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시장에 부족한 점? 이미 다 갖췄다. 다만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다.”
한국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더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점에 대해 프란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시아 지역 총괄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최근 한국미술 시장은 축제의 정점에 이르고 있다.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이 처음으로 국내를 찾았고, 국내 최대 미술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이하 키아프)가 함께 열리고 있다. 프리즈 서울은 9월 5일, 키아프는 9월 6일 각각 막을 내린다.
이 시점에 맞물려 세계적 경매 회사 크리스티는 미술품 컬렉터 로살린 웡이 설립한 홈아트와 손잡고 신세계 분더샵 청담에서 비경매 전시를 9월 3~5일 마련했다. 크리스티가 경매와 무관한 기획전을 국내에서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련해 크리스티 측은 “활발한 한국미술 시장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수준 높은 예술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크리스티의 관심과 노력의 방증”이라며 “크리스티는 한국의 안목 있는 컬렉터와 미술 애호가, 일반 관객들과 함께 이 뜻깊은 순간을 만끽하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티는 9월 2일 전시 프리뷰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의 작품 16점을 공개했다. 크리스티에 따르면 이 작품들은 총 4억 4000만 달러(약 5800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가치를 지녔다.
이번 비경매 전시는 예술 애호가들과 일반 대중이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무료 관람으로 운영됐는데, 전시 공식 공개 이전에 이미 프리뷰 예약이 완료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전시 작품엔 베이컨의 교황 시리즈 중 스페인 작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을 음울하지만 매력적으로 재해석한 ‘초상화를 위한 습작 II’, ‘교황을 위한 습작 I’과 2차 세계대전의 폭력과 억압, 문화적 폭정을 그린 게니의 ‘눈꺼풀이 없는 눈’과 ‘컬렉터 3’가 포함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베이컨과 게니의 대표작들이 마치 서로 대화를 나누듯 연극적으로 배치됐다.
크리스티 측은 “비록 이들 사이는 한 세대라는 간극이 있지만, 둘은 역동적인 페인팅 기법뿐 아니라 인간의 조건과 가장 어두운 측면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연결됐다”며 “이번 전시는 이러한 걸작들을 병치함으로써 두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베이컨과 게니의 작품은 세계 유수의 미술기관 컬렉션으로 소장돼 있다. 최근 런던의 왕립 아카데미에서는 베이컨의 작품을 단독으로 전시한 바 있으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게니가 루마니아관 대표로 선정됐다.
“지속가능한 방식, 인내심, 다양성 필요”
크리스티는 박물관에 걸릴만한 이 걸작들을 선보일 곳으로 왜 한국을 택했을까. 크리스티 내부에서도 한국미술 시장에 대한 크리스티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벨린 사장은 “한국미술 시장은 점점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프리즈 서울, 키아프에도 세계 컬렉터들의 많은 관심이 쏠렸는데, 크리스티 또한 미술시장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과거부터 항상 생각했다”며 “이 일환으로 크리스티는 2004년부터 홍콩 경매에 재능 있는 한국 작가를 적극적으로 소개해 왔다. 또, 다양한 국가의 컬렉터들과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결과 최근엔 한국 고객 매출이 급격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많이 지원하는 점이 눈에 띈다”며 “‘오징어게임’ 등 한국 드라마의 인기, BTS로 인한 케이팝 열풍이 전 세계에 불고 있는데, 이를 이어 한국미술 시장이 정점을 찍을 것이라 예상한다”고 부연했다.
이를 위한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벨린 사장은 “프리즈가 서울에서 열리는 등 한국의 미술시장은 긍정적인 발전을 이루고, 그만큼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며 “하지만 지속가능한 방식과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뉴욕, 홍콩, 런던 등 세계 미술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닌 뉴욕과 런던도 세계 예술의 중심지가 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미술시장의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상하이, 타이완 등이 홍콩 미술시장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고, 서울도 그중 하나다. 여기엔 파트너들의 도움이 필수”라며 “과거엔 작품을 구매할 때 직접 작품을 보거나, 경매를 통한 방식이 큰 틀이었는데, 최근엔 10억 달러 이상 고가의 작품도 비대면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즉, 컬렉터에게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크리스티도 이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정윤아 크리스티 시니어 스페셜리스트는 한국 미술시장의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정했다. 그는 “한국 미술시장이 많이 성장했지만, 어떤 한 분야가 인기가 많으면 그쪽으로 몰려가는 경향이 있다”며 “좀 더 여유를 갖고 다양성을 키워 나가야 더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크리스티는 1766년에 설립된 세계적인 미술품 및 럭셔리 제품 경매 회사다. 전문가의 현장경매와 온라인 경매를 비롯해 프라이빗 세일로도 알려진 크리스티는 고객에게 미술 감정, 미술 금융, 국제 부동산, 교육 등 다양한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유럽, 중동,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46개 지사를 두고 있으며, 뉴욕, 런던, 홍콩, 파리, 제네바 등지에서 경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