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8억 원.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 경매 총매출액이다. 코로나19에도 불구, 최대 호황을 기록한 요인 중 하나는 20~40대의 참여도 상승이다. 이른바 ‘MZ세대 미술 컬렉터’들은 취향 과시나 재테크를 위해 미술품을 구매하는데, 주로 아트페어나 분할 소유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이제는 백화점이나 편의점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2편은 아트테크를 선보인 이마트2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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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명이 한 작품 소유
무심코 도심 속을 걷고 있는 군중의 그림을 본 적 있는지.
작가 이름은 모를지언정 동그라미 얼굴에 표정은 생략된 채 각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낯익다면,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걷는 사람을 픽토그램(pictogram. 사물·행위 등을 상징화한 그림문자)처럼 단순하게 묘사하는 것이 이 작가의 전매특허이기 때문이다.
최근 줄리안 오피의 작품 소유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2016년 작인 ‘Running Women’을 가진 사람이 무려 2200명이나 된다. 사본을 논하는 게 아니다. 한 점을 소유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까닭은 여러 사람이 공동구매해서 그렇다.
이른바 ‘아트테크’다. 미술품을 뜻하는 art와 재테크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사람이 투자해 미술 작품의 소유권을 나누는 형태다. 가장 큰 특징은 소액으로 구매할 수 있어 자금 부담이 적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술품에 관심은 많지만, 금전적인 여유가 많지 않은 MZ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러나 화창한 날씨에 조깅하고 있는 여성들을 담아낸 이 작품은 특별한 공동구매 과정을 거쳤다. 편의점 업체 ‘이마트24’가 자사 이용 고객들을 대상으로 해당 미술품 지분권을 경품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편의점 업계에서 자동차나 명품 가방 등 고가의 이색 상품을 경품으로 내건 적은 있지만, 미술 작품의 지분을 제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편의점에서 아트테크를 왜?
이마트24의 미술품 할당으로 인해 지분을 갖게 된 컬렉터들은 각각 ‘Runnig Women’의 두 조각씩 소유하게 됐다. 한 조각당 1만 원꼴이다. 이를 토대로 현재 작품의 가격을 추산하면 대략 3900만 ~ 4500만 원에 달한다. 유통사인 이마트24에서 통 크게 미술품을 내건 이유는 단연 MZ세대 때문이다.
이마트24 관계자는 “미술 작품을 아트테크하는 고객들 가운데 20~30대의 비중이 크다”며 “이마트24는 소액으로 미술품에 투자하는 젊은 고객층이 곧 편의점의 주요 타깃이자 잠재 고객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미술품 시장에서 MZ세대의 활약상은 두드러진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인 아트바젤과 금융기업 UBS가 발간한 ‘아트마켓 보고서 2021’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중국 등 10개국의 고액 자산가 컬렉터 2596명 중 56%가 MZ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서울옥션이 올해 1분기 진행한 온라인 경매에서 전체 낙찰자 비율 중 이 세대 소비자가 11%를 차지했을 정도다.
미술품에 MZ세대의 시선이 따르는 건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남과 다른 경험을 원하는 이들의 취향 소비 측면도 있지만,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한 방법이기도 해서다. 현재 줄리안 오피의 작품 두 조각에 대한 소유권은 2만 원의 가치지만, 작품 가치가 상승하면 조각당 가격도 오르게 된다. 특히 줄리안 오피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팝아트 작가일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영향력 있다. 몇 차례 전시를 진행한 바 있고, 높은 거래량을 차지해 작품가격 상승이 기대되는 작가다.
이마트24는 이번 아트테크 기획을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투게더와 함께 진행했는데, 선착순으로 선정된 고객은 소유권을 보증하는 작품확인서를 발송 받게 된다. 작품가격이 오를 경우, 공동소유자들이 찬반투표를 진행해 매각 동의 비율이 50%를 초과하게 되면 수익 실현을 할 수 있다.
렌털에 따른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작품을 백화점, 호텔, VIP레스토랑 등 영업공간에 렌털해 주고 얻은 수익은 지분에 따라 공동 배분된다. 또한, 아트투게더에서 조각거래 서비스를 통해 자신이 보유한 조각을 주식처럼 사고팔 수도 있다.
유창식 이마트24 영업마케팅 팀장은 “희소성에 가치를 두고, 재테크에도 관심이 많은 MZ세대들에게 줄리안 오피 작품 소유권은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라며 “향후에도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