로 느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전략이 나온 것이다.

최고 입지에 자리잡고 세상을 호령하던 대형마트와 최고급 백화점들이 방문객 모시기 작전에 나섰다니 참으로 변화는 빠르고도 깊다.

왜 애플은 2400조, 삼성전자는 300조?

이런 세상에 귀에 꽂히는 말로 이런 것도 있다. KBS 라디오 ‘최경영의 경제 쇼’에 출연한 해외주식 투자 전문가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는 ‘미국의 앞선 주주 자본주의’를 소개하면서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야후라는 기업이 있었다. 창업기, 전성기, 폐업기의 최고경영자(CEO)가 각각 다르다. 회사를 잘 키우는 CEO가 있고, 폐업을 잘하는 CEO가 있다. 회사의 주인인 이사회는 시기에 맞게 CEO를 영입한다. 그런 가버넌스(기업 지배구조) 면에서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최경영 사회자가 “아무리 그래도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폰의 성능-매출 차이가 크지 않은데, 애플의 주가 총액이 2400조이고, 삼성전자는 300조라는 차이는 이해가 안 된다”고 불평하자 최 대표는 “요즘 대세 인기 주는 플랫폼 경제를 하는 애플 같은 기업이고, 삼성전자는 플랫폼 기업이 아니지 않느냐”고 답변했다.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인 암스테르담 주식시장을 그린 1653년 그림. 신분과 상관없이 돈이 모여 ‘유한책임과 무한이익’을 누린 주식회사의 정신은 미국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 

플랫폼 경제가 대세라면 그 흐름을 CEO를 바꿔가면서 선도하는 게 미국 기업들이다. 원래 주식회사란 개념이 1600년대 초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질 때도 ‘유한책임과 무한이익을 나눈다’는 개념에서 나온지라 자본주의 종주국들에선 이 같은 ‘CEO의 역할 나눔’이란 개념이 전혀 낯설지 않은가 보다.

반대로 한국은? 한 번 창업하면 그 가족이 대를 이어 “망하면 망할지라도” 경영하려고 든다. ‘주식 투자의 현인’으로 존경받는 워렌 버핏의 “1960년대에 아버지가 올림픽 금메달 땄다고 1980년대에 아들이 또 금메달 딸 거라고 예상하는 게 말이 되냐?”라는 말도 한국에선 경청되지 않는다. 이래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을 싸게 보는 이유)다. 21세기의 한국 기업주들이 아직도 중세의 성주처럼 보이는 이유다.

한국 자본주의를 제대로 세우는 작업을 보수당과 보수언론이 해주면 딱 제격이겠구만, 이들은 한 대학의 표창장 위조 여부, 그리고 한 병사의 휴가 적법성 이외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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