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0호 김예은⁄ 2022.08.23 19:09:20
화장은 얼굴을 가꾸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여성상과 당시 사회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의 하나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여성의 화장과 아름다움을 정형화된 일차원적 개념이 아닌, 경제·사회·문화 등 시대적 요인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는 다층적 개념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태평양화학 때부터 지난 70년간 쌓아온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유행화장’이라는 콘텐츠를 발굴했다. 유행화장은 여성의 화장에서 시대의 얼굴을 발견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유행화장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특정 시대를 풍미한 유행 화장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과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부는 것도, 과거의 유행이 수십년을 되돌아 현재에 재현되는 것도 유행화장의 존재의 이유를 설명한다. 유행화장에 담긴 여성 화장의 변화는 단순히 과거의 유행 변화 뿐만 아니라, 미래의 유행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침서가 된다. 총 281 페이지의 단행본으로 제작된 유행화장을 통해 독자들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유행화장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해 온 여성들의 여성관과 미의식을 재조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아모레퍼시픽이 1950년부터 시작하는 과거 유행 화장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유행화장 콘텐츠를 기획 및 발굴한 아모레퍼시픽의 크리에이티브 전략팀은 “화장 문화를 살펴보면 그 시절의 유행과 문화, 사회적 영향 등도 살펴볼 수 있다”며 “유행화장 프로젝트를 통해 당대 한국 여성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유행화장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화장계, 난초, 향장 외에도 다양한 교육자료, 방문판매 교본 등 매우 방대한 양의 자료를 살폈다. 방대한 역사속에 담긴 과거의 소중한 순간들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자료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당히 자신있게 스스로를 표현하며, 그 시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유행화장 단행본은 유행 경향을 1950년대 부터 현재까지 10년 단위로 구성하여 특성을 부여하고 각 시대를 드러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또한 각각의 10년을 대변하는 키워드를 선별해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구성했다. 예를 들면 1950년대는 HOPE, 1960년대는 EXPRESSION, 1970년대는 LOVE&FREE 등이다.
1960년대는 고난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시대의 희망의 바람을, 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문화적 주체성을 확립하고 경제적 자립을 다지는 성장의 시기에서 자기 표현이 강화되는 시대적 흐름이 담겼다.
한국전쟁 직후 1950년대, 전쟁의 상흔을 입은 황폐한 서울부터 유행화장의 역사가 시작된다. 남은 것은 전쟁이 남긴 폐허와 재 뿐인 현실을 국민들은 딛고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집이 폐허가 되고 사랑하는 이와 작별한 뒤에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시대, 그 시대의 삶은 그저 암울하기만 했을까? 우리가 상상하는 과거와 실제 모습은 때론 부조화를 낳기도 하는데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의 서울이 그러하다.
그 시절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소실된 조선 시대의 전통을 복구하는 한편 일제가 남긴 폐습을 미국의 방식으로 바꾸어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의 여성은 긴 머리를 부드럽게 뒤로 빗어 올린 프렌치 트위스트 스타일에 플레어스커트나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로 을지로, 명동, 회현동 일대를 활보한다. 여성들의 모습에는 부끄러워하거나 어딘가 주눅 든 표정이 아닌 자유로움과 당당함이 묻어난다.
서구의 자유주의와 모더니즘의 바람을 대변해주는 이 장면 속에서 우리는 전쟁 직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국민의 당당함과 세련되고 현대화된 아름다움이라는 의외의 풍경을 찾아볼 수 있다.
개성(INDIVIDUALITY)으로 대변되는 1990년대에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변화와 함께 획일화 된 스타일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독특한 개성을 살린 스타일을 맘껏 뽐내는 여성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대변하는 유행 화장 중 하나가 바로 다채로운 립 컬러이다. 바쁜 도시 생활 속에서 화려하고 강렬한 와인, 퍼플 컬러와 전원의 소박한 자연미를 떠올리게 하는 복고풍의 브라운 컬러가 동시에 열풍을 일으켰다.
유행화장의 독자는 책 사이사이마다 횃-숀 60s, 뷰우티 코너 등 크기와 질감이 다른 간지 형식의 책자와 내용을 발견한다. 또한 지면이 넘어가고 시대가 변화할수록 그 콘텐츠가 담긴 종이의 질감 역시 변화한다는 것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편집자는 이러한 시대별 특징을 보여주는데 있어 종이의 질감과 두께, 컬러 등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지를 구성하는 지류를 선정하는 일에서 부터 많은 공을 들였다. 지면의 크기와 질감의 차이를 준 이유 역시 시대별 특징을 종이의 질감과 두께에서부터 느끼도록 한 편집자의 의도 때문이다.
단행본의 내용을 보면 단순히 화장의 흐름을 통한 외면의 변화 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여성의 사회적 위치의 변화와 자의식의 성장에도 함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유행화장의 콘텐츠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곱게 치장하는 행위인 화장은 시대별 역사와 가치관, 기호 스타일 등 다양한 것의 영향을 받은 여성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거나 공감한 것들을 자신의 얼굴에 표현하며 유행으로 나타나게 된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를 통해 각 시대가 표현하는 컬러나 화장의 모습은 다르지만 그 주체인 여성들은 모두가 소중하고 매력적이며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단행본 유행화장에는 70년 전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흑백 사진부터, 영화 포스터와 신문 지면 광고 이미지들까지 다채로운 이미지가 실려있다. 특히 역사적 자료의 원본이 잘 보존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아모레퍼시픽이 지나온 역사와 자료를 재산으로 가치 있게 보관해 온 아카이브 시스템에 의한 역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창립 70주년이었던 2015년에 오산 아모레 뷰티파크 내에 아카이브 독립 건물을 신축하여 체계적으로 기업 사료를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누적된 자료에서 시대적 여성상의 변화에 맞춰 엮은 요약본이 바로 유행화장의 시작이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향후에도 유행화장이라는 콘텐츠 자산을 필두로 숏폼과 웹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아모레퍼시픽이 목표로 하는 지향점은 아름다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모든 존재가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며 그 잠재력에 주목하는 아름다움의 새로운 패러다임, ‘뉴 뷰티(New Beauty)’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뷰티의 영역을 넘어 일상 전반을 포괄하는 ‘라이프 뷰티(Life Beauty)’로 아모레퍼시픽의 업(業)을 확장하고 디지털 기술로 개개인에 맞춘 최적의 아름다움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 유행화장 기획팀은 “이번 단행본을 통해 지금을 사는 우리가 자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과거와 현재를, 현재와 미래를 잇는 유행화장. 이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얼굴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보길 기대한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