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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프로방스에서 온 댄디보이’ 다비드 자맹, 한국 관람객을 만나다

더현대 서울서 두 번째 국내 개인전…신작 100여 점 및 한국 스타 그린 작품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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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4호 김금영⁄ 2023.03.16 11:57:23

다비드 자맹의 전시가 열리는 전시장 입구. 사진=김금영 기자

고요한 전시장. 거기엔 평화로움과 따뜻함,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광장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부터, 넥타이를 맨 채 강아지와 즐거운 산책을 나선 남자, 아름다운 몸짓으로 화면을 채운 인물, 사람들에게 익숙한 명화와 유명인사의 재해석까지. 전시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다양했지만, 일관된 건 작품에 담긴 작가의 따뜻한 ‘애정’이었다.

‘현대미술계의 감성술사’로 불리는 다비드 자맹의 개인전 ‘프로방스에서 온 댄디보이’가 더현대서울 알트원에서 4월 27일까지 열린다. 앞서 2021년 다비드는 예술의전당에서 ‘내면 세계로의 여행’전을 통해 한국 관객들과 만난 바 있는데, 이번엔 두 번째 만남이 마련됐다.

프랑스 프로방스 태양과 올리브 나무, 시장의 풍경, 광장의 분수까지 그림들엔 따뜻함이 가득하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다비드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하기보다는 지난해 제작한 신작 100여 점, 그리고 2021년 전시 인기작 일부를 재구성해 2020년대 다비드가 현재 어떤 작품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는지 주목하는 방식을 취했다.

다비드는 전시명처럼 1970년 11월 24일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님므에서 태어났다. 프로방스 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0살 무렵 런던과 근처의 프랑스 북부 지방 칼레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했다. 1996년 아트월드 갤러리와 작업을 시작한 뒤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과 미국 뉴욕, 캐나다 몬트리올 등에서 전시를 열었지만, 그의 마음속엔 늘 태어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들 속 힘차게 달리기를 하거나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의 움직임이 돋보인다. 사진=김금영 기자

결국 마흔셋에 프로방스 부근의 위제스에 정착하고,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현재도 갤러리 겸 작업실로 쓰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삶의 안정을 되찾은 그는, 이를 르네상스(다시 태어남)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그가 고향에서 느낀 행복이 전시장의 첫 번째 여정 ‘프로방스의 작업실’에 여실히 드러난다.

프로방스 태양과 올리브 나무, 시장의 풍경, 광장의 분수까지 이 섹션에 전시된 그림들엔 따뜻함이 가득하다. 또 눈에 띄는 건 움직임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들 속 힘차게 달리기를 하거나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의 움직임이 돋보인다. 이는 다비다의 초기작부터 이어져 온 특징으로, 근작인 ‘군중의 행렬’에서는 움직임이 더 다채로워진 걸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의 움직임이 동시에 펼쳐지는 그림은 마치 살아 움직이듯 생명력을 내뿜는다.

평화로움과 역동적인 움직임이 공존하는 화면

두 번째 섹션 ‘자유로운 멋쟁이’에서는 춤을 추거나 때로는 책을 읽고, 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인물이 눈에 띈다. 사진=김금영 기자

역동적인 움직임은 두 번째 섹션 ‘자유로운 멋쟁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춤을 추거나 때로는 책을 읽고, 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인물이 눈에 띄는데, 바로 다비드의 분신이자 그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캐릭터 ‘댄디’다.

댄디는 한국어로 ‘맵시꾼’, ‘멋쟁이’ 등으로 해석되는데, 19세기 영국 사회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신흥 부르주아 세력에 대한 반발심을 가진 젊은 층들로 구성된 이들은 물질 만능을 추구하고, 예술을 경외시하는 부르주아 계급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예술 애호가임을 자부했다.

댄디는 한국어로 ‘맵시꾼’, ‘멋쟁이’ 등으로 해석되는데, 19세기 영국 사회에 처음 등장했다. 다비드 자맹은 댄디들을 현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이른바 ‘2020년대 댄디’를 탄생시켰다. 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이들은 흰 셔츠과 꽉 붙는 옷차림을 고수하며 스스로 고립된 상태에 들어가는 동시에 세상에 무관심한 태도를 풍겼다. 프랑스에선 댄디들을 ‘넥타이밖에 맬 줄 모르는 멍청이’로 부르기도 했으나, 시인 보들레르가 이들을 문학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점차 젊은 층에겐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댄디의 자유로운 영혼에 다비드는 깊은 감명과 동질감을 느꼈던 듯하다. 그는 댄디들을 현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이른바 ‘2020년대 댄디’를 탄생시켰는데, 스스로 “나의 영혼과 가장 닮은 모습으로 댄디들을 재해석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그림 속 댄디는 원하는 것에 충실하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모양새다. 작품명 또한 ‘자유’, ‘살다’, ‘환희’ 등으로, 작게 시작된 댄디들의 움직임은 점차 자신이 마주하고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발아래 무대로 두며 온전한 해방을 이뤄간다. 말 그대로 자유로운 멋쟁이다.

내면의 감정이 화면 위에서 꽃피는 ‘내면자화상’

세 번째 섹션 ‘너와 나의 소우주’는 다비드의 내면을 보다 깊게 파고든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어지는 세 번째 섹션 ‘너와 나의 소우주’는 다비드의 내면을 보다 깊게 파고든다. 사람들은 흔히 자화상에서 자신의 외면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다비드의 시선은 달랐다. 그는 내면성찰과 자화상을 합친 ‘내면자화상’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이 시리즈는 다비드를 국제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다비드는 다양한 인물의 내면을 모두 개개인의 소우주로 바라보면서, 각자가 지닌 고유의 감정과 개성을 담는 데 집중했다. 내면자화상 속 인물은 특정 인물을 모델로 하지 않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턱 아래의 점은 아내 세브린의 점을 형상화한 것이다. 화면엔 인물이 홀로, 또는 둘이 등장해 얼굴을 맞대고 있기도 한데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해 보여준다.

검은 화면 뒤로 돌아가면, 새하얀 벽과 화면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반전된다. 꼭 사람의 양가감정이 드러난 듯한 구성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 섹션을 처음으로 마주할 땐 검은빛이 가득한 공간 속 화려한 노란색, 파란색, 붉은색이 마치 불타오르듯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내면자화상의 화려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를 위한 다비드의 첫 시도다. 일반 내면자화상과 달리 캔버스를 검게 칠하고, 이와 대조되는 붉은 색들로 인물의 얼굴을 칠했다. 반면 이 검은 화면 뒤로 돌아가면, 새하얀 벽과 화면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반전된다. 꼭 사람의 양가감정이 드러난 듯한 구성이다.

네 번째 섹션 ‘경의를 바치며’엔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한다. 다비드가 피카소, 모네, 반 고흐 등 선배 예술가들에게 받은 영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관습에 굴하지 않는 선구자들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도전 정신을 이어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네 번째 섹션 ‘경의를 바치며’엔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한다. 다비드 자맹이 피카소, 모네, 반 고흐 등 선배 예술가들에게 받은 영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반 고흐는 다비드가 가장 존경하는 화가로, 힘이 넘치는 붓 터치와 강렬한 색감은 다비드의 작품에도 강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번 전시에서 다비드는 고흐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시기에 그린 그림들을 재해석했다.

 

반 고흐의 프로방스 시절의 그림들도 연작으로 만나볼 수 있는데, 다비드가 같은 주제의 그림을 자신만의 색으로 해석한 그림들을 통해 반 고흐와 다비드 자맹이 교감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다비드 자맹은 고흐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시기에 그린 그림들을 재해석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림 위 빛나는 한국 스타들

김연아부터 손흥민, 김연경, 박찬욱, 윤여정까지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한국의 별들이 작품으로 탄생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다섯 번째 섹션은 이번 전시만을 위해 제작된 ‘한국의 별’이 자리한다. 다비드는 ‘더 그레이티스트(The Greates)’ 시리즈의 일환으로 메시, 펠레, 마라도나, 지단, 타이거 우즈 등 세계의 유명 스포츠 스타들을 연작으로 그려내 왔다. 이번엔 한국의 스타가 주인공이다. 초상권 협의를 통해 김연아부터 손흥민, 김연경, 박찬욱, 윤여정까지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한국의 별들이 작품으로 탄생했다.

최근 그림의 주인공인 피겨퀸 김연아가 직접 전시장을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연아는 자신을 꼭 닮은 그림 옆에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자맹은 김연아에게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이었던 ‘007 메들리’부터, 2013년 세계올림픽 선수권 금메달을 획득했던 쇼트 프로그램 ‘뱀파이어의 키스’, 롱 프로그램 ‘레미제라블’, 2014년 소치 올림픽 쇼트 프로그램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및 2009년 페스타 온 아이스 아이스쇼에서 스위스 출신의 남자싱글 스테판 랑비엘과 페어로 선보였던 ‘오페라의 유령’을 모티프로 한 다섯 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김연아는 다비드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 판매 수익금을 튀르키예 지진 돕기 단체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혀 전시의 의미를 더했다.

전시의 마지막은 ‘내 마음속의 안식처’ 섹션이 마무리한다. 앞선 다양한 여정들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우리 주변을 이루고 있는 삶의 요소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전시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의 마지막은 ‘내 마음속의 안식처’ 섹션이 마무리한다. 앞선 다양한 여정들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우리 주변을 이루고 있는 삶의 요소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전시됐다. 특히 다비드의 아내이자 뮤즈인 세브린과, 그녀를 모티브로 한 연인들의 가장 뜨거운 사랑의 순간들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아이들도 등장한다. 다비드와 세브린 부부 사이 2000~2001년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들이 네다섯 살일 무렵 다비드는 아이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는 다비드의 또 다른 스타일의 그림이 됐다. 그림 속 아이들은 환한 표정으로 풍선을 들거나 놀이를 하고 있다.

다비드 자맹 작가. ⓒDavid Jamin

또, 프로방스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자연으로 연결된다. 프로방스의 풍족한 태양은 다양한 꽃을 키우는 토양이 되는데, 봄엔 아몬드 나무의 흰 꽃, 노란 미모사 등을 꽃피우고, 여름엔 해바라기, 라벤더 밭이 싱그러운 매력을 뽐낸다. 꽃이 가득한 그림들은 아직 아침바람이 찬 지금, 마치 관람객이 프랑스 남부지방의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다비드는 자신의 인생과 작업의 세 가지 키워드로 ‘자유’, ‘온정’, ‘삶에 대한 사랑’을 꼽았다. 이번 전시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다비드의 따뜻한 시선, 그리고 손길을 통해 탄생한 작품들에서 세 가지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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