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화두 중 하나는 단연 메타버스다. 변형·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에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단어로, 현실 속 사회·경제·문화 활동와는 또다른 활동을 가상세계에서 이어가는 개념이다. 메타버스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대면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비대면 가상공간에서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업종이 메타버스에 올라타고 있는데, 전통 금융권인 은행마저 동참했다.
현실에선 행장님, 메타버스에선 라울·전광석화
지난 7월 하나은행은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사를 열었다. 멘토링 프로그램인 ‘벗바리 활동’ 수료식이다. 예년과 같이 연수원 하나글로벌캠퍼스에서 진행했는데, 이날 참여 인원은 10여 명에 달했다.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해 대낮조차 최대 4명까지만 모일 수 있는 상황에서 행사라니. 현실이었다면 방역 수칙 위반 논란에 휩싸였겠으나, 다행히 이 모든 것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구현된 상황이다. 범법과는 거리가 멀다.
비록 가상공간에서 펼쳐진 수료식이지만 구색은 완벽하다. 일단, 인천 청라에 있는 하나글로벌캠퍼스가 유체이탈을 한 격이다. 넓은 부지에 거대한 건물 등 연수원의 특징들이 동일하게 구현됐다. 실제 연수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코로나19 병상 부족 사태 해결을 위해 생활치료센터로 이용되고 있지만, 메타버스에서 만큼은 아직도 온전히 이 은행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다.
박성호 하나은행장도 참여했다. 현실에서의 행장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고, 이곳에서는 '부캐' 라울(Raul)로 등장해 신입 행원들과 함께 캠퍼스를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박 은행장은 “많은 직원과 손님의 메타버스 하나글로벌캠퍼스 방문과 체험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에 라울이 있다면, 우리은행에는 전광석화가 있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메타버스에서 ‘전광석화’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20~30대 행원들과 회의를 진행했다. 권 행장은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메타버스는 새로운 기회의 영역이 될 것”이라며 “메타버스 내에서 구현 가능한 다양한 서비스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메타버스 실험 중
가상 영업점을 준비하는 은행도 있다. KB국민은행이다.
이 은행은 메타버스 테스트베드를 금융과 연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내 아바타와 가상 영업점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메타버스 활용 방안을 모색할 계획인데, 지난달 게더(Gather) 플랫폼을 활용해 ‘KB금융타운’을 선보였다.
KB금융타운은 금융ᆞ비즈센터·재택센터·놀이 공간 등 3개의 공간으로 이뤄졌다. 금융비즈니스센터는 업무공간에 해당한다. 영업점, 홍보ᆞ채용 상담 부스, 대강당, 소셜공간으로 구성됐다. 지난달 8일에는 테크그룹 임원들과 부서장들이 참여하는 경영진 회의와 외부업체와의 기술미팅 등을 KB금융타운에서 개최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앞으로는 경영진 회의나 타운홀 미팅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기술 기업들과 협업을 통해 금융 콘텐츠 개발도 추진할 예정이다. 로블록스(ROBLOX) 플랫폼이나 가상 현실기기(HMD)를 활용한 가상금융 체험관을 실험할 계획이며, 아바타와 AI를 활용해 메타버스 영업점을 구축해 고객상담·이체·상품 가입 등 금융 서비스 제공 가능성을 검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자체 플랫폼 쏠(SOL)에서 메타버스를 구현했다. KBO공식 후원사라는 점을 살려 쏠에 메타버스 야구장 ‘신한 SOL 베이스볼 파크’를 만들고, 2만 명의 야구팬을 초대해 한시적으로 응원 행사를 진행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경기장 관중 입장이 제한됨에 따라 메타버스에서 야구 팬들과 소통하고 함께 응원할 수 있도록 자체 플랫폼에 야구장을 만들었다”며 “프로야구 정규리그 후반기에는 ‘신한 SOL 베이스볼 파크’에서 팬과 선수가 소통하는 팬미팅, 실시간 문자 전송을 이용한 단체 응원, 실시간 경기 기록 기반의 이벤트 등을 진행해 직관 응원 이상의 재미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면(對面) 갈증 해소 … 새로운 수익원 될 메타버스
시중 은행들이 일제히 메타버스행에 올랐는데,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MZ세대 직원 및 고객과의 소통이 표면적이지만, 여러 요인과 맞물린다.
일단 메타버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전 세계 메타버스 시장규모는 오는 2025년 2800억 달러(약 315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DT(디지털전환)가 올해 중요 당면 과제 중 하나인 시중은행 입장에서 메타버스 역시 놓치면 안 되는 디지털 요소인 셈이다.
게다가 메타버스는 돈이 된다. 이미 해외에서는 메타버스의 수익성이 증명되고 있다. 음악 산업에서 특히 활발한데, 코로나로 인해 대면 콘서트가 어려워지자 스타들이 가상공간을 무대로 택하고 있어서 그렇다. 미국 힙합가수 트래비스 스콧은 지난해 한 온라인 게임에서 아바타로 변신해 공연을 펼쳤는데, 콘서트의 동시 접속자는 123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총 2770만 명이 관람했으며, 이 언택트 공연은 약 2000만 달러(한화 200억 원)의 수익을 거둬 들인 바 있다.
또한, 대면 갈증 해소 측면에서도 메타버스는 가치가 있다. 코로나19 지속으로 대면 영업이나 행사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연장 선상인 메타버스의 아바타가 대면 소통을 해갈해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신석영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원은 ‘메타버스의 부상과 금융업의 변화’ 보고서를 통해 “메타버스 시대 금융업은 업무 방식, 고객 니즈, 서비스에 있어 온·오프라인 통합이 강화돼, 장기적 관점에서 MZ세대를 위한 콘텐츠 개발과 복합 점포 검토가 필요하다”며 “메타버스 기술은 스마트폰의 한계를 넘어서 온·오프라인 연결이라는 기술적 특성을 바탕으로 금융업의 업무 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