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최영태 이사) 이번 주 ‘문화경제’ 기사 중 재미있는 것으로 75년 역사의 식품기업 샘표 이야기(30~31쪽)가 있습니다. 간장 전문기업으로 이름을 날리는 샘표는 한때 커피 제품을 내놓았으나 “커피의 검은 색이 간장을 연상시킨다”는 소비자의 반응 탓에 고배를 마셨답니다. ‘샘표 커피’의 맛이, 즉 형체가 있는 유형자산의 내용물이 아무리 훌륭해도, 샘표라는 브랜드가 갖고 있는 뜬구름 같은 이미지인 무형자산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실패하기 쉽다는 하나의 사례로 거론할 만한 얘기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 물건이 중요했던 시절, 즉 물건은 아무나 못 만들기에 물건만 잘 만들면 소비자가 쓸 수밖에 없었던 산업사회 시절에는 기업의 이미지가 좀 안 좋아도 물건만 훌륭하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 집 사장이 사람은 못 됐지만 돈은 잘 벌어” 하는 시절이 있었지만, SNS가 발달한 요즘엔 반대로 “그 사장은 물건은 잘 만들지만, 사람이 못 됐기에 나는 그 집 물건은 절대 안 사”가 되기 쉽습니다. 물건 만들기가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고, 대체제 찾기가 수월해졌다는 사정 때문입니다.
팬데믹과 한국의 제조업, 그리고 무형자산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지구인들의 이미지는 깜짝 놀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최근 프랑스 파리를 다녀온 정봉주 전 의원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파리에서 프랑스 식당을 갔는데 한국인이 왔다고 하니 그 집 셰프가 나와 말 걸기를 ‘내가 요즘 돈을 모으는데 왜 모으는지 아나? 값비싼 한식당에 가기 위해서’라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정 전 의원은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과거 최고 인기였던 일식집 중 값비싼 스시집은 거의 사라지고 값싼 일본식 라면-우동 가게만 남았더라”라고. 90년대 필자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식집과 중식당에서 주로 끼니를 해결했고, 몇 개 없는 한식당을 찾아갔지만 그 초라한 모양새에 놀랐던 수준을 되돌이켜본다면 참으로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확 바뀐 데는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던 점도 있지만, 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나라였기에, 마스크 생산도 못해 절절매던 구미 선진국들 입장에서는 경이롭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있었습니다.
한 경제 전문가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선진 경제는 더럽고 힘든 제조업에서 탈출해 서비스 경제로 거의 완전하게 전환했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곤욕을 치렀지만, 제조업 위주에서 탈출 못했던 한국 경제는 오히려 팬데믹으로 호기를 운 좋게 맞았다”는 해석입니다.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운 좋게 자랑거리가 됐지만 사실은 산업전환 실패의 증거이기도 하다는 진단입니다.
ESG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는 나라의 상품은 유럽에 거의 수출할 수 없는 시기가 4~5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물건을 많이 만들려면 에너지 사용도 많아야 하기에 탄소 배출 대국(大國)이 되기 쉽습니다. 친환경-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유럽에 뒤처졌던 미국도 바이든 대통령이 천문학적 예산을 투자해 ESG 시대를 앞서가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치료제까지 나오면서 팬데믹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모든 것(물건)을 생산할 수 있어 자랑스러웠던 한국’은 2020~2021년의 추억으로 남고, 2022년부터는 무형자산으로 승부를 가르는 ‘보통의 21세기 경제’로 돌아갈 것입니다. 모든 물건을 만들 줄 안다는 것에 대한 자랑은 이제 좀 접어두고 “한국은 모든 것을 잘 만들어” 할 때의 ‘것’에는 무형자산을 듬뿍 넣어야 할 때입니다.
이런 와중에 ‘오징어 게임’이란 한국의 무형(서비스) 상품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형자산까지 포함해) 한국인이 못 만드는 게 뭔가?”라는 한탄을 포스트-팬데믹 시대에 내뿜게 만드는 쾌거지요.
이번 호 ‘문화경제’에 실린 기사 중 △해외 판매량이 국내 판매량을 처음으로 앞섰다는 농심 신라면 이야기(32~33쪽) △게임 지적재산권을 활용해 아시아의 디즈니를 꿈꾼다는 게입업체 넥슨(42~43쪽)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라는 양대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OTT) 업체의 한국 소비자+생산자(영상물 제작 전문 그룹) 쟁탈전을 다룬 기사(48~55쪽) 등이 향상된 한국의 이미지 또는 영상물(무형자산) 생산능력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개인이건 회사건, 과거엔 물건을 잘 만들어야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무형물을 잘 만들거나 다룰 줄 알아야 성공한다는 공식이 더욱더 퍼져나가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