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4호 옥송이⁄ 2021.07.19 14:06:20
인수 합병은 기업에 있어 사활을 건 문제다. 잘 되면 대박, 실패하면 기회비용만큼의 손해를 감수해야 해서다. 이 때문에 대규모 M&A는 주목받기 마련인데, 최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이베이코리아 인수가 연일 화제다. 인수 금액이 무려 조 단위에 달한다. 이처럼 거침없는 인수합병에 일가견 있는 사람이 또 있다. 정 부회장의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다. 신세계 남매의 M&A를 짚어본다.
규모의 경제 먹힐까
이커머스는 국내 유통업계의 마지막 ‘블루오션’으로 꼽힌다. 선점 업체들이 있긴 하지만 점유율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압도적 1위가 없다는 뜻이다. 반면 시장 규모는 매년 증가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전년보다 19.1% 증가한 161조 1000억 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다. 전체 소매판매액 가운데 온라인쇼핑이 차지한 비중은 27.2%로 역시 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소비가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상황 속에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오는 2025년 270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커머스를 차지하는 기업이 향후 유통 패권을 쥐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높은 탑을 차지하기 위해 지르는 건 큰 결단이 필요한 일. 이커머스 강자 가운데 하나인 이베이를 무리해서라도 품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과감한 실행력이 여기에서 엿보인다.
이마트, 온·오프라인 1위가 목표
시장 상황은 아직 안갯속이다. 현재 전자상거래 분야의 절대 강자는 없다. 시계제로 상황에서 정 부회장이 이베이 인수란 랜턴을 켠 것이다.
통상적으로 시장점유율 30%는 넘어야 안정적으로 순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데, 선두그룹조차 점유율 10%대에 머물러 있어 반격의 기회가 남았다. 현재 국내 이커머스 시장점유율은 네이버(17%), 쿠팡(13%), 이베이코리아(12%), 11번가(6%), 롯데온(5%), SSG닷컴(3%) 순이다. 그러나 이마트가 업계 3위의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규모 면에서 이커머스 2위(15%)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포부에 맞게 지른 격이다. 신세계그룹 이마트는 지난달 30일 공시를 통해 이베이코리아의 지분 80.1%를 취득하는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3조 4000억 원이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인수를 공식화하면서 온·오프라인 통합 1위 유통 사업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마트 관계자는 “미래 유통은 온라인 강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며 “이베이 인수는 단순히 기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기회를 사는 딜이다. 신세계그룹의 사업구조를 ‘온라인과 디지털’로 180도 전환하기 위한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이 기대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온라인 포트폴리오 강화’와 ‘IT 능력 상승’.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통해 이마트 부문 내 온라인 비중은 약 50%로 늘어났는데, 이는 사실상 온라인과 디지털커머스가 사업의 중심축으로 옮겨왔음을 뜻한다. 오프라인에 강한 이마트 유통에 이베이의 온라인 능력을 더하면 시너지 효과가 배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충성도 높은 이베이의 270만 유료고객을 얻게 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극강의 온라인 기업으로 탈바꿈할 것”이라며 “이마트·신세계백화점 등 기존 오프라인 유통과 최근 인수한 SSG랜더스야구단 및 이베이, SSG닷컴 등으로 온라인 종합플랫폼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큰 그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디지털 강화와 동시에 풀필먼트의 비중도 늘린다. 풀필먼트는 재고관리부터 배송까지 물류센터에서 일괄처리하는 방식으로, 온라인 주문에 적합하다. 이베이코리아는 자체 풀필먼트 서비스인 ‘스마일배송’을 운용해왔는데, 이마트는 해당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기존 신세계그룹의 오프라인 거점을 온라인 물류 기지로 함께 사용할 계획이다. 이마트는 향후 4년간 1조 원 이상을 온라인 풀필먼트 센터에 투자한다.
물류 외에도 이베이코리아의 숙련된 IT전문가를 품을 수 있게 되면서 데이터 분석 능력을 비롯해 디지털 인프라가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너스 말고 미다스 될까
과거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의외’ ‘기대 이상’. 정 부회장이 그동안 감행했던 투자에 붙은 단어들이다. 일본의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요지경 만물상 삐에로쑈핑’을 들여왔을 때도, ‘제주소주’를 이마트에 론칭했을 때도 이러한 수식어가 달렸다. 그의 사업 스타일에 도전적이라는 평가가 달린 배경이다.
이렇듯 정 부회장의 성향은 ‘럭비공’에 가깝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동안 벌인 사업만 봐도 명확한 접점이 없다. 뜬금없이 ‘용진이 형’을 자처하며 야구단을 인수하거나, 한국판 디즈니랜드를 꿈꾸며 ‘화성 국제테마파크’ 조성을 준비하는 것, 부산 해운대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신규 브랜드 ‘그랜드 조선’을 선보인 것, 여성 패션 플랫폼인 ‘W컨셉’을 인수한 것만 봐도 연계성이 없다. 한 우물만 파는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과 다른 성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렇듯 통통 튀는 총수의 행보는 늘 화제의 중심이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67만으로 웬만한 셀럽 이상이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대중의 관심은 끌어모았지만, 사업상 반드시 성공과 직결된 건 아니다. 획기적이란 반응과는 달리 ‘삐에로쑈핑’이나 ‘제주소주’는 오래 지나지 않아 사업 철수로 이어졌다. 이 같은 투자 실패가 부각 되면서 재계 대표 ‘마이너스의 손’이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한편, 정 부회장의 럭비공 행보는 현재 진행형이다.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이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 매각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베이코리아 인수 건과도 맞물린다. 디지털 위주로 사업 방향을 개선하기 위해 큰 투자를 감행한 것을 뒷받침하듯, 미래 유통의 새 판을 짜기 위해 기존 부동산 중심 자산을 유동화하는 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마트의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대해 비싸다는 평이 많았다. 인수가도 조 단위에 달할 정도지만, 회사를 샀다고 바로 수익이 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한동안 관련 투자를 늘릴 수 밖에 없어 향후 몇 년간은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디지털에 방점을 둔 투자인 만큼 미래 가치를 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