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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에 돈쭐 ③] ‘페트병 섬유’로 제주 살린 효성, “이제 서울-부산”

지역민 손잡고 페트병 업사이클링 대작전 … 뜻과 멋 다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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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02호 옥송이⁄ 2021.06.17 10:51:43

‘돈쭐내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돈’과 ‘혼쭐내다’를 합친 신조어로, 정의로운 일을 함으로써 귀감이 된 소상공인의 매출을 올려주자는 의미로 사용된다. 꾸짖는다는 본래 의미와 달리, 애정이 듬뿍 담긴 소비 행동의 일환인 셈이다. 최근에는 환경보호 움직임이 일면서 남다른 친환경 행보를 보인 기업들이 수혜를 입고 있다. 이른바 친환경이 돈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기업들이 ‘돈쭐’나고 있는지 살펴본다. 3편은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섬유로 만드는 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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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엔 페트병 16개가 들어가요

어느 모로 봐도 특별할 게 없다. 니트 가방 정도로 보이는 게 외관의 전부. 다만, 이 가방의 속사정은 남다르다. 어쩌면 지금 당신 손에 들려 있는 페트병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르니까.
 

500㎖짜리 투명 생수병 16개로 만든 가방. 사진 = 효성 


분명 가방인데, 천이나 가죽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상식을 깨고 페트병으로 원사(原絲. 직물의 원료가 되는 실)를 뽑아내는 곳은 효성그룹. 담당자에게 플라스틱병으로 실을 뽑아내는 과정을 물어봤다.

해당 직원은 “폐페트병을 쪼개서 칩으로 만든다. 이후 그 칩을 녹여서 실로 뽑아낸다”며 “주로 협력업체에서 페트병을 세분 및 세척하고, 효성 구미 공장으로 옮겨와 원사로 만든다”고 말했다. 창의적인 소재에 비해 설명은 ‘간단명료’ 그 자체다. 쉽지 않은 과정을 축약해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십수 년간 반복해왔기 때문일 터.

효성은 지난 2000년대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고 친환경 섬유 개발을 시작했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효성은 100년을 끌고 갈 미래 사업을 구상 중이었다. 친환경이 지금보다 생소했을 때였는데, 매출이 안 나와도 미래를 보고 투자하자는 의도로 재활용 섬유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결실은 2007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세계 최초의 재활용 나일론 원사인 ‘마이판 리젠’을 선보였고, 이듬해 재활용 폴리에스터 원사 ‘리젠’을 개발했다. 2019년에는 산업용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스판덱스 원사 ‘크레오라 리젠’을 출시했다. 원사마다 공통된 명칭이 들어가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모든 재활용 타래는 ‘리젠’으로 귀결된다. 리젠은 효성의 친환경 섬유 브랜드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친환경 원사 '리젠'. 사진 = 효성 


브랜드 설명에 감히 친환경을 붙일 수 있는 이유는 자격이 충분해서 그렇다. 리젠의 섬유는 100%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자원과 에너지 소비량,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기존 원사와 달리 석유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땅속에 묻히기 직전의 페트병을 재생 섬유로 만들어 플라스틱 매립 양 역시 대폭 감축한다.

리젠으로 제작한 상품 하나하나 폐플라스틱 사용량을 계산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가방은 친환경 업체 ‘플리츠마마’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제품인데, 하나의 플리츠마마 가방에는 500㎖짜리 폐페트병 16개에서 추출한 원사가 사용된다. 이 외에도 운동화는 페트병 11개, 셔츠는 27개, 롱패딩은 페트병 60개로 만들 수 있다.

접점 없는 제주도부터 간 뜻은?

리젠은 등장과 동시에 업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매출로 이어지진 않았다. 합성섬유보다 비싸고, 당시만 해도 재활용 제품은 촉감과 발색 등에서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패션 흐름이 친환경으로 변화하는 데다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입지가 달라지고 있다. 특히 리젠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게 된 건, 지난해 환경부·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개발공사·플리츠마마와 손잡고 친환경 프로젝트를 전개하면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페트병으로 실을 만들기 위해선 갖춰야 할 선제조건이 있다. 일단 유색 페트병은 절대 안 된다. 국제적으로 동일한 기준이다. 반드시 투병 병이어야 하고, 또 깨끗해야만 한다. 의료용 섬유는 고순도로 길게 뽑아내야 해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안 돼서 그렇다. 리젠이 첫 협업 지자체로 제주도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의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리젠제주와 크레오라 리젠으로 만든 플리츠마마의 제품. 사진 = 효성


효성 관계자는 “국내 페트병은 지저분하거나, 라벨지나 이물질이 제거되지 않는 등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일본이나 대만 등지의 국가에서 폐페트병을 수입해 리젠으로 제작해왔다”며 “효성은 리젠의 원료인 폐페트병의 국산화를 고민하고 있었고, 제주도개발공사는 삼다수를 홍보하고 선순환 체계를 갖췄으면 했다. 폐페트병 활용에 대한 뜻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프로젝트는 제주삼다수를 만드는 제주도개발공사가 제주도에서 버려지는 페트병을 수거하고, 리사이클 섬유 제조 기술을 보유한 효성티앤씨가 재활용 섬유 ‘리젠제주’를 만든다. 이후 플리츠마마가 리젠제주로 최종 제품을 제작하는 식으로 전개됐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리젠제주로 만든 제품은 완판을 기록했다. 원사 100~150톤에 달하는 양이다. 리젠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판매량도 늘어났다. 지난해 판매 수치는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서울·부산 찍고 폐페트병·폐어망 재활용 확대

폐자원의 선순환 효과는 물론 판매 증대까지 가시화되면서, 리젠과 지자체의 협업은 더욱 활발해지는 추세다.
 

효성티앤씨는 서울시 및 금천구, 영등포구, 강남구와 투명 폐페트병을 분리 수거해 재활용 섬유로 생산하는 ‘리젠서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 = 효성 


올해 1월에는 서울시와 손잡고 ‘리젠서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지역은 금천·영등포·강남구로, 방법은 리젠제주와 동일하다. 협약한 자치구에서 발생한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 섬유로 생산한다. 상반기 리젠서울의 목표 생산량은 100톤이다.


부산시와는 버려진 어망을 재활용한다. 5월에 체결한 해당 협약은 해양 환경보호 인식 제고 차원이다. 부산광역시는 버려진 어망을 분리·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친환경 벤처기업 넷스파는 수거된 어망을 파쇄·세척한다. 효성티앤씨는 어망 재활용 나일론 섬유 ‘마이판 리젠오션’을 생산한다.

효성 관계자는 “어망 폐기에 비용이 들다 보니, 일부 어업인들이 낡은 폐어망을 바닷가 연안에 버린다. 물고기들이 폐어망에 걸리면 물속에서 폐사한다”며 “이 같은 사례를 방지하고, 폐어망의 선순환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용섭 효성티앤씨 대표이사, 박형준 부산시장, 정택수 넷스파 대표이사가 '폐어망 자원순환 프로젝트'를 체결한 모습. 사진 = 효성 


이어 “지자체와 재활용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국내 폐페트병 활용이 늘어났다. 효성의 최종 목표는 리젠 리사이클 프로젝트와 함께하는 지자체를 제주·서울·부산뿐 아니라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효성의 빅피쳐 … P4G에도 소개돼

이 회사의 업사이클링은 조현준 회장의 전폭적 지지 속에 순항하고 있다.

조 회장은 “효성의 리젠 프로젝트가 국내 친환경 재활용 섬유 시장의 모범적인 표준 사업으로 자리매김한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엔 친환경 패션 브랜드에 에어백 원단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는데, 이는 평소 친환경 패션과 섬유 트렌드에 관심을 갖고있던 조 회장의 제안으로 알려졌다.
 

효성첨단소재의 에어백 원단을 활용한 친환경 의류 브랜드 ‘벨타코’ 컬렉션. 해당 컬렉션은 지난 ‘P4G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소개됐다. 사진 = 효성 


에어백 원단은 치수 등 규격이 맞지 않아 판매하지 못하는 제품으로, 원단을 받은 업체들은 업사이클을 통해 재킷, 팬츠 등의 의류로 제작했다. 일부 컬렉션은 지난달 막을 내린 환경 분야 다자정상회의 ‘P4G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소개됐다.

한편, 효성의 친환경 경영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4월 조 회장의 뜻에 따라 ESG경영위원회를 출범했고, 6월에는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김 의장은 ESG경영을 총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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