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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84) 고사리 개인전 ‘드는봄’] 전시장에서 깨어난 퇴비와 흙노동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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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17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2.02.14 09:22:57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는 직접 농사를 지으며 경험한 자연의 원리를 작품에 담아낸 고사리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씨알콜렉티브(CR Collective)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 ‘드는봄’에서는 ‘작은 씨앗에서 시작해 열매를 맺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순환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 ‘고사리’라는 이름이 작업과 그대로 겹쳐진다. 이름의 의미가 궁금하다.

작가명이 아닌 본명이다. 아버지께서 박경리 작가를 좋아하셔서 이름에 ‘리’를 넣고 싶다고 생각하시던 중에 우연히 ‘고사리’라는 단어를 들으시고 참 예쁘다 싶어 지으셨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의 가치관, 삶의 태도의 많은 부분을 물려받았고 그것이 작업에 담겨 있다. 실제로 작업에 관한 글을 적다 보면 아버지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작가의 일상 이야기를 먼저 나눠야 할 것 같다. 삶이 고스란히 작업에 담기기 때문이다.

20대에 자취를 시작하면서 자급자족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옥상에서 토마토, 고추, 상추, 깻잎 등을 기르기 시작했다. 3년 전부터는 강북구 우이동에 터전을 잡고 마을 분들과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식물에 물을 주는 일로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고사리 개인전 ‘드는봄’, 전시 전경, 2022, 사진 제공 = 고사리

- 전시 제목인 ‘드는봄’에서 띄어쓰기를 안 한 이유는 무엇인가?

봄이 든다는 뜻을 가진 입춘의 우리말식 표현이다. 입춘의 의미 그대로를 ‘드는봄’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참 아름다운 표현이라 생각한다.
 

고사리, ‘땅의 별’, 가변크기, 다양한 말린 식물, 2022, 사진 제공 = 고사리 
고사리, ‘땅의 별’, 가변크기, 다양한 말린 식물, 2022, 사진 제공 = 고사리 
고사리, ‘땅의 별’, 가변크기, 다양한 말린 식물, 2022, 사진 제공 = 고사리

- 이제 ‘드는봄’에 전시된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전시장 입구에 각종 식물이 매달려 있어 그 사이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야 했다. ‘땅의 별’(2022)에 등장하는 마른 식물들은 무엇인가?

나는 농사 3년 차인 초보 농부이다. ‘땅의 별’에서는 그동안 수확했던 농작물들을 먹고 남은 부산물이나 밭에서 수확되지 않은 채 남겨지거나 버려진 식물을 채집해 조심스럽게 씻어 말려 둔 것을 설치했다. 땅에 뿌린 씨앗이 자라 열매가 맺히고 그것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땅의 별이 피었다 지는 것 같았다. 이전에는 길가나 땅에서 수집한 것들, 집에서 생겨나는 쓰레기의 기록, 사람이 더는 살지 않는 빈집처럼 남겨지거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했다. 농사를 짓다 보니 봄이 되면 돋아나는 새싹과 알찬 열매, 결실의 씨앗들이 가진 생의 반짝임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살피며 바라보게 되는 것은 ‘땅의 별’들처럼 식물로서의 생이 끝나는 상태이다. 그것들은 잠시의 유예 기간을 가진 채 매달려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제 식물로 피었던 생을 마감하고 땅에 떨어져 흙으로의 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식물이라는 한 생이 끝나고 흙이라는 다른 생으로 이어지는 그사이의 상태를 주시하고 있다.

 

고사리, ‘땅의 별’, 가변크기, 다양한 말린 식물, 2022, 사진 제공 = 고사리
고사리, ‘땅의 별’, 가변크기, 다양한 말린 식물, 2022, 사진 제공 = 고사리 

- 자연스럽게 ‘퇴비언덕’(2022) 이야기로 넘어가게 된다. 전시장에 1~3년간 발효한 퇴비를 가져왔다. 그런데 퇴비를 떠올릴 때 상상하게 되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퇴비 주변을 날아다니는 벌레, 퇴비 더미 위에 핀 작은 새싹들도 시선을 끌었다. 전시 안내문에 ‘흙 속에 살아있는 벌레들이 있다’고 적혀 있다.

마을 분들과 공동체로 서로서로 도와가며 생태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화학 거름을 사용하지 않고 퇴비도 직접 만들어 쓰는 자연농법에 가까운 농사이다. 농작물의 부산물과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톱밥과 섞고, 생태 화장실을 이용해 소변과 대변을 따로 모아 흙에 뒤섞어주며 발효시킨 퇴비는 매우 곱고 풋풋한 향을 낸다. 이렇게 만든 퇴비를 전시장에 가져왔다. 겨울이라 얼어있던 퇴비는 전시장에서 봄을 맞이해 곤충들이 깨어나고 잠자던 씨앗들은 저절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고사리, ‘퇴비언덕’, 가변크기, 1~3년간 발효된 퇴비, 2022, 사진 제공 = 고사리
고사리, ‘퇴비언덕’, 가변크기, 1~3년간 발효된 퇴비, 2022, 사진 제공 = 고사리

- 단순하면서도 쉽지 않은 질문일 수 있는데, 전시가 끝나면 말린 식물들과 퇴비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전시장으로 옮겨와 예정된 수명보다 짧게 살게 되는 풀이나 벌레, 지렁이가 생길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궁금하다. 작가의 작업을 위해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겨울잠 자는 동·식물들을 강제로 깨우는 것은 아닌지 고민스러웠으나 내가 펼친 상황에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전시장에 나가 온·습도를 관리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살피고 있다. 전시가 끝나면 싹이 난 작물은 화분에 옮겨지고 퇴비는 퇴비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요소들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뿐 아니라 생명체들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생명의 희생이 불가피할 때가 있다. 그래서 모두가 평화롭게 살기는 어렵다고도 한다.

나 역시 자연과 가깝게 지낸 시간이 도시에서의 시간보다 짧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데에 아직 능숙하지 않지만, 다른 동식물의 생태계를 망가트리지 않고 인간이 자연에 취하는 행위만큼 가꾸고 살펴야 생이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고사리, ‘해와 달’, 가변크기, 조명, 나무, 전동장치, 2022, 사진 제공 = 고사리

- ‘해와 달’(2022)은 제목 그대로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해와 달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옛 선조들은 한 해 농사의 결실을 잘 보기 위해 태양의 움직임을 세심히 관찰했고, 태양이 15일 단위로 15도씩 움직일 때의 기후변화를 24개의 절기로 나누었다. 자연의 순환적 생은 해와 달과 지구를 포함한 우주 만물의 리듬으로 이어져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러한 자연의 순환에 따른 생의 인식을 통해 시간, 일, 월, 년이 단순히 숫자로만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사리, ‘해와 달’, 가변크기, 조명, 나무, 전동장치, 2022, 사진 제공 = 고사리

- 생태주의, 자연, 환경 등을 다루는 작업과 관련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작품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이다.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아내고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사리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는 그와 같은 거리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꽤 긴 시간과 정직한 노동력이 그대로 전달되어서인 것 같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작업을 지속할 생각인가?

자급자족하기 위해 농사를 짓고, 수확한 것을 먹고, 남은 것은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 땅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실천적 삶의 형태가 작업과 닿아있다. 또 ‘땅의 별’과 ‘퇴비언덕’에는 1~3년 정도의 시간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노동의 시간도 포함된다. 그러다 보니 작품과 내가 동일시 되어 잘 어우러진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도 관람객들이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5년 전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씨알콜렉티브의 오세원 디렉터는 내가 농사를 짓기 전부터 나의 예술적 실천을 응원해 주셨고 이와 같은 전시를 진행할 수 있도록 믿음을 실어주셨다. ‘드는봄’은 씨알콜렉티브, 제작에 도움 준 성상식, 생활의 지혜, 강북마을텃밭 분들이 함께 세운 전시라고 생각한다.

내가 농사를 짓고 사는 삶의 태도가 크게 변하지 않는 이상 완전히 다른 방식의 작업은 어려울 듯하다. 나는 삶에서 경험한 감각들을 사유하고 실천하는 모든 과정이 자연스레 작업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전시장을 채운 흙과 식물은 자연에서 빌려오는 것이지 내 것이 아니기에 물리적으로 남지 않는 것들에 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물론 미술 작품으로서 가치를 갖는 결과물에 관련한 질문을 간혹 받곤 해 고민을 이어오고 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내가 바라는 삶의 태도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 얼마 전 작가, 큐레이터와 영상 작업이나 온라인 작업이 상대적으로 전시 폐기물이 덜 나온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해와 달’을 제작하면서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이번 전시에서 시간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영상과 기계장치를 선택했다. 미디어 매체이지만 그 움직임은 아날로그적 시도를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기술력, 시간과 노동은 필수였다. 영상이나 온라인 작업의 기술력이 고도화되는 과정에 대한 친환경적 접근 역시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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