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0호 김금영⁄ 2023.01.10 15:22:13
‘경매계의 큰 손’, ‘수집왕’. 모두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의 별명이다. 30여 년 동안 희귀품을 수집해 온 것으로 알려진 박 회장의 컬렉션은 고고학자들도 구하기 어렵다는 조선시대 영·정조 전시품을 비롯해 팝스타, 스포츠 스타의 소장품까지 아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어렵게 구한 물건들을 애슐리, 켄싱턴·렉싱턴 호텔 등 이랜드그룹 각 계열사 매장 및 영업 현장에 전시해 왔다. 2015년엔 이랜드그룹의 첫 박물관 ‘이랜드뮤지엄’을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켄싱턴 리조트 제주 한림점 내에 개관했을 정도로 예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왔다.
이번엔 이랜드뮤지엄의 소장품 50만 점 중에서 세계적인 스타와 유명인사의 신발과 가방 등 패션 소장품 200여 점을 전시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과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랜드뮤지엄은 세종문화회관과 손잡고 ‘셀럽이 사랑한 백&슈즈’전을 연다.
전시 개막날 현장을 찾은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오랜 시간 세종문화회관 전시팀과 이랜드가 힘을 합쳐 전시를 꾸렸다”며 “컬렉션 하나하나엔 나름의 에피소드와 특별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작품들을 함께 볼 수 있는 지금 이 시간도 우리에겐 매우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윤성대 이랜드파크·이랜드리테일 대표이사는 “이랜드뮤지엄의 소장품은 그 희귀성과 가치로 해외 유수 박물관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소장품들을 정작 국내엔 어떻게 선보여야할지 고민했는데, 세종문화회관과 뜻이 맞아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전시를 준비한 계기를 밝혔다.
이어 “이번 전시는 이랜드뮤지엄의 수많은 소장품 중 패션 소장품을 대규모로 공개하는 첫 자리로 의미 있다”며 “특히 할리우드, 스포츠 스타를 비롯해 해외 유명 인사의 패션은 단지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당대 사회문화현상을 나타내는 귀중한 상징물이다. 개성강한 패션 소장품을 통해 이랜드뮤지엄의 역사적 가치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 특별 도슨트로는 국내 1호 패션 큐레이터로 알려진 김홍기가 참여한다. 그는 과거 롯데백화점이 바비인형 제작사 마텔과 함께 마련한 ‘바비, 디 아이콘’전, 롯데백화점 전국 11개 갤러리가 ‘예술과 패션’을 주제로 한 아트 프로젝트 ‘LAAP(Lotte Annual Art Project): 경계없는 옷장’ 전시 기획에도 참여한 바 있다.
김 큐레이터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 패션 뮤지엄을 세워야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특히 단순히 소장품을 보관하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해외 유수 박물관과 맞교환이 이뤄져야 보다 가치 있는 컬렉션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랜드뮤지엄이 이런 조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작은 아씨들’ 관련 자료가 필요할 때, 또, 야수파 디자이너 전시 옷 자료가 필요할 때 이랜드뮤지엄 측에 문의했더니 모두 소장하고 있더라. 컬렉션의 범위가 방대하다”며 “이번 전시에서도 희귀성이 높고 역사적 가치도 높은 패션 소장품을 대거 내놓았다. 그만큼 뜻 깊고 소중한 자리”라고 말했다.
이랜드뮤지엄 패션 소장품 대규모로 공개하는 첫자리
전시는 크게 8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전시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리더스’는 마가렛 대처와 교황의 가방과 신발을 소개한다. 특히 마가렛 대처가 재임 시절 애용했던 로얄 블루 컬러의 실크 플로럴 드레스와 새틴 햇(모자)이 눈길을 끈다.
김 큐레이터는 “세계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단순히 패션을 화려하게 접근하지 않고, 입고 신는 모든 것을 통해 정치,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왔다.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세계의 영부인이 공식 행사에 무엇을 입고 나왔는지 자체가 이슈가 되고 파급력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영국 최초의 여성총리 마가렛 대처가 좋아했던 로얄 블루 컬러는 영국 보수당의 부흥을 상징하는 색이 됐다. 또, 마가렛 대처가 들고다닌 핸드백은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는 뜻의 신조어 ‘핸드배깅(Handbagging)’을 만들어내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며 “이처럼 마가렛 대처를 강력한 여성 리더로 만들어준 핸드백, 드레스, 구두, 의복 등 패션 아이템을 통해 리더의 철학과 신념을 소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역사적 유행어’는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물로서 패션 아이템에 접근한다. 김 큐레이터는 “패션은 당시대의 사회상과 맞물려 발전, 진화해 왔다. 예컨대 과거 스포츠가 여성에게는 잘 열려있지 않았지만, 이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이에 맞춰 활동성을 높인 갈라진 디자인의 구두 등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또, 전쟁 때는 내구성 좋은 디자인이 유행했다. 이처럼 패션은 단순히 아름다움에 치우치지 않고 필요성과 맞물리며 역사를 쌓아왔다”고 말했다.
‘영화 속 신 스틸러’에는 대중에 익숙한 스타들의 아이템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는 하나의 패션 소품이지만 주인공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 패션 소품들을 소개한다.
하늘을 나는 우산과 모든 것이 마술처럼 튀어나오는 가방을 소재고 한 ‘메리 포핀스’,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진 의사 이야기 ‘닥터 두리틀’에 실제 등장했던 왕진가방, ‘포레스트 검프’에서 배우가 달리기 때 신었던 나이키 운동화, ‘드림걸스’ 등 영화 속 모티브가 된 패션 소품과 배우들의 사인이 들어간 포스터가 전시된다.
흑백 무성영화에서 시작해 영화가 대중에게 전파되는 데 기념비적인 역할을 한 두 배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찰리 채플린’에 소개된다. 서민의 암울한 상황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에 주로 출연한 찰리 채플린의 소품이 소박한 반면, 명작·명품 수집가로도 알려졌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소품은 화려함으로 중무장해 상반되는 분위기가 눈길을 끈다.
특히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찰리 채플린의 대나무 지팡이는 영국 전시 때 이랜드뮤지엄이 대여해 준 이력이 있다. 찰리 채플린의 또 다른 상징이기도 한 페도라로 구성된 포토존도 마련됐다.
김 큐레이터는 “스타가 무엇을 착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은 움직인다. 스타가 걸치는 것이 바로 명품이 되고, 트렌드를 이끈다. 이처럼 대중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스타의 영향력은 패션계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 끈끈한 관계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스타에 이어 스포츠 스타 ‘마이클 조던’의 섹션이 이어진다. 마이클 조던이 마지막 시즌에 실제로 착용한 농구화와 저지를 실물로 볼 수 있다. 스포츠 스타의 패션 소품은 경매시장에서도 초유의 관심사다.
지난해 10월 세계적 경매사 소더비는 마이클 조던이 1984~85년 착용했던 운동화를 147만 2000달러에 판매하며 경기에서 착용하는 신발 경매 기록을 세웠다. 이는 경쟁 회사인 크리스티가 주최한 경매에서 2020년 8월에 61만 5000달러에 판매된 조던스의 기록을 깨는 천문학적인 가격이었다. 그만큼 전시는 가치가 높은 소장품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무대 위 신 스틸러’에서는 1980년대 어쿠스틱 선율에 반전과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담았던 가수 밥 딜런과 재즈 뮤지션인 레이 찰스부터 레이디 가가, 핑크 플로이드,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21세기 대표 팝스타까지 다양한 뮤지션의 패션 소품들을 볼 수 있다. 이 공간엔 추억의 음악까지 함께 흘러나온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특별관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1983년 3월 25일 레코드사 모타운 25주년을 기념하는 ‘빌리진’ 공연에서 착용한 최초의 문워크 무대 블랙시퀸스 자켓, 문워커 로퍼, 페도라를 비롯해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며 주문했던 소파도 전시한다.
전시의 마지막은 ‘더 라스트’가 장식한다. 라스트는 신발제작에서 나무로 사람의 발 모양을 모방해 만든 틀을 뜻한다. 라스트는 구두 제작 단계에서 발을 대신해 납작한 갑피 가죽의 형태를 잡을 때 사용하는데, ‘구두의 심장’이라 불릴 만큼 신발 형태와 착화감을 결정하기에 모든 신발 디자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전시는 캐서린 햅번, 비욘세, 마돈나, 자넷 잭슨 등 스타의 슈 라스트와 실착 부츠 및 구두를 공개한다. 국내 구두 장인의 기술로 복원한 스타의 독특한 신발 제작과정도 현장에서 만날 수 있다.
김 큐레이터는 “새해를 맞은 시점에 마련된 이 전시가 새로운 전시 문법으로 패션계에서도 예술계에서도 마중물이 되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독특하고 새롭다. 단순한 가방, 신발이 아닌 여러 시대 문화상을 반영한 존재물로서의 존재감이 묵직하면서도 친근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신발, 가방인 것 같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쉽게 접할 수 없기에 더욱 이번 기회가 특별하다. 전시는 세종미술관 1, 2관에서 3월 25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