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특수가 사라지고 경기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TV 판매 시장이 부진에 빠지자, 국내 전자업계가 올 하반기 돌파구 마련을 위한 전략을 다각도로 고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전 세계 TV 출하량 감소 속에서도 하반기에 여전히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프리미엄·초대형 TV 제품에 집중한다. 또, 콘텐츠를 앞세워 소프트웨어 사업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올해 2분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1분기 실적에 못 미치는 다소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삼성전자는 매출 77조 원, 영업이익 14조 원을 올린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고 이달 발표했다. 1분기보다 매출은 1%, 영업이익은 0.9% 감소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매 분기 이어오던 실적 신기록 행진이 2분기를 기점으로 중단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에 분기 매출이 처음으로 70조 원을 넘어선 뒤 올해 1분기까지 역대 최고 매출 기록을 이어온 바 있다.
LG전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LG전자는 2분기 잠정 실적 발표를 통해 연결 기준으로 매출 19조 4720억 원, 영업이익 7917억 원을 올렸다고 이달 발표했다. 매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한 1분기보다 7.1%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8%가량 급감했다.
이런 실적 악화는 글로벌 경기 둔화 흐름 속에 원자재·물류비 부담이 늘어난 영향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가 원자재와 곡물 가격 급등에 불을 지폈고, 이 흐름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자의 지갑은 굳게 닫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 5월(102.6) 대비 6.2포인트 떨어진 96.4를 기록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완화돼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가전 소비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하반기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올해 전 세계 TV 출하량이 LCD(액정표시장치) TV를 중심으로 지난해보다 약 474만 3000대 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옴디아의 전망대로라면 올해 TV출하량은 2010년(약 2억 1000만대) 이후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게 된다.
다만 70인치 이상 초대형 TV 시장은 매출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20%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2500달러 이상 TV 시장에서 42.1%, 80형 이상 초대형 TV 시장에서 44.9%의 점유율(금액 기준)을 기록했다. 애매한 디자인과 성능, 가격을 지닌 제품 대신 비싸더라도 고화질·고성능 TV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영향이다.
프리미엄 OLED TV 성장세 눈길
특히 초대형 TV 시장에서 프리미엄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LCD를 대체할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받는 OLED는 잔상 없는 화면, 넓은 시야각, 좋은 화질이 강점이다.
옴디아는 올해 70인치 이상 초대형 TV 시장에서 OLED TV의 점유율이 출하량 기준 사상 처음으로 5%를 돌파하고, 금액 기준으로는 13%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DSCC)도 올해 OLED와 미니 LED(발광다이오드) 등 프리미엄 모니터 패널 출하량을 지난해보다 328% 증가한 360만 장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올해 전체 모니터 시장은 지난해 대비 4%, 내년에는 올해 대비 3% 각각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프리미엄 모니터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관측했다.
자국 브랜드 선호가 높아 ‘외산 가전의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한국 OLED TV는 선전하고 있다. LG전자의 올해 1분기 일본 OLED TV 점유율은 12.6%로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OLED TV 점유율로는 소니, 파나소닉, 샤프에 이어 4위다.
LG전자가 차세대 OLED TV로 출시한 LG OLED evo(올레드 에보)는 이달 일본 영상·음향 전문지 하이비(HiVi)가 선정한 ‘올 여름 베스트바이 어워드’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최고 OLED TV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전자업계는 하반기에 프리미엄 제품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LG전자는 올해 하반기 97인치 OLED TV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로써 LG전자는 42·48·55·65·77·83·88·97형에 이르는 OLED TV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여기에 지난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글로벌 디자인 전시회 ‘MDW(Milan Design Week) 2022’에서 공개한 LG OLED 오브제컬렉션 신제품(모델명 LX1)을 올해 3분기 출시해 TV 라인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QNED(퀀텀닷나노로드발광다이오드), 나노셀 등 프리미엄 LCD TV에서도 초대형 위주로 제품 구성을 강화해 입지를 공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도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패널을 장착한 QD(퀀텀닷) 디스플레이 TV를 북미에 이어 유럽 시장에 출시하는 등 프리미엄 제품의 비중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지난 3월 북미와 유럽 일부 국가에서 사전 주문을 받았고, 미국에서는 4월 중순부터,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등 8개국에서 5월 초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이달 중엔 QD-OLED(퀸텀닷 유기발광다이오드) TV를 싱가포르와 호주, 뉴질랜드에도 순차 판매한다. 삼성전자 싱가포르 법인은 홈페이지에 삼성 OLED TV 55·65형 제품을 소개하고 이달 17일까지 사전 예약을 받았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달 열린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협의회에서도 프리미엄 제품 확대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앞세운 소프트웨어 사업 경쟁
이처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수요를 맞추면서, 이 수요를 지속하고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보다 끌어내기 위해 콘텐츠를 앞세운 소프트웨어 사업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웹OS(webOS) 기반 TV 플랫폼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자체 운영체제인 웹OS를 다른 TV 제조업체에 판매하면서 앱과 콘텐츠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LG전자는 지난해부터 독자 소프트웨어 플랫폼 웹OS를 외부에 공급하며 TV 플랫폼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케이엠시(KMC), 월튼(WALTON), 세이키(SEIKI), 크로마(CROMA) 등 자체 OS(운영체제)를 보유하지 않은 해외 로컬 브랜드들이 주요 고객이다. LG전자에 따르면 웹OS 기반 스마트 TV를 출시하는 업체는 지난해 20여 곳에서 올해 200여 곳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이에 맞춰 LG전자는 플랫폼 구매 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 및 방송 서비스도 지속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대표 콘텐츠로는 25개국에 총 1900여 채널을 제공하는 무료방송 서비스 LG 채널이 있다. 인공지능 씽큐(ThinQ) 기반 음성인식 등 LG 스마트 TV의 다양한 부가 기능도 제공한다.
지난달엔 SM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홈 피트니스’ 콘텐츠 강화에 나섰다. LG전자는 피트니스캔디의 서비스 앱을 개발하고 클라우드를 구축하는 등 플랫폼 운영을 지원하고, SM은 기획 역량과 많은 아티스트·다양한 음원을 기반으로 콘텐츠 제작에 협력한다.
두 회사가 함께 세운 합작법인 ‘피트니스캔디’는 홈 피트니스 관련 콘텐츠를 제작해 이르면 9월 앱을 출시할 예정이다. 앱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는 LG전자가 운영하는 스마트 TV 플랫폼에도 탑재된다.
지난달 말 열린 피트니스캔디 출범행사에서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LG전자는 가전 제조사를 넘어 토털 솔루션 플랫폼 회사로 발전해 나가고자 한다”며 소프트웨어 강화 의지를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자체 동영상 플랫폼인 ‘삼성 TV 플러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 TV 플러스 플랫폼은 23개국으로 확장돼 현재 1000개 이상의 채널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에선 스마트TV를 통해 코미디 스트리밍 플랫폼인 ‘넥스트업’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콘텐츠도 확대하고 있다.
이달엔 티빙, 왓챠 등 국내 OTT 업체들과 손잡고 고화질 콘텐츠 HDR10+ 확산 계획도 밝혔다. HDR10+는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는 영상 표준 기술로, TV나 모바일 등에서 디스플레이의 성능을 고려해 각 장면마다 밝기와 명암비를 최적화해 주는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HDR(High Dynamic Range) 콘텐츠의 저변 확대를 위해 자체 개발한 HDR10+ 콘텐츠 전환 소프트웨어를 지난 2019년부터 무상으로 배포해왔고, CJ 올리브네트웍스·왓챠·U5K 이미지웍스·캔딧 스튜디오 등 다수의 영상 콘텐츠 업체가 이를 활용하고 있다.
티빙은 지난해부터 HDR10+를 적용하기 시작해 최근 방영한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인 ‘서울체크인’, ‘돼지의 왕’, ‘술꾼도시여자들’, ‘괴이’ 등을 포함해 총 40여개의 HDR10+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 스마트 TV와 스마트 모니터에서 스트리밍 게임을 연동할 수 있는 스마트 TV 플랫폼 ‘게이밍 허브(Gaming Hub)’를 공식 출시했다.
게이밍 허브는 타이젠(Tizen)을 기반으로 실행되며, 사용자가 즉시 원하는 게임을 접하도록 돕는다. 타이젠은 삼성전자와 인텔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만든 범용 OS(운영체제)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TV, 키오스크 등에서 타이젠을 사용 중이다.
오는 4분기에는 3년 만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삼성개발자콘퍼런스(SDC)를 오프라인으로 열 예정이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해당 행사에서 지난해 밝힌 타이젠을 중심으로 한 앱 생태계 확장 전략을 발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탄탄한 수요층을 보유한 프리미엄 제품 판매 전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콘텐츠 등으로 고객 경험의 폭을 늘리는 게 하반기 전자업계의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