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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인터뷰] 이승훈 전통주전문점협의회 회장 “전통주 전문점? 훌륭한 음식이 먼저”

서울 압구정 전통주 전문점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 전통주와 음식의 페어링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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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1호 김응구⁄ 2022.09.07 09:45:33

이승훈 대표는 “전통주 전문점은 음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거기에 전통주를 얹어야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고 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전통주점’이라고 하면 MZ에겐 낯설다. 사실, 기성세대여도 아주 익숙지는 않다. 황토색 벽에 한국적인 액세서리들, 어디 ‘출신’인지 모를 막걸리가 담긴 주전자, 그리고 파전이나 두부김치, 거기에 더해 알 듯 모를 듯한 옛 노래까지. 그래도 한 시대의 어엿한 음주문화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젠 ‘전통주 전문점’이다. 차이는 분명하다. 말그대로 전문점이다. 40~50개에서 많게는 300여 개의 전통주 리스트에 충실하고, 음식과 서비스에 많은 공을 들인다. 고객 맞춤형 ‘전통주 소믈리에’도 활약한다. ‘장수막걸리’가 전부인 줄 아는 애주가들에겐 신천지나 다름없다. 환호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그렇게 단골이 된다. 처음엔 두 명이 찾지만 다음엔 서너 명으로 는다. 요즘 전통주 전문점의 모습이다.

MZ세대에게 전통주 전문점은 그저 일반 외식업소와 다를 바 없다. 흔한 현대식 주점에서 전통주와 정말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다. 이곳에선 전통주가 부담스럽지도, 꺼려지지도 않는다. 호기심 왕성할 때니 오히려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나와 잘 맞는 전통주까지 찾아낼 수 있다.

서울 압구정의 ‘백곰막걸리’는 전통주 전문점의 선두주자다. 6년이 조금 넘었지만 이쪽 업계에선 이미 노포(老鋪·오래된 가게)로 통한다. 전통주 전문점의 생명력이 짧다는 것보다 오랜 운영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승훈 대표는 “제겐 60년 같은 곳”이라는 짤막한 말로 백곰막걸리를 소개했다.

대기업 식품MD 출신인 그는 2010년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전통주업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취미였다. 그러다 푹 빠졌다. 그렇게 6년을 보냈다. 아주 알차게 보냈다. 전국의 양조장을 다 훑고 다녔다. 각 지역의 유명음식이란 음식은 틈나는 대로 접했다. 그 와중에 ㈔한국막걸리협회 사무국장까지 맡아 능력도 인정받았다. 아는 사람도 많아졌고 그만큼 할 일도 많아졌다.

회사를 그만둔 건 외식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은근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식품MD 시절 수산과 축산을 맡았다. 그쪽을 잘 아니 남다르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요리 레시피는 몰라도 이 메뉴가 좋을지 나쁠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전통주업계에서 돌아다닐 만큼 돌아다녔어도 상권은 계속 보러 다녔다. 그렇게 얻은 자리가 지금의 압구정동이다. 운이 좋았다. 계약하려던 두 곳이 별다른 이유 없이 파기되고, 도저히 무리일 것 같던 지금의 자리는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계약에까지 성공했다.

기분 좋은 시간은 거기까지. 그에게 외식업은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를 “해저 찍고 에베레스트까지 찍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아주 힘들게 보냈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엎친 데 덮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그는 웃는다. “지난 4월 둘째 주부터 영업제한이 풀리면서 빚이 갚아지고 있다”지만 그래도 자신감은 넘쳐 흐른다.

이승훈 대표와의 대화는 전통주 전문점에 초점을 맞췄다. 그간 수없이 많은 인터뷰로 단순한 업소 소개는 무의미한 데다, 현재 전통주전문점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그를 통해 전통주 전문점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 될 만한 얘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개한다.

‘백곰막걸리’의 외관을 보면 들어가고 싶어진다. 정말 맛있는 음식과 꽤 괜찮은 전통주가 반드시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진=김응구 기자

- 지금도 전통주 전문점을 해보겠다고 상담하러 오는 사람이 많죠?
"지금까지 수백 명과 상담한 듯해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도 전통주 전문점 창업과 관련해서 강의를 많이 합니다. 창업하려면 기본적으로 전통주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2022년 현재, 전통주 전문점을 낸다는 사람치고 전통주 공부 안 한 사람은 드물어요. 하지만 이게 중요한 건 아녜요. 여긴 외식업소예요. 그럼, 술과 안주(음식) 중 어느 쪽의 중요성이 더 높을까요?"

- 둘 다 중요한 것 아닌가요?
"안주가 더 높아요. 이걸 창업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간과해요. 전통주 전문점이니까 전통주 리스트가 괜찮고, 이 술과 저 술을 잘 팔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아녜요. 술은 공산품이잖아요. 내가 유일무이한 술을 만들어내서 파는 것도 아니고, ‘송명섭막걸리’, ‘해창막걸리’, ‘복순도가’, ‘풍정사계’ 등 너도나도 다 파는 걸 나도 팔잖아요.

술은 막말로 공부하지 않아도, 유명한 전통주 전문점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돼요. 인터넷으로 몇 번 검색만 하면 여러 전통주 전문점의 메뉴판을 찾을 수 있죠. 열 곳도 아니고 다섯 곳만 모아서 교집합만으로 전통주 리스트를 만들면 돼요. 또 그것들은 전통주를 전문으로 유통하는 회사 두어 곳만 알면 다 구하죠. 전통주의 장점이자 단점이 양조장과 직거래가 가능하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해서 누구나 전통주 리스트는 다 갖출 수 있어요. 잘 모르겠으면 전통주 교육기관에 가서 배우면 되고요.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한 거예요. 그것마저도 안 하면 어차피 외식업을 하면 안 될 사람입니다."

- 음식, 즉 요리에 더많은 공을 들여야한다는 말씀이죠?
"누구한테든 이렇게 말합니다. 주류 리스트나 술은 괜찮은데 음식이 별로이면서 대박 난 외식업소를 아는 곳이 있으면 하나라도 말해보라고요. 와인 리스트나 전통주 리스트는 괜찮은데 음식은 그냥 그런 곳치고 현재 잘 되는 노포가 있으면 말해보라고요.

물론, 한두 곳 정도는 있을 수 있죠. 마케팅을 잘했든가, 아니면 아주 유명한 사람이 하는 곳이든가. 반대로 술이라곤 ‘참이슬’ ‘처음처럼’ ‘장수막걸리’ 정도밖에 팔지 않는데 족발이든 보쌈이든 한정식이든 음식이 괜찮으면서 대박 나는 곳을 말해보라면 수백, 수천 곳을 얘기할 수 있잖아요. 답은 이미 나온 거예요.

술은 그다지 안 중요해요. 다만, 음식이 좋을 때 전통주든 와인이든 얹어주면 그땐 시너지 효과가 크게 나는 거죠. 기본은 음식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이 중요해요. 잘 되고 안 되고는 99% 음식으로 결정되죠."

- 좋습니다. 그럼, 음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걸까요?
"외식업의 기본으로 돌아가야죠. 우선 내가 식재료를 알아야 하고요, 요리는 내가 하든 셰프를 구하든, 그것도 힘들면 도망갈 수 없는 가족을 셰프로 만들든 해야죠. 그리고 트렌드도 맞춰야 하고 지속가능성도 봐야 해요.

전통주 전문점을 하려면 전통주와 음식의 페어링도 당연히 생각해야 하고, 다양한 주종을 취급할 거면 탁주, 약주, 소주에 맞는 음식의 밸런스도 좋아야 하죠. 다양한 안주로 갈 게 아니면 보쌈이든 수육이든 몇 가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고, 아니면 차라리 아이템 하나만 정해서 가든가, 그런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 종합해보면 결국 전통주 전문점 역시 외식업인 거네요.
"그렇죠, 외식업이에요. 전통주 전문점은 예외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요새는 좀 덜한 편이지만 2~3년 전만 해도 저를 찾는 사람의 70~80%는 전통주 전문점 창업을 하려 했어요. 그들의 공통점이 전통주 전문가가 되려고 한다는 거예요. 가게 오픈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양조장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뭐, 가면 좋긴 하죠. 그런데 그건 핵심 역량과 전혀 상관없어요.


나만 아는, 나만의 술을 발굴하겠다는 얘기도 해요. 그것도 좀 웃긴 거예요. 그 술이 실제로 맛있다고 치죠. 블로그 등 여기저기에 업로드되고 그러면 다른 주점에서도 주문할 거 아녜요. 양조장 몇십 곳 가본 사람이 나만의 술을 발굴한다? 의미 없는 얘깁니다. 그런 걸 하느니 차라리 주류전시회 다니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네트워킹 잘하면서 새로운 술 빨리빨리 들여놓는 게 훨씬 나아요. 소규모 주류제조도 요즘 많이 생기는데 그런 것들도 빨리 가져다 놓는 게 즉시 효과가 있죠. 그런데 이것도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 오는 사람들이 단골이 될 가능성도 적어요. 그 사람들을 단골로 만드는 건 결국 음식인 겁니다."

 

- 음식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셰프와의 갈등은 없었나요?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소위 ‘오픈빨’이 좀 있었어요. 근데 음식 소문은 별로 안 좋았어요. 셰프 두 명과의 짧은 만남 끝에 차라리 여기서 키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죠. 그리곤 한 셰프와 5년을 함께했어요. 여름휴가도 같이 다녔죠. 셰프에게 들인 돈만 정말로 1억 원이 넘어요. 수도 없이 다녔거든요. 언뜻 생각나는 것만 목포 세 번, 통영 네 번, 여수 다섯 번, 그 외 강릉, 진도 등 온갖 수산물이 나는 어항은 죄다 다녔어요. 파인다이닝도 수십 군데나 갔고요. 제자신이 먹는 것에 관심이 많으니 가능한 일이었죠. 그게 다가 아녜요. 일식 학원, 특히 가이세키요리(會席料理)학원, 미식아카데미까지 보냈어요. 정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가 있지만요. 대신 유명 한식주점 ‘얼쑤’의 조성주 대표를 끌어들여 현재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 중입니다. 워낙 요리로 유명한 친구라 요새 음식 평판이 많이 좋아졌어요. 음식이 무척 안정적이에요."

이승훈 대표는 백곰막걸리에 셰프를 키워 음식 수준을 높였고, 330여 종에 이르는 전통주를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전통주 소믈리에'도 적잖게 배출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 술과 음식의 페어링에도 신경 많이 써야겠군요.
"저도 몇 년 전까지는 전통주 공부하고 이어 한식을 공부하면 페어링도 잘 알게 되는 건 줄 알았어요. 지나 보니 완전히 다른 분야예요. 전통주 전문가가 되고 한식 전문가가 됐어도 페어링을 가능한 한 다 해보고 공식을 만들고 그 데이터값을 갖고 있어야 전문가인 거죠.

요리학원 다니고 술 교육기관 다녔다고 해서 페어링을 잘 아는 건 결코 아녜요. 몇 년은 이것만 파고, 이걸로 석·박사 받고, 교수 되고, 전문 강의를 하고, 책을 내고 해야 전문가가 나오는 건데 아직 그런 사람이 없어요."

- 이쯤 되고 보니, 백곰막걸리의 음식 구성이 궁금해집니다.
"백곰이 추구하는 건 대중 안주예요. 퓨전은 아녜요. 요즘 생긴 전통주 전문점들이 대체로 퓨전 안주를 내놔요. 주고객이 MZ세대잖아요. 이들은 깊이 있는 한식이나 그 지역의 음식을 먹어본 게 아니라 아직 ‘단짠(달고 짠 음식)’을 좋아하죠. 저희는 다이닝 스타일이나 이탈리아·프렌치 느낌의 퓨전으로는 가지 말자 주의예요. 정통 한식안주에 가깝죠. 이런 데가 있어야 하기도 하고, 딱히 유행을 안 탄다고 본 거죠.

대신 퀄리티에 상당한 신경을 씁니다. 조개탕을 만들어도 주문진에 가서 째복을 구해와 ‘왕째복맑은탕’ 같은 걸 만들어요. 다른 메뉴도 대체로 그렇게 만드는데, 그렇다고 또 궁중음식 스타일로 하진 않아요. 과거든 현재든 막걸리나 전통주와 먹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퀄리티가 좋은 안주를 제공하는 거죠. 이게 결론적으론 먹히고 있는 것이고요."

- 설령 알아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제가 냉정히 판단해도 백곰막걸리의 음식은 정말 좋아요. 재료들이 아주 좋죠. 표기하지 않는 재료, 예를 들어 마늘이나 오이 등도 다 국산을 써요. 사실 그런 것들을 중국산으로 쓴다 해도 메뉴판에는 표기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저는 좋은 국산 재료를 사용하는 게 결국 길게 가는 거라고 보는 거죠. 그게 또 옳기도 하고요. 그래서 고객이 무서운 겁니다. 재료가 좋네, 이런 것보다 괜찮은데? 맛있는데? 이러면서 다시 방문하거든요. 결국 거기에서 갈리는 거예요."

- 백곰막걸리를 시작하면서 전통주전문점협의회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 중이죠?
"지금 회원이 50여 곳 돼요. 제가 일일이 다 찾아가 면접 봐서 합류시켜요. 절반 넘는 수가 지방에 있습니다. 춘천, 대전, 청주, 광주, 합천, 제주까지 다양하죠. 어떤 것이든 문의가 들어오면 모두 답해주고, 어떤 양조장이 필요하다면 직접 연결해주고요.

하여간 궁금해할 만한 모든 건 다 알려줘요. 그래서 50곳이 적은 수가 아녜요. 그래도 올해부턴 문턱을 좀 낮추려고 해요. 코로나19 기간에 모임을 전혀 못했거든요. 100곳 정도로 더 늘리기는 할 거예요. 일이 두 배가 되기는 하겠죠."(웃음)

이승훈 대표는 스스로 ‘민간 전통주 갤러리’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전통주의 궁금증을 알려주는 것은 당연하고 관계 형성이나 길을 터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왔고 계속 그렇게 살 예정이다.

백곰막걸리 건물주인과 계약하기 전, 그는 A4 용지 10장에 내가 왜 이곳에서 잘할 수 있는지를 빼곡히 적었다. 그리고 부동산에서 건물주와 공인중개사를 앞에 두고 프레젠테이션(PT)을 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 장면이 그를 아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치열하다. 간절하기도 하다. 그러면서 자신감도 있다. 이게 그가 6년 넘도록 넘어지지 않고 쉼 없이 전통주 전문점을 끌어가는 힘이다. 그러니 전통주 전문점을 꿈꾸는 이들은 그에게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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