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22.11.03 13:46:39
갤러리퍼플이 유기체적 속성을 함유한 도시 이미지를 추상 회화로 표현하는 구지윤 작가의 개인전 ‘레이어들(Layers)’을 11월 11일~12월 24일 연다.
작가는 도시라는 장소 안에서 욕망과 기억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풍경을 색채와 선 등 조형 요소들이 뒤엉킨 추상회화로 표현한다. 특히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도시의 공간에서 감각하고 경험한 기억을 시각화해 보여준다.
작가는 대도시에서 살며 마주친 수많은 공사장에서 공간의 스케일, 소음과 먼지 등을 인식하면서 도시라는 모티브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도시가 무너지고 지어지며 변화하는 모습에서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같은 모습을 발견했다는 것.
작가는 시간을 두고 물감을 겹쳐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이 과정 속 물감과 물감은 서로 반응한다.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작업을 진행할 때는 이전에 그린 레이어들이 남겨지기도, 덮이기도 하며 뒤엉킨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작업방식을, 불규칙한 시간을 끄집어낼 수 있는 회화 언어로서 사용한다.
물감을 쌓고, 덮고, 닦아내는 과정을 반복한 영향으로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자연스럽게 회색이나 푸른색의 색채구성이 만들어진다. 작가에 따르면 색을 고를 때는 도시에 대한 단상들의 감각에 무게를 둔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파괴와 생성의 과정을 가진 도시를 닮은 색감과 선으로 표현된 조형 요소들이 화면에 복합적으로 그려진다. 형상으로 포착할 수 없는 시간의 축적을 추상회화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예컨대 잠시 중단한 밤의 공사장 같은 느낌을 주는 ‘새벽’은 무언가를 구축하는 건지, 해체하는 건지 헷갈리는 풍경이 추상적으로 표현돼 눈길을 끈다. 물감을 덮고 다시 닦아내 마르기도 전에 다른 이미지로 쓸려 나가는 방식 속 탄생한 작품이다.
‘불면증’은 작가가 낮 동안 보고 느낀 것보다 더 생생한 이미지와 과장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작가가 잠들지 못하는 동안 상상한 공간들은 익숙하지만, 어두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플라스틱 랜턴으로 이 보이지 않는 공간을 비출 때 둥글게 퍼지는 하얀 빛과 길게 늘어진 까만 그림자는 내일 아침이면 사라질 사소한 불안을 증폭시키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나는 ‘도시’라는 단어에서 하나로 떠오르는 그림이 없다. 대신 청각, 촉각 혹은 어떤 상태가 연상된다”며 “예를 들면, 시작과 끝이 아닌 진행 중인 상태, 지하철역 통로에서 사람과 사람이 부딪힐 때 ‘쾅!’ 하고 둘 사이의 공간이 균열이 가는 소리, 무한 반복해 돌아가는 런닝머신 벨트의 열기, 강변을 따라 걸을 때 올라오는 비릿한 물 냄새 등 한폭의 그림보단 대기 중에 떠다니는 상태로 도시를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갤러리퍼플 측은 “작가는 도시와 건물을 시간이란 큰 구조에 속한 생물학적 유기체와 동일시해, 서울과 근교의 오래돼 색이 바래 부스러지는 건물 들을 의인화한다”며 “그는 끊임없는 파괴와 생성의 과정이 반복되는 잔혹한 도시의 순리 속에서 기억 속에서만 남고 사라질 건물들의 모습에 처연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동일한 화면 속에서 보이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대비, 날카롭고 거친 선과 부드러운 선의 혼재 그리고 밝은 색과 탁한 색이 뒤엉키면서 만들어내는 것들에서 작가 특유의 미적 감흥과 독특한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며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제목이 붙은 각각의 작품을 통해 그가 보이지 않는 대상에서 느낀 감각을 상상해볼 수 있는 추상적인 회화작업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