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2022.09.07 09:03:26
이상한 제목의 기사가 지난 3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실렸다. 한국의 ‘탈탈원전’(탈원전 정책에서 탈피하려는) 정책을 소개하면서, ‘거의 일본의 원전을 보고 왔다’(「ほぼ日本」の原発を見てきた)고 제목은 달아놓았기 때문이었다. 한국 원전을 얘기하면서 왜 ‘거의 일본의 원전’이라고 썼을까.
헷갈리는 제목은 기사를 읽으면 이해가 된다. 기사를 쓴 마이니치신문의 사카구치 히로히코 서울 지국장은 울산에 지어지는 고리 원전과 신고리 원전 현장을 돌아보면서 “일본해(동해) 연안에 지어지는 원전이라면 여기서 사고가 날 경우 바로 일본 서해안에 피해를 주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시작 문장은 이렇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일본해. 해안가에는 돔형의 원자로 건물이 들어서 있다. 대형 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원전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도 엿보인다. 일본 내에 있는 원전 시설이 아니다. 하지만, ‘거의 일본에 있다’라고 파악하고, 좀 더 전부터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즉, 경상도의 원전은 일본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의 원전에 대해 좀 더 일찍, 미리 주의를 기울이고 참견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후회 섞인 발언이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일본이 한국 동해안에 건설되는 원전에 참견해야 한다는 당부이기도 하다.
외국 기자단에게 원전 건설을 홍보
외신 기자단의 고리-신고리 원전 참관은 8월 10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마련한 프레스투어를 통해 이뤄졌다. 울산역까지의 KTX 요금을 기자가 부담하면 중소벤처기업부 조주현 차관의 현지 시찰에 동행한다는 조건이었다. 최근 한국 정부가 외신 기자단에게까지 한국의 ‘탈탈원전’ 정책 대전환을 적극 홍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기자단 시찰 여행이다.
“외신 기자를 (보안이 필요한 원전) 부지 안으로 초청했다는 것은 한국 정부로서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일 게다”라면서 사카구치 지국장은 “직전 문재인 정부 때 백지화했던 경상도 지역의 신한울 원전 3, 4호기 건설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 윤석열 정부의 최근의 분주한 움직임은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의 구령 하나로 국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확 바뀌는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 취재에 참가한 이유를 “투어에 참가한 것은, 고리-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하고, 퍼뜩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한국 굴지의 항만 도시인 부산은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의 거리로 자주 불린다. 부산항에서 나가사키현 대마도로는 고속선으로 1시간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중략) 부산과 후쿠오카 시의 거리도 약 200km로, 일본해 연안의 고리-신고리 원전에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면, 서일본을 중심으로 큰 영향은 면할 수 없다”라고 썼다. 취재 여행에 참가한 동기가 처음부터 ‘일본 입장에서의 걱정’에서였다는 설명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기자에게 한국 정부 측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더욱 안전해진 한국의 원전’이라는 제목의 책자 한 권을 전해줬단다. 책자에는 △고리원전의 방조제 높이가 기존 7.5m에서 10m로 증축됐으며 △신고리원전의 부지는 해수면보다 9.5m가 높아 안전하며 △예비 전원이 침수되거나 장기 정전이 발생하더라도 각 원전에 1대씩 있는 이동형 발전 차량을 통해 전원을 확보할 수 있어 정전으로 원자로 냉각 설비가 멈추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진을 감지하면 원자로가 자동 정지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단다.
"원전이 경제-수출 문제뿐인가?"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카구치는 “정말 대응은 만전인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는다. 울산 원전 방문 일주일 뒤인 8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해 “이념에 근거한 탈원자력 발전 정책을 버림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발전 산업을 부활시켰다”라고 강조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사카구치 기자는 “(원전에 대해) 경제 최우선으로 돌진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면서도 “한편으론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이 없었던 것엔 역시 신경이 쓰였다”고 썼다.
마지막 문장으로 그는 “원전의 해외 수출은 한국의 미래를 열 것인가. 탈탈핵에 사각지대는 없나”라고 의문을 제시하면서, “이웃인 일본 기자로서 눈을 감아야 할 주제라고 느낀다”고 썼다. 물론 이렇게 눈을 감아야 한다는 문장으로 끝나지만, 이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의 원전 맹렬 돌진’에 대한 일본인 입장에서의 걱정을 담고 있다. 한국 정부의 원전 프레스 투어가 이 기자에게는 부정적 기사를 쓰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대참사 이후 나라 경제가 원자력 발전을 거의 완전 중단하는 조치 등으로 전국민이 큰 곤경을 겪었으며, 그 피해는 10년이 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한다면 국토가 훨씬 넘어 후쿠시마 원자력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도인 도쿄에서 다른 지역으로 천도(서울을 옮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었다. 국토가 넓기에 여차하면 천도할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말이다. 반면 국토가 좁은 한국에선 어떤 원자력발전소에서든 사고가 한 번 나기만 하면, 남한 전역이 피해 반경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누구도 피할 도리가 없이 남한 땅 전체와 한국인 전체가 피해 반경 안에 들어간다. 이런 여건인데도 오로지 “경제, 수출”만이 거론되면서 원전 중흥이 외쳐지는 현실은 이웃 나라 기자에게까지 걱정거리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