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9호 유재기⁄ 2022.02.28 12:06:59
1884년 스위스에서 탄생한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은 하늘이 낳은 시대의 산물이다. 항공산업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크로노그래프 시계다. 크로노그래프란 스톱워치 기능을 갖춘 시계를 말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기능처럼 보이지만 당시엔 애플의 아이폰과 견줄 만큼 혁신적이었다.
1800년대 후반 파일럿들은 비행시간 기록을 위해 회중시계를 꺼내 보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브랜드 창시자 레옹 브라이틀링은 파일럿을 위한 시계를 만들기로 결심, 크로노그래프를 탑재한 시계를 제작한다. 이는 당시 비행 사고를 줄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15년 창업자의 아들 가스통은 이보다 진화한 ‘푸시피스(타이머를 시작하고 리셋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최초의 시계를 선보였다. 또한 브라이틀링이 제 2차 세계대전 파일럿 시계로 사용되며 ‘파일럿 시계 = 브라이틀링’이라는 공식을 세계에 공표했다.
1934년 브라이틀링은 타이머가 0으로 돌아가는 푸시피스를 1934년 개발했다. 이는 파일럿들이 첫 번째 푸시피스를 이용해 짧은 시간을 측정하고 다시 타이머를 리셋하면서 비행시간과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또한 마지막 비행이 끝날 때 파일럿은 다시 0초로 리셋할 수 있었다. 브라이틀링의 크로노그래프 역사는 멋이 아닌 인류의 삶의 질을 앞당긴 개발로 보는 게 맞다.
인류애로 거듭난 항공 시계의 마스터피스
1952년 브라이틀링은 상상할 수 없던 기능의 시계를 선보였다. 바로 네비게이션 컴퓨터라로 불리우는 ‘네비타이머(Navitimer)’다. 시계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제품이다. 이 시계는 비행 중 베젤 위 회전형 슬라이드를 양방향으로 움직이며 거리 환산, 사칙연산, 평균속도 및 환율까지 계산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이에 1956년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일럿 단체인 ‘AOPA(Aircraft Owners and Pilots Association, 미국 항공기 오너 및 파일럿 협회)’의 공식 시계로 선정된 바 있다.
이 제품의 크로노그래프 디자인은 현재까지도 수많은 시계 회사에서 사용하는 대표적 디자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톱니모양 베젤이 주는 유니크한 감성은 여타 시계 브랜드의 디자인을 압도한다. 파일럿이 아니라도 이 시계가 주목받는 이유는 어떤 브레이슬릿(메탈, 레더)을 장착해도 네비타이머의 매력이 발산되기 때문이다. 솔리드백(시계 뒤편)에는 섭씨와 화씨온도를 즉시 환산할 수 있는 눈금자까지 있다.
생존에 필요한 시계로 지구상엔 네비타이머만한 제품을 찾기 어렵지만 굳이 하나 꼽자면 브라이틀링에서 출시된 ‘이머전시2(Emergency Ⅱ)’가 있다. 이 제품은 평생 딱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GPS 송신기가 탑재됐다. 사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시계 옆 크라운(용두)를 손으로 빼면 자동으로 브라이틀링 구조 센터에 현재 위치가 전송된다. 이 신호는 약 6000m 상공과 평평한 지형에서 최대 100마일(약 160㎞)약 48시간 동안 지속된다. 2015년 기준, 이 기능을 통해 세계적으로 약 20명이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쉽게도 이 기능은 국내 사용이 불가능하다.
SF영화 아니야? 세계 최초 민간 제트팀 보유
소위 럭셔리 브랜드로 불리는 시계 브랜드는 많다. 그들은 자사 기술력을 다이버, 파일럿, 툴 워치 등에 수혈해 시계 마니아를 유혹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지만 매해 ‘리미티드’를 붙이며 무수히 시계를 생산해 되례 희소성을 떨어트리는 브랜드도 더러 있다. 그러나 브라이틀링은 ‘파일럿 워치’라는 인식을 흐리는 범주를 벗어나질 않는다. 이는 하늘을 향한 브랜드의 진정성이 소비자에게 통했기 때문이다. 브라이틀링은 세계 최초의 민간 제트팀을 운영하고 있다. 시속 700㎞, 최대 8G의 가속도로 비행하는 L-39C를 보유, 세계적인 에어쇼에 출전하고 있다.
이 제트팀은 지난 2013년 대한민국 안산에서 열린 ‘경기 안산 항공전’에 참가해 곡예비행을 선보여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배우 지성이 2017년 상하이에서 열린 브라이틀링 디종 에어쇼에 참석하며 명실공히 하늘을 빛내는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을 다시 한번 빛나게 했다.
긴 시간 브라이틀링 모델로 활동했던 세계적인 배우 존 트라볼타는 ‘보잉 747’을 보유한 비행기 마니아 겸 실제 조종사다. 파일럿을 꿈꿔온 존 트라볼타를 모델로 기용한 건 브랜드의 신뢰를 높이는 신의 한 수로 꼽히고 있다.
화려함만이 브라이틀링의 전부는 아니다. 내실이 없으면 세계인을 사로잡을 수 없다. 브라이틀링은 매년 스위스에서 제작되는 단 5%만이 획득하는 COSC(크로노미터) 인증을 100% 받고 있다. 제품의 견고함과 시인성, 조작 기능이 최상급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놀라운 건 브라이틀링의 쿼츠시계(배터리가 동력원)도 이에 포함된다. 기술력을 뽐낼 수 있는 오토매틱 방식이 아닌 쿼츠시계로 COSC 인증을 받은 건 이례적인 일이다.
브라이틀링은 파일럿 시계 외에도 대중성을 띈 제품을 통해 시계 입문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80년대 선보인 ‘크노로맷’시리즈가 바로 그것. 전문가용 분위기가 강한 네비타이머와 달리 육중한 보디를 자랑하는 스포츠 시계로 매일 착용해야 하는 오토매틱 시계와 달리 쿼츠 무브먼트를 탑재해 실용성을 강조했다. 또한 수심 200m에서 500m까지의 방수 기능을 통해 브라이틀링의 영역은 하늘만이 아님을 입증했다.
이외에도 권총에서 모티브를 얻은 ‘콜트’ 모델 역시 브라이틀링 입문용으로 국내에서 각광받고 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 대에 속해 사회 초년생들도 구입을 고려할 만하다. 권총의 회전식 탄창에서 영감을 받아 숫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베젤과 유광과 무광이 교차되는 케이스 표면으로 어느 곳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 툴 워치로 손색이 없다. 임인년, 시계 그 이상의 가치를 소유하고 싶다면 브라이틀링을 고려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