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는 재치 있는 일상 표현을 통해 평범한 소재에 풍부한 서정과 동화적 해학을 깃들이는 작가, 문형태의 개인전 ‘차커블락(CHOCKABLOCK)’을 오는 18일까지 연다.
문형태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부산, 도쿄, 뉴욕 등 국내외 주요 도시에서 마흔 번이 넘는 개인전을 열며 대중과 꾸준히 소통해왔다.
가나아트와 문형태의 두 번째 협업인 이번 전시는 회화와 조각 및 설치 작업 등 70여 점의 신작을 공개하며 ‘관계’를 주제로 삶에 대한 논의에 집중해 온 작가의 한층 성숙해진 통찰을 담는다.
문형태는 실존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자화상이나 가족, 혹은 연인과의 일상을 묘사한 화면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다. 그는 뒤틀린 인물 묘사나, 과장된 색채 사용, 다양한 요소를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구성하는 표현 방식을 통해 친근한 삶의 모습을 어딘가 낯설게 표현한다.
상상 속에나 존재할 법한 허구의 요소가 그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한다는 점 역시 비슷한 효과를 낸다. “나는 익숙한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를 원한다”고 하는 문형태는 자신의 작업이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기를 희망한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형태의 작업은 언제나 양면이 존재하는 삶을 반영하며, 관람자들이 꾸며진 삶의 일면만 바라보기보다는 진실된 삶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그의 의도를 내포한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천진하게 그려진 풍경에서 행복과 우울, 희망과 불안 등 양가적인 정서가 동시에 느껴지는 이유다.
작업을 통해 삶을 그려내고자 한 문형태의 주제의식은 캔버스에 흙물을 칠하는 독자적인 작업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문형태는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캔버스에 황토물을 바르고 마를 때까지 기다린 뒤 표면의 흙을 털어내고 안료나 크레파스로 도상을 완성한다.
여기서 밑칠을 위해 사용되는 흙은 모두 문형태가 살았거나 머물렀던 장소에서 가져온 것으로, 삶의 흔적을 담아 내기 위한 장치다. 작가에게 있어 흙물을 바르는 작업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행위임과 동시에 작품과의 이별을 맞이하는 일종의 의식과 같다.
“사람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문형태는 자신만의 밑작업을 통해 작품을 작업실 바깥으로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희로애락의 이야기를 작업에 담는다.
이렇게 그동안의 작업에서 삶에 대한 논의를 거듭해온 문형태는 특히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오랫동안 집중해왔다. 문형태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숫자 ‘1, 2, 3, 4, 5’는 각각 ‘나, 관계, 가족, 사회, 고독’을 의미하며,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작업에 힘을 싣는다.
회전목마, 클로버, 무지개, 다이아몬드 등 작품에 낭만적 서사를 더하는 요소들과 나란히 놓인 숫자들은 현실 속 관계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작품의 맥락을 캔버스 바깥으로 확장한다.
문형태가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거쳐온 모든 생각과 감정, 선택은 어느 하나도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그 사람의 자아와 역사를 형성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 문형태의 캔버스는 결국 한 개인의 역사의 일부를 표현한 장면인 것이다. “빼곡한, 꽉 차 있는”이라는 뜻의 이번 전시명은 저마다의 서사로 채워진 각자의 생애를 의미하며,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이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삶 또한 견고히 다져 나갈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기대에서 비롯됐다.
모든 관계의 완성은 ‘나’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하듯, 이번 전시의 구성은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출발한다.
작가의 작업실을 연상시키며 개인적인 서사로 채워진 전시 공간과, 이후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회,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종착점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전시의 흐름은 자기 자신, 나아가 인간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문형태의 여정을 짐작케 한다.
문형태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핀볼-버스 앤 데스(Pinball-Birth and Death)’(2022)를 꼽는다. 게임기의 일종인 핀볼머신을 본 떠 제작한 이 작품은 ‘나’를 상징하는 구슬과 ‘가족’, ‘연인’, ‘이웃’의 모습을 한 핀들로 구성됐다.
게임의 시작지점과 종료지점이 동일한 작품의 구조 안에서 나를 대변하는 구슬이 수많은 핀들, 다시 말해 다양한 사람들을 거쳐오는 과정은 곧 한 사람의 생애를 뜻한다. 이런 구조는 일생 동안 맺어온 관계들이 모여 삶을 완성한다는 전시의 주제를 상기시킨다.
가나아트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문형태의 행보를 따라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