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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호세 팔라, 신작 ‘브리딩’으로 강한 생명의 숨결을 토해내다

가나아트센터서 12월 4일까지 전시…코로나19 극복하고 작업한 신작들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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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6호 김금영⁄ 2022.11.04 15:44:39

호세 팔라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회복한다 하더라도 마비가 와서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이다.”

의사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가는 다시 캔버스 앞에 당당하게 섰다. 그리고 강렬한 힘이 넘치는 물감의 향연으로 보는 이를 압도했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호세 팔라 작가의 실화다. 그가 신작 ‘브리딩(Breathing)’을 통해 강한 생명의 숨결을 사람들에게 불어넣고 있다.

호세 팔라 작가의 다양한 작업을 아카이브 형태로 설치한 1층 전시장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가나아트센터가 호세 팔라의 한국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을 12월 4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스트리트 아트(거리미술)와 캘리그래피(손 글씨를 이용해 구현하는 시각 예술)의 특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추상회화부터 대형 벽화, 사진, 비디오, 조각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다양한 예술 세계를 아우른다.

10살 때부터 ‘이즈’라는 이름으로 미국 마이애미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작가는, 댄서이자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활동해 왔다. 이 경험은 작가가 선을 자유롭게 휘갈겨 긋거나, 물감을 흘리고 뿌리는 등 즉흥적인 신체적 행위를 자연스럽게 작업에 적용하는 계기가 됐다.

역동적인 물감의 흐름이 인상깊은 호세 팔라 작가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도시는 그의 무대와도 같았다. 작가는 거리의 벽이 동시대의 역사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이를 축적하는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다고 믿었다. 쿠바 이민 2세대인 그는, 대개의 이민자가 그렇듯 자신의 정체성을 DNA에서 찾아야 하는지, 현재 사는 곳에서 찾아야 하는지 혼란을 겪었지만, 수많은 도시를 둘러보고 그곳마다의 삶을 느끼면서 작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대표적인 작업은 캘리그래피다. 작가는 “캘리그래피는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선언문을 쓰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캘리그래피는 내 창조 도구”라며 “다양한 문화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감의 힘이 있다. 그저 느끼면 되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호세 팔라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거리의 벽은 작가에게 끝없이 펼쳐진 캔버스였다. 때로는 벽에 붙어 있는 광고 전단을 모아서 이를 이어붙이는 콜라주로 활용해 도심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스스로의 역할을 도시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것을 미래에 전달하는 것이라 규정했다. 작품을 통해 마치 타임캡슐처럼 현재의 시대상을 포착하는 작업을 이어온 이유다.

예컨대 2001년 9.11테러 사건을 목도한 작가는, 타워에서 뿜어져 나오던 거대한 아치형의 연기와 한동안 대기를 감싸던 재와 같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쌍둥이자리(Gemini)’(2002) 작품에 남겼다. 이에 대해 가나아트 측은 “목탄을 사용해 검게 칠한 화면은 사건 당시의 장면과, 그것이 사람들에게 남긴 상흔을 그대로 시각화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2층 전경. 호세 팔라 작가가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작업한 신작들로 구성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당시 가슴 아픈 사태를 벽화로 남기는 것이 내게 주어진 책임이라 생각했다”는 작가. “우리를 둘러싼 벽은 시간을 상징한다. 제게 캔버스는 추상적으로 해석한 벽이다. 고유의 역사를 지니고 삶이라는 무대를 내비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이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도시를 중심으로 작품에 새겨내 왔다.

이를 비롯해 쿠바 노인들의 사진을 찍고, 이를 중첩해 마치 벽에 노인의 주름이 새겨진 것처럼 보이게 하며 도시의 역사를 은유한 작업,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에 영감을 받아 “더 이상의 벽과 분단은 없어야 한다”는 마음을 담아 작업한 작가의 흔적들이 아카이브 형태로 전시장 1층에 마련됐다.

“누구나 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숨을 내뿜고 있다”

그림뿐 아니라 도시의 벽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조각 작품도 설치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렇게 도시를 성찰하며 지리심리학적 측면을 주로 작업에 담았던 작가에게 올해 들어서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도시를 성찰하고 작업에 반영하는 건 여전하지만, 조금 더 자신의 내면에도 접근하게 된 것.

이번 전시는 2020년 가나아트 나인원에서 있었던 첫 개인전 이후 2년만인데, 이 기간 동안 작가에겐 많은 일이 생긴 영향이다. 전시명이기도 한 신작 ‘브리딩’이 이를 함축한다. 코로나에 걸려 숨 쉬는 방법도 잊어버려 다시 배워야 했던 그다. 이때의 후유증으로 체중이 30kg이나 빠졌고, 지금도 목소리가 많이 갈라져 있다.

전시장 2층 메인 공간에 호세 팔라 작가의 작품이 설치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지난해 2월 백신이 나오기 전 코로나19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야말로 몸이 살아있긴 하지만, 기계에 의존해 겨우 생존만 하던 상태였다고. 작가는 “기도 등 내 몸 다양한 통로에 수많은 튜브가 꽂혀 있었다. 가끔 깨곤 했지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을 못했다. 병원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무의식중에 튜브를 빼내려고 발버둥치다 진정제를 맞아 다시 잠들고 깨고를 몇 달 동안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때 작가는 긴 꿈을 꿨다고 한다. 내용은 마치 영화 같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영국, 홍콩,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의 도시를 다니며 작업해 왔다. 이때의 경험이 꿈에도 반영됐다. 현실은 병원 침실에 누워있지만, 그는 ‘아, 내가 비행기에 타고 어떤 나라를 가고 있구나’, ‘지금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호세 팔라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꿈에서 나는 형과 함께 쿠바 호텔에 있다가, 마이애미, 홍콩 등을 거쳤는데 마피아에 납치당했다. 다행히 서울에서 아는 작가가 형과 나를 탈출시켜줬는데, 일본을 가자 쓰나미가 일어났고, 장소는 호주로 옮겨져 나는 큰 벽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뉴욕으로 이동했다”며 “무의식 속에서도 나는 여러 도시를 누비고 있었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개꿈이라고 지나칠 법도 하지만, 작가는 이 꿈조차 작업과 연결시켰다. 그는 “꿈 속 나는 여러 위험한 상황을 마주했는데, 그때마다 살아남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나는 코로나19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면서도 숨을 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건 내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라며 “이 세상의 누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숨을 쉬고 있다. 일맥상통하는 이 이야기를 새 작업들에 담았다”고 말했다.

작품에 '숨(Breathing)'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사진=김금영 기자

병원에서 깨어나 힘든 재활기간을 극복한 작가는 이 경험을 토대로 신작에 돌입했고, 그 결과물들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죽음을 딛고 다시 일어나 더욱 강인한 생명에의 의지를 보다 심도 있는 색과 선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디트로이트의 라이브러리 스트리트 컬렉티브,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에 이어 가나아트센터에 왔다.

호세 팔라 작가는 힘찬 들숨과 날숨을 하나의 에너지로 작업에 표현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림을 바라보면 아래쪽 한구석엔 죽음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깊은 어둠이 깔려 있다. 하지만 화면 중앙으로 갈수록 이 어둠은 찬란한 햇빛 같은 노랑, 강렬한 빨강, 평온함을 주는 파랑 등 다채로운 색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색들이 캔버스에 이뤄내는 교향곡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 같기도 하다. 이 색들은 작가가 하나하나 조합해서 만든 결과물이다. 깊은 들숨과 날숨을 내쉬듯 강렬한 호흡이 작품 면면에 담겼다.

작가는 “숨 쉴 때 공기가 우리의 몸을 여행하며 결국 우리에게 생명의 힘을 불어넣어준다”며 “코로나19로 우리는 많은 상실을 경험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숨을 쉰다는 것의 위대함과 기쁨, 희망과 위로의 에너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야외에 호세 팔라 작가의 조각 작품이 설치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래피티(벽 등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가 가득 그려진 마이애미, 또는 뉴욕의 벽을 잘라서 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겨온 듯한 착각을 주는 조각도 전시장 그리고 야외 공간을 채웠다. 우둘투둘한 질감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작품 속 작가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되뇌는 주문을 적어놓기도 했다. ‘남은 숨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여기에 작가는 몸소 작품으로 답하고 있다. “나는 계속 작업한다”, 그리고 “살아있다”고.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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