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2호 김예은⁄ 2022.09.21 18:00:23
한국금융사박물관은 우리나라 금융 발전사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1997년에 신한은행에서 설립한 국내 최초 금융사 박물관이다. 왜 하필 신한은행이 한국금융사를 대변하는 박물관을 운영하느냐고 묻는다면, 신한은행의 역사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신한은행은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 설립된 근대 민족계 은행인 한성은행을 그 뿌리로 두고 있다. 1897년 창립된 한성은행이 조흥은행을 거쳐 신한은행에 이르는 동안 화폐, 고문서, 계산도구 등 국내 금융사와 관련된 약 6500여 점의 유물을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다.
‘한국 금융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박물관’을 표방하며 개관 25년 만에 재탄생한 한국금융사박물관. 신한은행은 이곳을 3가지 방식을 통해 생명을 덧입혔다. 고대부터 80년대까지의 금융의 역사가 살아있는 공간을 기자가 직접 체험했다.
하나, 화면을 갖다 대면
기술은 정적인 전시 공간에서 과거의 동적인 인물과 공존하도록 만든다.
전시관 전통 시대 금융 2실에는 디오라마라고 불리는 3차원의 실물 모형이 조선 후기 객주와 여각, 주막을 축소한 형태로 놓여 있다. 정적인 모형인 이 역사적 공간 앞에 하나의 기기가 놓여있다. AR(가상), VR(증강) 기기이다. 관람객이 멈춰있는 객주를 기기로 비추면 화면 속에 조선 후기 시대의 인물들이 나타나 비어있던 3차원의 모형 위를 거닐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현대 가상 증강 기술의 접목과 함께 이 모형안에 되살아난 것이다.
조선 후기는 상공업의 진흥으로 상품교환 경제와 함께 화폐 경제가 발달한 시대이다. 명목 화폐인 동전이 법화로 지정되어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고 객주와 여각, 주전소, 주막 등은 이 시대 금융 생활의 중심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과거 식당 겸 술집으로 생각하는 주막은 쉼터의 역할을 넘어 조선시대 후기 상품 경제의 발달과 금융 거래의 역사적 발달을 이해할 핵심 장소 중 하나로 기능한다. 관람객은 가상 증강 현실 속에서 디오라마 모형안을 거니는 인물과 함께 주막과 주전소의 하루를 체험한다. 그 시대, 그 공간에 있는 인물 간의 거래와 대화를 통해 조선 후기 상업의 번성으로 금융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였는지를 습득하는 것이다.
AR 체험은 크게 객주_어음편과 전명문편/ 주막_보부상편 / 주전소편 4개로 구성되어 관련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다. AR, VR 기술 이외에도 한국금융사박물관은 미디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문자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과거의 금융 생활을 현시대로 옮겨 두었다.
전통 시대 금융 1실에는 고대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화폐 변천을 담은 영상 공간이 펼쳐진다. 관객은 이 공간에서 과거 화폐의 등장과 변천 과정을 일러스트 작화 애니메이션과 자막을 통해 감상한다. 영상은 '화폐의 등장과 변천 과정-고대사회의 물품화폐', '금속화폐의 등장', '고려시대의 화폐', '조선 전기의 화폐' 등 총 4개로 구성된다.
이 영상 앞에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폐 실물이 놓여있는데 고대의 물품화폐인 볍씨와 토기. 베와 금속화폐인 명도전과 반량전, 오수전의 실물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조화폐인 고려시대 건원중보를 비롯해 조선 전기의 조선통보와 전폐도 전시되었다. 관객은 눈 앞에 멈춰 있는 화폐가 살아 움직이는 역사적 시점을 간접 체험하며 그 시절 화폐의 흐름을 화면 속에 살아 움직이는 화폐의 움직임을 통해 이해한다.
근대 금융실에는 최초의 민족은행이자 신한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 은행원의 하루'를 미디어 인터렉티브 터치 월에 녹여냈다. 1800년대 하반기 '독립신문의 한성은행 광고', '조선 후기 꿈의 직업 은행원', '우리나라 최초의 담보대출, 당나귀 대출', '1897년 소안동 한성은행', '한성은행 봉급명세서'가 살아 움직이며 주변에 전시된 유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둘, 캐비닛을 열어라
한국금융사박물관에서는 손을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서랍과 캐비닛 안에 과거 역사적 유물이 곳곳에 담겨 있어 이를 찾는 재미가 있다.
앞서 소개한 '한성은행 은행원의 하루'처럼 과거 은행원의 하루는 미디어 인터렉티브 월로만 만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은행원이 일했던 책상이 전시관 내부에 실물 크기로 재현되었는데, 이것을 그냥 눈으로만 보고 지나쳐선 안 된다. 책상 서랍을 열면 과거 은행에서 사용된 유물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서랍 안에는 과거 한성은행부터 조흥은행으로 변천되는 과정을 대변하는 행표가 전시되어 있다. 역사적 변화와 합병 등의 과정이 불러온 휘장의 변화, 과거 계약서의 모습(합병 계약서 등), 인감장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신한은행의 창립 초창기 창구를 실물 형태로 재현한 공간에서는 은행원 업무와 은행 창구의 모습을 경험한다. 창구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은행원 캐비닛 진열장이 있다. 겉만 보고 그저 과거 캐비닛은 이랬구나 하고 지나쳐선 안 된다. 캐비닛을 열면 그 안에 당시 은행원의 동복과 하복을 복원한 유물과 은행원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1980년대 은행원 복장의 디자인과 색채를 그대로 복원해 새롭게 만든 작품이다. 이를 직접 기획 전시한 김다은 학예사는 “과거의 옷과 동일한 색채를 구현하는 원단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생 끝에 만들어진 복원품이라 모든 복원 유물들이 내 자식처럼 느껴진다”라며 웃었다.
셋, 1980년대 신한은행 직원을 만나다
한국금융사박물관 내에는 80년대 신한은행의 창구가 실제 크기와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그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배경으로 그들의 하루가 펼쳐진다.
요즘은 모바일 금융의 확대로 종이 통장 미발급 상품이 확대되고 신용카드를 통해 마그네틱으로 정보를 전송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카드 결제 시 카드 압인기를 사용하여 볼록하게 튀어나온 카드번호를 전표에 찍어 은행에 제출했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과거 시절의 은행원이 되어 직접 카드 압인기를 이용해 카드 전표를 발급하고 수표 압인기로 수표를 찍어볼 수 있다. 또한 과거에는 은행 영업시간에 맞추어 방문하기 어려운 고객을 대상으로 야간금고와 동전 교환 카트기와 같은 고객을 위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였는데, 야간금고 재현 모형과 동전 교환 카트기 모형을 통해 그 시절의 은행 서비스를 간접 경험할 수 있다.
한국금융사박물관 내에는 국내 최초 무인 자동화 점포였던 신한은행 365 바로바로코너를 실물 크기로 형상화해두었다. 또한 과거 ATM기를 당시의 모형과 기능으로 재현했다. 이 역시 한국금융사박물관의 실물 복원의 노력이 녹여진 학예사의 자식과 같은 작품 중 하나로, 아날로그식 근현대 금융을 체험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박물관 리플렛 통장을 통장 투입구에 직접 넣어 통장을 정리하고 체험용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체험을 한다. 근대와 현대 은행 창구 역시 실물 형태로 재현되어 관람객이 직간접적으로 지폐계수기와 수표검사기 등 금융과 은행 업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대여금고는 은행이나 금융기관에서 임대보증금과 수수료를 받고 고객에게 대여해주는 금고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대여금고를 재현해 실제로 직원이 된 듯 지문을 인식해 대여금고 내부로 들어가 돈을 넣어 맡겨보고 꺼낼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박물관 학예사만 출입할 수 있었던 유물보관소인 수장고에 창을 내어 보이는 수장고를 신설했다. 수장고 내부와 유물의 보관 형태, 다양한 유물을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보이는 수장고 안에는 학예사가 선정한 이달의 소장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밖에도 전시관에는 전란과 식민지 시대를 겪으며 금융사 유물이 어떤 변화를 거치게 되었는지, 경제 자립을 위한 국채보상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등 유물에 담긴 스토리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국채보상운동 관련 유물은 그 의의를 인정받아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1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항일 독립 및 조국 광복 달성을 위한 군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발행한 증권인 독립공채와 애국공채 등 증권 유물은 국가를 복원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금융이 어떤 기능을 했는지, 그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한다. 역사의 변천사와 함께 발전해 온 화폐를 통해, 역사 고증으로 변화되어 온 만원 권 지폐 속 세종대왕 얼굴의 변화도 엿볼 수 있다.
한국금융사박물관 김다은 학예사는 이 공간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문턱이 낮은 박물관, 지루한 곳이 아닌 여러 가지 오감체험과 색다른 경험을 만날 수 있는 박물관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유물과 과거의 금융 유물에 담긴 스토리를 통해 금융의 역사를 일깨우는 한국금융사박물관. 새롭게 단장한 이곳은 단지 눈으로 보는 감상에서 벗어나, 역사적 하루와 순간을 체험하며 금융의 역사를 통해 미래 금융의 역할을 고민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