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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달항아리’ 그리는 강익중 작가 “난 하늘과 땅 잇는 안테나”

갤러리현대서 12년 만에 국내 개인전 ‘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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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6호 김금영⁄ 2022.11.08 11:14:19

강익중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갤러리현대에 둥근 달이 떴다.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마치 밝은 달덩어리처럼 보이는 달항아리부터 다채로운 색의 흔적을 남긴 달 무지개, 다양한 알파벳이 모여 벽면을 채워 하나의 거대한 달처럼 보이는 작품까지, 표현 방식은 다양하지만 ‘연결’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모였다.

갤러리현대와 두가헌에서 12월 11일까지 열리는 ‘달이 뜬다’전은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해 온 작가가 12년 만에 선보이는 국내 개인전이다. 그는 오랜 세월 ‘남과 북’,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 등 다양한 존재들 간의 연결이 낳는 조화와 융합, 풍요의 메시지에 천착해 왔다.

'달'과 '달항아리'를 테마로 한 작품들이 설치된 전시장 1층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주위를 둘러보면 작은 것들이 모여 큰 이야기를 이루고,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된다. 우리는 다른 존재와의 연결이 필수적이고, 예술은 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기에 지금 사는 이 세상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아래로는 땅을 보면서 그 사이를 연결하는 안테나 역할을 작가로서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를 알린 달항아리가 만들어지는 작업 방식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고, 이를 하나로 이어야 온전한 달항아리 하나가 완성된다.

'달이 뜬다' 연작에서 앞, 뒤, 옆으로 이어지는 화면을 향해 시선을 따라가며 달 무지개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2004년 일산 호수공원에서 거대한 구형 구조물을 설치하다 일부가 손상돼 형상이 기울어졌는데, 그때 달항아리가 문득 떠올랐다”며 “아랫부분과 윗부분을 합쳐 손으로 잇고, 가마에서 하나의 몸체로 완성되는 달항아리는 연결과 소통, 조화의 의미를 내포하며 균형을 이루는 존재”라고 말했다.

1층 전시장과 두가헌 갤러리의 테마는 이 달과 달항아리가 주요 테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연작 ‘달이 뜬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지러지는 달과, 달에서 반사된 태양 빛에 의해 달 주변부에 나타나는 형형색색의 달 무지개를 떠올리며 완성한 작품이다.

2층 전시장은 '산'과 '자연'이 테마다. 인간과 자연이 연결될 때 화합을 중요시하는 작가의 생각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각각의 화면을 따로 보면 ‘이게 뭔가’ 싶다가도 앞, 뒤, 옆으로 이어지는 화면을 향해 시선을 따라가며 달 무지개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즉, 이 작품은 모두 ‘연결’돼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셈이다.

작가는 “한순간 정지된 모습이 아니라 0.0001초의 전후가 함께 보이는 느낌을 좋아한다. 코로나19 사태 때 제대로 숨도 못 쉬고 고생할 때 홀로 마당에 나와 가슴을 치며 하늘을 바라봤는데 달 무지개가 떡하니 나타나더라”며 “그 순간을 사진으로 찍으려 했는데, 그 느낌이 담기지 않았다. 중요한 시간을 그저 바라보고 느끼면 되는데 굳이 한 순간에 담으려 한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며 그 시간과 오롯이 연결되고자 한 심정을 작업으로 승화시킨 과정을 설명했다.

약 4.5m의 높이 '산' 연작에 대해 강익중 작가가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2층 전시장은 ‘산’과 ‘자연’이 테마다. 인간과 자연이 연결될 때 화합을 중요시하는 작가의 생각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됐다. 전시장에 수평으로 나란히 걸린 30여 점의 드로잉 연작 ‘달이 뜬다’는 전통 산수화를 작가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신작이다.

작가는 “동양화는 화면의 여백과 획의 비중을 6대 4로 채우는 게 기본 원리다. 이건 우리의 삶과도 연결된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내가 좀 더 내어준다는 마음으로 내가 3이 되면 자연이 7, 내가 2가 되면 자연이 8이 된다고 여기면 되는데, 굳이 자연과 5대 5로 비기거나 이기려고 했다”며 “그림을 그릴 때 4만 그리고 6은 자연스럽게 맡겨두자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 부여받는 작품들

2층 전시장 구석에 놓인 '우리는 한 식구'와 지하 전시장은 평화를 꿈꾸는 작가의 마음과 연결된다. 사진=김금영 기자

산은 그림뿐 아니라 약 4.5m의 높이 ‘산’ 설치 작업으로도 표현됐다. 높이가 다른 작은 나무 조각에 아크릴 물감으로 산의 곡선을 그리고, 48x48cm 화면에 높이를 다르게 모아 붙였다. 그리고 이 표면을 불로 태우거나 그을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듯한 산세를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완성시켰다. 이처럼 각각의 산이 표현된 그림과 설치 작업은 각 공간에서 연결되며 하나된 자연의 거대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2층 전시장 구석에 놓인 ‘우리는 한 식구’와 지하 전시장은 평화를 꿈꾸는 작가의 마음과 연결된다. ‘우리는 한 식구’는 낡은 밥그릇 500개를 뒤집어 산처럼 쌓고, 그 사이로 DMZ(비무장지대) 지역에서 녹취한 새 소리가 흘러나와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설치 작품이다.

지하 전시장 설치된 '내가 아는 것' 연작.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이 밥그릇들은 언젠가 한 식구가 따뜻한 밥을 담아 먹기를 기다리는 상태다. 그릇이 쌓여있지만, 내 눈엔 둥그렇게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우리는 한 식구’에서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존재, 남과 북, 가족과 민족을 뜻한다. 지금은 우리가 한참 밥의 뜸을 들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정답게 같이 나눠 먹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지하 전시장엔 ‘내가 아는 것’ 연작이 설치됐다. 이 또한 각각의 알파벳 하나하나엔 의미가 없지만, 좌우 그리고 위아래 있는 알파벳과 연결될 때 뜻을 가진 단어로 탄생한다. 곳곳에 ‘베스트(BEST)’. ‘베리 굿(VERY GOOD)’, ‘러브(LOVE)’, ‘피플(PEOPLE)’ 등의 단어가 눈에 띄었다. 또, “좋은 말을 하면 입이 예뻐진다”, “정말 필요한 것은 없다”, “보살핌과 포옹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등의 뜻을 지닌 문장이 사각 패널에 모여 군집을 이뤘다.

'내가 아는 것' 연작은 각각의 알파벳 하나하나엔 의미가 없지만, 좌우 그리고 위아래 있는 알파벳과 연결될 때 뜻을 가진 단어로 탄생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알파벳 하나하나가 모여 단어를 만들고 뜻을 이루는 문장이 되는 이 작업은,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우리가 모여 세계를 이루는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핵심 요소인 ‘연결성’을 함축한다.

작가는 이 연작을 확장해 전 세계 어린이를 참여시키는 다수의 공공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순천 시민 6만 5000여 명과 함께 만든 ‘현충정원’(2018), 6·25 전쟁 70주년을 기념해 23개국 어린이 1만 2000여 명의 그림을 모아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광화문 아리랑’(2020) 등이 있다.

전시장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가가 선보였던 전시나 공공 프로젝트의 스케치와 미공개 아카이브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가가 선보였던 전시나 공공 프로젝트의 스케치와 미공개 아카이브를 확인할 수 있다. 남과 북을 잇는 임진강 ‘꿈의 다리’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다. 이는 작가의 염원이기도 하다.

작가는 “남북한 어린이와 실향민의 그림을 모아 꿈의 다리를 연결하고 싶다. 오늘의 시간이 내일로 연결되고, 또 내일은 10년 뒤, 20년 뒤로 연결되듯 미래에 완성된 다리를 같이 걷는 꿈을 꾼다”며 “남북뿐 아니라 세계 곳곳 상처가 가득한 곳에 꿈의 다리가 생겨 끊어지고 헤어진 것을 이어 상처를 치유하기를 바란다. 작업하는 사람으로 내가 할 일은 바로 잇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강익중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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