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9호 박유진⁄ 2022.03.03 17:29:35
긴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이다. 3월, 계절상으로도 따뜻한 봄이 찾아왔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문화예술계가 오래도록 기다리던 봄이 틀림없다. 지난달 18일부터 방역 패스가 해제된 미술관은 모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한국 미술계는 원로 작가들의 단색화, 중견 작가들의 구상화와 추상화, 젊은작가들의 팝아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국 현대미술사의 지평을 확장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 조각, 판화 등의 장르 연구 기획전이 국내 미술관 전시 일정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세계화’를 외치고 있는 지금, 미술 한류 원년에 든든한 자양분이 되는 기념비적인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AI(인공지능), 게임엔진으로 만들어진 가상세계, 디지털 테크놀로지 자체가 작품이 되는 그야말로 새로운 전시도 준비돼 있다. 국외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실험적 전시부터, 이미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뉴미디어 아트 거장의 전시가 상반기에 기획됐다. 또 사회의 문화적 역동성을 이끈 커머셜 작품 전시도 개최될 예정이다. 봄 에너지만큼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상반기 국내 전시를 정리해 봤다.
이안쳉 세계건설(Ian Cheng : Worlding)
4년간 휴관했던 리움미술관이 지난해 10월 다시 문을 열었다. 리움의 2022년 첫 전시 중 하나인 ‘이안쳉 세계건설(Ian Cheng: Worlding)’은 미국 작가 이안 쳉의 첫 아시아 개인전이자 현재까지 작가의 주요 작품을 총망라하는 전시다. 이안 쳉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의 의식과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을 전개해왔으며 인공지능(AI)과 게임 엔진을 사용해 가상 생태계를 만드는 선구적인 작업으로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안 쳉만의 논리와 방법론을 사용해 구축한 가상세계를 보여준다. 리움이 제작 지원한 작가의 최신작을 포함한 작품 5점은 인간의 의식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탐구와 SF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전시는 3월 2일부터 7월 3일까지 리움 블랙박스에서 열린다.
권진규 탄생 100주년 특별전
서울시립미술관은 ‘권진규 탄생 100주년 특별전’을 개최한다. 20세기 한국 조각의 선구자라 불리는 故 권진규(1922-1973)의 작품이 작가의 유족과 (사)권진규기념사업회로부터 지난해 7월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됐다. 140여 점의 컬렉션에는 <자소상>(1968), <도모>(1951), <기사>(1953) 등 주요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권진규는 테라코타와 건칠을 이용한 두상과 흉상 작업을 통해 특유의 정신성을 작품에 녹여냈다. 불필요한 장식물을 극도로 배제한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형상을 추구한 권진규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인정받으며 한국 근대 조각사의 핵심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대량수증 컬렉션은 한국 미술 작품 연구를 확장하는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전시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상설전시 공간에 마련되며 3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이어진다.
언커머셜(UNCOMMERCIAL) : 상업사진과 인물 1984-2022
일민미술관은 ‘언커머셜(UNCOMMERCIAL): 상업사진과 인물 1984-2022’을 상반기 첫 전시로 준비했다. 1959년 국내 최초로 광고사진 스튜디오를 설립한 김한용을 비롯, 한국 대중문화의 폭발적 성장을 이끈 사진가들 그리고 상업사진의 활로를 개척한 후세대 작가들의 실천을 사회 ‧문화적, 미학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상업사진은 90년대 이후 소비문화의 팽창과 맞물려 급격히 발달한 대중적 욕망의 산실이자 반영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전제하에 최근 미술과 디자인 등 시각예술 영역에서 ‘커머셜’의 의미가 적극적으로 확장되는 사례를 발굴하고 상업 영역의 예술 실천이 지닌 동시대적 의의를 살핀다. 참여작가는 구본창, 김용호, 레스(LESS), 조선희, 조기석, 장덕화, 신선혜, 홍장현 등 20여 명이며 전시는 일민미술관 1-3전시실에서 4월 1일부터 6월 26일까지 이어진다.
히토 슈타이얼 국내 최초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은 뉴 미디어 아트, 포스트 이미지 담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히토 슈타이얼’의 국내 최초 개인전을 개최한다. 디지털 시대, 글로벌 자본주의, 팬데믹 등 첨예한 사회 문화 이슈를 필름, 비디오, 다큐멘터리 영상과 저술, 비평 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탐구해온 히토 슈타이얼은 2017년 아트 리뷰에서 세계 미술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또한 베를린 UDK의 교수로 재직 중인 작가는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번 전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자체를 작품의 내용으로 삼고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낸 이미지 배후의 사회 ‧문화적 조건을 탐구해오고 있는 히토 슈타이얼의 주요 영상 작품 20여 점을 소개한다. 더불어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으로 제작된 신작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을 선보인다. ‘데이터의 바다’, ‘글로벌 유동성’, ‘미술관은 전쟁터인가?’ 등의 내용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 기술과 예술의 관계, 이미지 생산과 소비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4월부터 9월까지 개최된다.
<문화경제 박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