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1호 윤지원⁄ 2021.06.04 23:07:57
웨이브·티빙·왓챠·쿠팡플레이 등 OTT 업계가 가입자 유치를 위한 핵심 무기인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큰 폭으로 늘리는 가운데, ‘예능 4대 천왕’, ‘스타 PD’ 등등 콘텐츠 흥행을 보증할 스타급 인재 모시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코로나19에 의한 비대면 경제 활성화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계가 독점적인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경쟁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 1위가 굳건하고, 올가을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 등의 국내 출시가 예정된 상황. 외세에 맞서는 토종 OTT인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등은 가입자 확대를 위한 가장 좋은 무기인 ‘독점 오리지널 콘텐츠’를 늘리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독점 콘텐츠 확보를 위한 업계의 절실함은 투자 금액 규모에서 드러난다.
SK텔레콤과 3개 지상파가 주축인 웨이브(WAVVE)는 올해 초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위해 2025년까지 총 1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티빙(tving)의 모기업인 CJ ENM은 지난 5월 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NM 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8000억 원을 투자하고 2025년까지 5조 원을 투자해 OTT 시장에서 1위 플랫폼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내 메이저 OTT 중 유일하게 대기업 계열이 아닌 왓챠도 투자 유치로 확보한 약 590억 원을 콘텐츠와 인프라에 투자한다.
이처럼 업체마다 독점 콘텐츠 투자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거론하는 이유는 OTT 시장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는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돈으로 혼쭐을 내준다'는 유행어인 '돈쭐' 경쟁이 OTT 콘텐츠 제작에서 벌어지는 양상이다. 이는 경쟁에서 가장 앞선 넷플릭스가 지난 수년간 그 효과를 뚜렷하게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이기려면 넷플릭스처럼
넷플릭스는 지난 2월 25일 ‘넷플릭스 로드쇼’ 행사를 열고 올해 한국에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5억 달러(약 5600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3억 달러보다 큰 폭으로 키운 금액이다.
올해에만 '좋아하면 울리는', '고요의 바다', 'D.P.', '마이네임',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 '오징어 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킹덤: 아신전',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이수근의 눈치코치', '백스피릿' 등 다양한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들이 출격을 이어간다.
넷플릭스는 이미 지난 5년간 한국 가입자와 글로벌 한류 팬들을 겨냥해 80여 편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인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시작해 스타 작가 김은희의 ‘킹덤’ 시리즈로 전세계에 K-좀비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만 해도 ‘인간수업’, ‘스위트홈’, ‘콜’, ‘승리호’ 등이 큰 인기를 끌었고,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다수의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양질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꾸준히, 잔뜩 확보한 결과는 국내 OTT 시장 부동의 점유율 1위 자리이고, 사용자 증가세도 막강하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2월 넷플릭스의 월간 사용자 수는 1000만 명이 넘었다. 지난해 1월 470만 명을 조금 넘긴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의 증가세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실내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상승세를 탔고, 맹추위로 야외 활동이 더욱 위축됐던 지난 겨울 정점에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후 이 수치는 조금씩 감소했으나 지난 4월에도 800만 명 이상을 기록, 범접 못 할 위세를 떨치고 있다.
현재 넷플릭스의 글로벌 가입자 수는 2억 7000만 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글로벌 가입자 수 2위인 디즈니플러스의 1억여 명을 2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넷플릭스의 성공 공식은 한국 시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 대부분 시장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 그리하여 이는 한류를 타고 해외 시장 진출까지 염두에 둔 국산 OTT 업계에 명확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게 됐다.
그동안 웨이브는 지상파 콘텐츠를, 티빙은 tvN, Mnet 등 CJ ENM 계열 케이블 채널과 JTBC의 콘텐츠를 각각 독점 서비스한다는 것을 주요 장점으로 내세워 왔으나, 이제는 OTT 플랫폼 중심의 고유한 독점 콘텐츠 비중을 대폭 늘리려고 한다.
‘핫’한 스타 PD들로 든든한 티빙
업체들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수천억 원을 들이는 만큼, 최대한 흥행을 보증할 수 있는 콘텐츠 전문가들을 원한다. 이에 기존 흥행 성적이 좋고, 두터운 팬을 보유한 스타급 연예인과 PD, 작가, 제작자들을 앞다투어 영입하는 데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이런 면에서 현시점 가장 유리한 곳은 티빙인 것으로 보인다. 티빙은 tvN, ocn, Mnet 등 CJ ENM 계열 케이블 채널 중심의 케이블 채널들과 JTBC를 기반으로 하는 OTT인데, 이들 채널은 최근 수년간 많은 화제의 콘텐츠를 배출하고, 흥행시켜 왔다. 덕분에 티빙은 최근 시청 트렌드와 잘 맞고, 기량이 절정에 오른 스타 플레이어들을 가장 많이 거느리고 있다.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신서유기’, ‘윤식당’, ‘윤스테이’ 등등 tvN에서 손대는 작품마다 대박 흥행을 만들어낸 초특급 스타 PD 나영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티빙은 든든하다. 또 ‘더 지니어스’, ‘소사이어티 게임’, ‘대탈출’ 같은 두뇌 플레이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독보적인 마니아 팬층을 거느린 정종연 PD도 tvN 소속이다.
티빙의 오리지널 독점 콘텐츠도 먼저 이들에게 맡겨졌다. 첫 작품은 지난 1월 말부터 8주에 걸쳐 16편을 공개한 정종연 PD의 미스테리 어드벤처 예능 ‘여고추리반’이다. ‘여고괴담’ 류의 으스스한 메인 스토리에 정 PD의 주특기인 방탈출·추리·심리 게임이 접목되고, 다양한 캐릭터의 연예인들이 함께 미션을 수행하며 케미를 쌓아 가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자극적인 소재와 반전 가득한 스토리 진행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론칭 후 티빙 인기 프로그램 톱10에 단골로 오르고, 단 8회 만에 티빙의 2020년 대표 인기 프로그램인 ‘대탈출3’의 시청자 수를 뛰어넘는 폭발력을 보이며 일찌감치 시즌2 제작 확정 소식을 전했다.
tvN과 유튜브를 넘나들며 활약 중인 나영석 PD의 첫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는 ‘신서유기 스페셜: 스프링캠프’로 지난 5월 7일부터 공개되고 있다. tvN 간판 예능이자 나 PD의 대표작인 ‘신서유기’ 시리즈의 스핀오프로,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 규현, 안재현, 송민호, 피오 등 멤버들이 여행지가 아닌 캠핑장에서 힐링과 함께 폭소를 자아내는 예능이다.
특히, ‘스프링캠프’는 첫 회부터 OTT, 즉 온라인 플랫폼에 특화된 예능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상파 및 케이블보다 심의 규정이 자유로운 OTT에서, 차츰 좀 더 높은 수위의 예능을 시도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
티빙의 이명한 공동대표도 CJ ENM 사람이며, 과거 KBS에서 ‘1박 2일’, ‘남자의 자격’ 등을 성공시킨 스타 PD 출신이다. tvN 이적 후 ‘응답하라’ 시리즈와 ‘코미디 빅리그’ 등을 제작해 tvN 간판 프로그램으로 만들었고, KBS 시절부터 ‘이명한 사단’으로 통하던 나영석 PD,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 김란주 작가, 김대주 작가 등을 tvN으로 영입하는 큰 역할을 하며 채널 경쟁력을 끌어 올렸다.
이런 공로로 이적 2년 만에 tvN제작총괄국장, 이듬해 본부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2019년엔 CJ ENM 미디어콘텐츠본부장 겸 미디어제작사업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지난 3월에 티빙의 공동대표이사로 선임되어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및 제작 등을 담당한다.
웨이브 ‘미생’ ‘도깨비’ 같은 명품 콘텐츠 추구
웨이브는 지난 5월 3일, CCO인 콘텐츠전략본부장으로 이찬호 전 스튜디오드래곤 CP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이 본부장은 CJ ENM의 콘텐츠 제작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에서 드라마 책임프로듀서로 재직하며 ‘미생’ ‘시그널’ ‘도깨비’ ‘비밀의 숲’ 등의 웰메이드 명작 드라마들을 연이어 히트시킨 장본인이다. KBS PD 출신인 이태현 웨이브 대표가 이 본부장 영입을 위해 5개월 이상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웨이브는 이 본부장의 합류로, 수준 높은 오리지널 작품들을 선보여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웨이브의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은 단지 1조 원의 투자 자본을 투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질 높은 오리지널 콘텐츠 라인업을 구축하기 위해 큰 틀의 기획안을 제시하고, 업계의 대본을 받아보는 것 외에도 콘텐츠를 기획하여 발주하는 역할까지 직접 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연내 별도의 기획 스튜디오도 설립할 계획이다. 이런 독자적인 콘텐츠 경쟁력을 기반으로 ‘K콘텐츠 최고 플랫폼’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웨이브의 목표다.
쿠팡의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도 오리지널 콘텐츠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먼저, 한류의 주역인 톱스타 김수현과 차승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오리지널 드라마 ‘어느 날’을 오는 11월 선보일 예정이다. 영국 BBC의 명품 시리즈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리메이크하는 작품이며, SBS에서 ‘무사 백동수’, ‘열혈사제’, ‘편의점 샛별이’ 등을 히트시킨 이명우 PD와 그의 단짝인 권순규 작가가 함께 한다.
또 쿠팡플레이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라이브 코미디 쇼 ‘SNL코리아’를 부활시킬 계획이다. 제작사인 에이스토리가 원조 ‘SNL’(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판권을 보유한 NBC유니버설 포맷으로부터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tvN ‘SNL코리아’를 기획하고 전 시즌의 책임프로듀서를 담당했던 안상휘 전 tvN 예능국 총괄 CP가 에이스토리의 제작2본부 본부장으로 합류했다. 안 CP는 ‘SNL코리아’ 외에도 ‘인생술집’, ‘혼술남녀’, ‘쌉니다, 천리마마트’ 등 다수의 신선한 예능 콘텐츠들을 기획했다. tvN ‘SNL코리아’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던 유성모 PD, 권성욱 PD, 오원택 PD 등도 합류한다.
아울러 새로운 ‘SNL코리아’는 원조 ‘SNL코리아’의 간판 스타였던 신동엽을 메인 크루로 내세웠는데, OTT 업계에서는 ‘SNL코리아’의 부활 자체보다, 신동엽의 합류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쿠팡플레이의 新 ‘SNL코리아’, OTT 새 규범 되나
tvN ‘SNL코리아’ 제작진 출신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SNL코리아’는 한국 OTT의 오리지널 예능 콘텐츠의 새로운 기준을 세울 것”이라며 “신동엽의 재능에 달렸다”고 말했다.
tvN ‘SNL코리아’는 성인용 코미디를 표방하며 주말 밤 케이블tv에서 ‘19금’ 마크를 달고 방송됐다. 그리고 시즌2에 호스트로 출연했다가 시즌3부터 정식 크루로 합류한 신동엽은 방송가 안팎에서 ‘섹드립의 신’으로 통하던 인물이어서, 프로그램과 출연자가 폭발적인 시너지를 낸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 별명은 단순히 그가 다른 방송인들보다 성적인 농담을 즐겨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게 아니다. 이 관계자는 “tvN ‘SNL코리아’가 관객들 앞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방송 특성상 제작진은 늘 신동엽의 아슬아슬한 애드립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면서도 “하지만 신동엽 때문에 심각한 방송사고가 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신동엽이 프로그램 심의 등급에 따른 규정의 경계, 방송 사고와 OK의 경계, 나아가 수치심과 재미의 아슬아슬한 경계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입담으로 신(神)의 경지에 올랐다는 의미였다.
그의 재능이 다시금 ‘SNL코리아’와 만난다. 그런데 OTT의 심의 기준은 지상파나 케이블TV와는 다르며, 2020년대 시청자들의 수용 범위도 10년 전과는 다를 수 있다. 쿠팡플레이는 ‘동엽신’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롭게 날뛸 무대가 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tvN ‘SNL코리아’는 신동엽과 19금 이슈 외에도 정치와 재벌 풍자라는 코미디의 역할에 있어 심의 규정, 정부 눈치, 대기업 광고주 눈치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비판받았던 아픔도 있었다”며 “OTT라는 신규 플랫폼이 제작할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기준에서,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