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8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0.11.27 11:18:24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새로운 전시 공간을 알게 되는 일은 늘 즐겁다. 복합문화예술공간을 지향하는 ‘타이프(TYPE)’가 첫 전시 소식을 알려왔다. 실험적인 전시를 기획하는 네 명의 독립큐레이터와 다섯 명의 작가가 만났다. 그런데 전시장 외의 공간에서도 미술과 일상 사이에 편안한 교집합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반응하며 관객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공간이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갈지 궁금증이 생겨 인터뷰를 진행했다.
“생활과 예술이 자연스레 부분교차하는 공간을 추구”
박지수(타이프/메이디자인 대표) 인터뷰
- 복합문화예술공간인 ‘타이프’가 문을 열었다. 타이프는 두 층에 걸친 전시장, 카페, 작가들과 협업하거나 직접 제작한 오브제들을 판매하는 공간과 스튜디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장인 ‘공간 타이프’에서는 현재 ‘작당모의: New party, New party’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공간을 열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현재 내가 운영하는 메이디자인은 공간 설계 및 디자인, 인테리어를 하는 회사이다. 주로 다양한 일상 공간을 디자인하는 업무를 맡다 보니 의뢰인 중에 공간의 개념에 어울리는 예술 작품을 선택 혹은 추천해주길 요구하는 분들이 있었다. 공간을 종합적으로 디자인하는 업체이니 공간에 맞는 작품을 잘 선택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작품 구매를 위해 작가와 작품, 미술 시장 등을 조사하게 되었고 나아가 미술계의 상황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점점 ‘미술에 대해 더 알고 싶다, 미술 안으로 더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다. 내가 미술을 전공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한편으로 나의 능력을 발휘해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고 관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예술을 다루는 공간 기획과 관련해서 보다 다양한 실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특히 미술 소비자들이 자연스레 미술을 만날 수 있는 공간, 작가와 관객 혹은 수집가 사이에 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을 만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 좋은 작가들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싶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인데 이번에 주변의 도움으로 실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전시장 2개 층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해주신 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승아 큐레이터를 비롯해 그동안 연고가 있던 작가들도 힘이 되어 주었다.
- ‘타이프’가 지향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전시장뿐 아니라 다양한 성격을 가진 공간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고, 현재는 적당한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그동안 상업 공간이나 주거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조금 더 일상으로 파고드는 예술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서로 다른 영역이 만나려면 물리적으로도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안적인 예술 공간, 카페, 오브제를 판매하는 공간, 그리고 일상의 공간이 서로 이어지게 구성했다. 일례로 지하 1층 전시장은 카페와 연결된다. 물론 대중들이 편하게 접근하는 공간에 작품을 놓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작품의 안전과 같은 현실적인 부분도 해결해야 한다. 첫 전시를 준비하면서 참여한 작가들의 반응이 걱정되기도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호응이 좋았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직도 미술의 공간과 일상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감상을 위해서든, 구매를 위해서든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문턱을 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러나 나는 그 둘이 완벽히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둘의 전체가 아닌 일부가 자연스레 겹쳐지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 앞으로 미술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가 결합된 전시와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나는 미술계 밖의 사람들을 흡수하고 싶다. 작가들에게도 자신들만의 리그를 벗어나 대중과도 소통할 수 있는 중간 지대가 필요하다. 작가도, 관객도 긴장을 풀고, 어깨에 힘을 빼고 서로의 공간으로 침투할 수 있게 돕는 플랫폼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상 벗어나는 새 시도 하는 열린 공간”
이승아 큐레이터 인터뷰
- ‘공간 타이프’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큐레이터 이승아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다. 독립큐레이터를 생각할 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이유가 궁금하고, 일하면서 느끼게 되는 차별화되는 매력이나 만족감이 무엇인지도 듣고 싶다.
처음부터 (독립)기획자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원래 나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2014~2015년까지도 작업과 기획을 병행했다. 1999년 작가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미디어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큐레이터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전시 기획도 하게 되었다.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같은 독립 공간에서 약 2년 동안 예술과 기술의 융복합과 관련된 전시와 워크숍 기획을 주로 담당했다. 같은 시기에 연구원으로 미디어 아트와 관련된 산학 협력도 진행했다. 워크숍 기획과 산학 협력을 진행하면서 함께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전시 기획은 속도전이라 많은 과정이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기본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과 실험을 놓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1~2달 동안 진행되는 워크숍에서 몰입해 다룬 뒤 그 결과를 전시로 선보였다. 이후 새롭고 낯선 기술에 함몰되어 신기한 것에서 끝나는 미디어 아트 작품이 많다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기회가 되어서 싱가포르에 8년 정도 머무르게 되었고, 거기에서 대한민국-싱가포르 수교 40주년 행사인 ‘싱가포르 오픈미디어아트페스티벌’(현재는 ‘오픈미디어아트페스티벌’로 변경)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후 전시 기획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져서 현재는 독립기획자로서 프로젝트 기반의 전시 기획과 교육 관련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네 번째 ‘오픈미디어아트페스티벌’은 진행했다. 내게 주어진 새로운 일들을 하나하나 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격적이라 할만한 시도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 독립큐레이터로서 활동하면서 제일 힘들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항상 힘들지만(웃음) 천성적으로 어려움을 잘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편이다. 안정적인 예산이나 인력을 바탕으로 기획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기관에 소속된 큐레이터와는 또 다른 제약이나 압박이 있다. 그래서 네트워크 형성이 정말 중요하다. 활동 초기에는 대부분의 일을 나 혼자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이내 업무의 효율성과 전시의 규모 면에서 한계가 있음을, 협력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페스티벌 형태의 전시를 기획하다 보면 더욱 그렇다. 페스티벌에는 전문가 집단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이 온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게 나의 역할인 것 같다. 주어진 일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고 만들어 독자적으로 해결해가는 그 과정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기도 하다.
- 이제 ‘타이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작당모의: New party, New party’는 이승아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여러 큐레이터와 작가들이 함께 했다.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듣고 싶다.
‘타이프’는 미술 관련 공간이 많지 않은 지역인 신당동에 위치한다. 미술과 연결시키기에는 조금 낯선 공간이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갔다. 그 일대의 문화가 반영된 시각예술 공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물론 이 부분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미술에 특화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오래 머물게 하려면 전략적인 운영 방법이 필요하다. 앞으로 순수한 시각 예술뿐 아니라 디자인, 퍼포먼스, 생활 등이 결합된 다원적인 무언가를 생산하는, 다방면을 아우르는 전시를 기획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 같다.
다양성을 위해 첫 전시는 내가 전체를 조율하면서 임종은, 주은정, 고윤정 큐레이터와 함께 기획하게 되었다. 참여 작가는 고재욱, 박미라, 송민규, 옥정호, 이동욱으로, 설치에서 미디어 아트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앞으로도 첫 전시에 참여한 네 명의 큐레이터들이 함께 하겠지만, ‘공간 타이프’는 닫힌 상태에서 몇 명의 큐레이터들만 활동하는 공간이 아니다. 새로운 기획자들을 언제든 받아들여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작가들에게도 열린 공간이다. 특히 중진 작가들과 함께 예상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한다. 작가들이 기존에 보여주었던 고유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함께 만들어가는 유동적인 전시를 만들고 싶다. 정해진 것 없이, 어떤 제한도 없이,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타이프’를 운영하는 메이디자인은 실내 공간을 디자인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전시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상당한 강점이 될 것이다. 신당이라는 지역적인 특수성, 그리고 전시장 내부 공간의 특수성 모두 살릴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자 한다.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반영하는 콘텐츠를 작가들과 함께 만들어 내고 싶다.
- ‘타이프’라는 공간을 대표하는 성격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전시장인 ‘공간 타이프’는 카페와도 연결된다. 미술이 일상 공간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연출뿐 아니라 현실적인 부분에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갤러리카페는 아니다. 교차되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보면 좋겠다. 작품을 감상하다가 자연스레 생활공간 혹은 상업적인 공간으로 들어서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한 전시장이다. 관련해 작품의 안전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또 공간 자체가 융복합적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은 만큼 기획이 쉽지 않다. 앞으로 직접 겪어가며 장단점들을 파악하고 보완해나가려 한다. 현재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각양각색의 경험을 제공하고 싶고, 기획자와 작가 모두 말 그대로 즐겁게 참여하는 재미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