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를 넘어선 ‘코로나 앵그리’ 시대다. 감소 추세를 보였던 코로나19 확진자가 재확산, 장기화되면서 사회·경제 활동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이로 인한 우울감과 무기력증에서 더 나아가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것.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기획 연구단’이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을 주제로 8월 25~28일 전국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47.5%가 코로나19 뉴스를 접할 때 느끼는 감정으로 ‘불안’을 꼽았고, ‘분노’가 25.3%로 뒤를 이었다. 특히 ‘분노’는 8월 초 응답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 이로 인한 분노로 시비, 폭력 사태가 불거지는 일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이런 코로나 앵그리를 해소하기 위한 업계의 마케팅이 눈길을 끈다. 매운 음식이 불티나게 팔리고, 집에서 마음을 정화하며 즐길 수 있는 놀거리와 볼거리까지, 스트레스 해소를 겨냥한 제품 및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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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김지희 씨에겐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창문 쪽에 작은 화분들을 늘어놓아 마치 작은 정원처럼 꾸민 것. 정원에 ‘해피 가든’이라고 이름도 붙였다.
그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최근엔 또 재확산 분위기로 외출을 많이 꺼렸다. 그런데 집에만 있다 보니 무기력해지고, ‘언제까지 이렇게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나’ ‘도대체 코로나19는 언제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화까지 났다”며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할 때 친구가 식물을 키워보라고 추천해줬다. 처음엔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식물을 키우는 나름의 즐거움이 있고 시간도 잘 가더라. 집안의 분위기도 보다 화사해져 우울하고 화났던 기분도 조금씩 안정됐다. 점점 하나씩 화분을 늘렸고, 이름도 붙이면서 재미를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불거진 코로나 블루, 코로나 앵그리 시대에 반려 식물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식물을 활용해 집안을 정원처럼 가꾸는 ‘홈 가드닝(가정 원예, Home gardening)’이 집을 꾸미는 놀이 문화로 인기다.
실제로 롯데마트가 코로나19 사태가 부상한 올해 4~6월 관엽식물의 전년 대비 매출을 살펴본 결과, 4월 19.5%, 5월 39.9%, 6월 5.4% 신장했다. 화분과 화병, 조화 등을 포함한 ‘원예데코’ 상품군의 매출도 전년 대비 4월 47.5%, 5월 20.0%, 6월 48.9%로 신장세를 이어갔다. 인터파크 또한 6~8월 식물을 가꾸는 가드닝 상품군 매출이 전년보다 32% 증가했다고 밝혔다. 모종·묘목과 흙 매출이 각각 92%, 88% 증가했고, 아울러 화분 48%, 자갈이나 식물 영양제 등 기타 원예용품도 53% 뛴 것으로 나타났다. 화병 등 인테리어 소품과 인조 잔디, 실내분수 등 정원 소품 매출도 각각 50%, 26%씩 늘었다.
과거엔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홈 가드닝의 목적이 공기 정화에 집중된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외부 활동이 줄어든 사람들이 공기 정화와 더불어 식물로부터 정서적 안정감을 받는 ‘반려 식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마트 측은 “최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홈 가드닝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기존의 관리가 용이하고 인테리어 및 공기 정화 효과를 줄 수 있는 관엽식물과 간편하게 실내 공간을 미니 가드닝으로 꾸밀 수 있는 원예 데코용품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홈 가드닝 용품 인기에 관련 상품 기획전도 활발히 열려
이에 업계에서는 홈 가드닝을 주력으로 내세운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홈 가드닝에 대한 고객들의 수요를 고려해 다양한 홈가드닝 제품을 7월 출시해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먼저 홈 가드닝 상품으로 꾸준히 인기가 있는 공기정화 식물 5종을 판매 중이다. 대표 상품으로 잎이 두꺼워 원예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는 고무나무, NASA가 선정한 공기정화 식물인 아레카야자가 있다.
여기에 집을 정원으로 꾸밀 수 있는 조립식 원목 2단 정리대와 원목 스텝스툴, 베란다나 테라스 연출에 쓸 수 있는 내추럴 인조 잔디 데크 타일, 헤링본 원목 데크 타일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롯데마트 측은 “홈 가드닝 트렌드에 맞춰 초보자도 쉽게 기를 수 있는 식물부터 원예 인테리어 제품까지 다양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한국화훼농협과 손잡고 반려 식물 입문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홈 가드닝 용품을 9월 출시했다. 적상추 씨앗, 바질 씨앗, 레몬밤 씨앗, 방울토마토 씨앗 등 관리가 용이하고 식재료로 활용이 가능한 품종의 씨앗 4종과 배양토, 화분 및 화분 받침대, 영양제, 압축 분무기 등을 포함한 총 15종이다. 구매 편의성을 고려해 홈가드닝 용품 15종을 한데 모아 홈가드닝 전용 매대로 운영하며 씨앗은 각각 2000원, 이외 배양토, 모종삽, 화분, 영양제, 압축 분무기 등은 2500원~8500원대로 구성했다.
GS25는 1차 물량으로 준비한 500개의 홈가드닝 전용 매대를 주요 오피스, 주택가 상권의 GS25를 통해 9월 초 첫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올해 연말까지 전국 GS25로 확대할 방침이다. GS25 측은 “코로나19로 뉴노멀 시대가 도래하면서 편의점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니즈와 가치 또한 다변화되고 있다”며 “특히 반려 식물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는 등 정서적인 가치를 담은 취미생활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이번에 출시한 홈가드닝 용품이 큰 호응을 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인터파크는 9월 식물 인테리어 관련 상품 판매량이 늘자 ‘그리너리 하우스 기획전’을 시작했다. 각종 식물부터 화병, 화분, 씨앗, 흙/자갈 등 각종 원예용품을 한데 모아 최대 20% 할인된 가격에 선보인다. 인터파크 측은 “초보자라면 각자 집 환경에 맞는 식물을 고르는 게 좋다. 만약 집에 자연광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없다면 조화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올해 추석선물로 반려 식물이 등장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갤러리아 명품관은 언택트 트렌드를 반영한 추석 선물세트로 반려 식물을 선보였다. 공기정화식물 클루이사, 초보자도 도전해볼 수 있는 여인초와 떡갈고무나무, 사계절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남천 등이 주력 상품에 이름을 올렸다. 갤러리아 측은 “이번 추석은 코로나19로 고향 방문 등 교류와 만남이 줄어드는 조용한 명절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반려 식물은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을 찾는 소중한 이들에게 선물하기에 적합하다”고 밝혔다.
취미생활에 가치를 곁들이는 활동들도 전개되고 있다. 스타벅스는 코로나19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해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새활용’ 프로젝트를 지난 5월 전개해 눈길을 끌었다. 매장에서 제공받은 일회용 컵, 종이 캐리어 등의 일회용품에 각자만의 새로운 가치를 더해 전혀 다른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해당 프로젝트에선 일회용컵을 화분으로 재활용한 모습도 많이 보였다. 평소 스타벅스를 잘 이용한다는 20대 권아름 씨는 “작은 화분이 필요했는데 스타벅스에서 사용한 일회용 컵이 사이즈가 적당해 화분으로 쓰고 있다. 로고도 귀여워 디자인적으로도 보기 좋아 집안에 작은 스타벅스 일회용 컵 정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9월 햇반 용기를 활용해 미니정원을 만드는 ‘햇반 가드닝’ 활동을 진행했다. 경북 포항시 무지개지역아동센터에서 초, 중생들이 CJ제일제당이 전달한 햇반 용기 200개와 목재 진열장, 식물 및 배양토 등을 활용해 자신만의 화분 작품을 만들었다. 배양토를 곰 모양으로 만들어 그 위에 식물이 자라나게 연출한 화분부터 아담한 선인장을 담은 화분까지 다양한 작품이 탄생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때 사람들이 밀집된 도심을 벗어난 교외에서 자신만의 텃밭 가꾸기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이조차 여의치 않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며 “이 가운데 집 안 곳곳에 화분을 두거나 베란다, 옥상 등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자신만의 텃밭, 정원을 가꾸는 홈 가드닝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큰 책임감을 동반하는 반려 동물과 달리 반려 식물은 초심자도 키우기 편한 습성도 있어 부담 없이 취미생활로 즐기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