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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상 칼럼] 정치판·검찰 뒤흔든 ‘고관집 절도 사건’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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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0호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2023.06.30 09:59:34

(문화경제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수사관들로 하여금 당시 현장의 상태를 그대로 잘 보존하고 사진을 촬영토록 하였고, 타다 남은 봉투를 수거하여 봉투에 적혀진 글자를 찾아낼 수 있도록 대검찰청에 감식 의뢰를 하도록 조치하였고 그 후 대검에서 감식 결과가 회신되었는데, 타다 남은 돈 봉투의 겉면에서 ‘激勵(격려)’라고 인쇄된 글자가 어렴풋이 보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짐작하기로 주범 K가 자신의 집에 대해서 압수수색을 할 듯이 하자 자신이 숨겨두었던 돈 봉투를 압수당하면 자신의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동거녀 김 씨에게 면회 때 돈 봉투를 불태워 없애버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만약 돈 봉투 겉면에 돈을 준 회사대표들과 세무서장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면 결코 이를 불태워 없애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현장에서 수거한 타다남은 돈 봉투 겉면에서 ‘激勵’라고 인쇄된 글자가 어렴풋이나마 감식되었기에 더 이상 주범 K의 진술을 믿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봉투가 불에 타서 잿더미만 남은 상태라서 재만 남은 봉투에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지 알 수 없고,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주범 K가 어려운 한자인 ‘激勵’라는 글자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 주범 K는 학력에 비해 머리가 비상하고 어릴 때부터 나쁜 길이지만 사회 경험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激勵’라는 한자를 읽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는데 그 증거로는 그 무렵 한나라당 소속 변호사들이 주범 K를 구치소에서 접견할 때 대화한 녹취록을 보면 주범 K가 그 정도의 한자는 읽을 수 있다고 말한 부분이 나옵니다.

농림부 장관 집 절도 범행 수사

주범 K의 주장이 거짓임이 온 세상에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은 김00 당시 농림부 장관의 집에서 6억 원짜리 운보가 그린 수묵산수화 1점과 남농이 그린 3억 원짜리 동양화 1점을 훔쳤다는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입니다.

주범 K는 당시 그 무렵 모 월간 잡지에 실린 김 장관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김 장관의 집을 털기 위하여 며칠 동안 김 장관의 집 아파트 근처에서 동태를 지켜보았는데 저녁에도 대체로 불이 꺼져 있고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것 같지 않아 빠루를 이용하여 아파트 현관을 부수고 침입하였더니 거실 벽면에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고,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싸서 창가 복도에 세워두었길래 포장을 벗겨보니 운보와 남농의 동양화 등이 드러나서 커터 칼을 이용하여 그림을 도려내어 둥글게 말아 가지고 나왔다고 하면서 당시 며칠 동안 김 장관 집의 동태를 살펴보았기 때문에 김 장관의 집에서 그림을 훔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새벽에 실시한 현장 확인

그러나 주범 K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는데 그가 절취하였다는 김 장관의 집은 서울의 강남세브란스병원 뒤편에 있는 000아파트였는데 이를 지도상으로 확인해 보니 ‘서울 강남구 ××동’에 위치해 있었던 반면에 조서상에 기재된 김 장관의 집은 그 근처에 위치한 ‘△△동’에 있는 같은 이름의 000아파트였습니다.

다시 한번 실제 김 장관의 집 주소를 확인하여 주범 K가 주장하는 조서 상의 절취 장소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후 주범 K에게 절취한 장소가 김 장관의 집이 틀림없는지 다시 확인하였더니 여전히 자신이 김 장관의 집 물건을 절취하기 전에 며칠 동안 그 아파트의 동태를 살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하여 지금 당장 찾아갈 수 있는지 물었더니 지금 당장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교도관들의 양해를 구하여 주범 K가 탄 구치소의 호송차를 앞세워 그가 이끄는 대로 그가 주장하는 김00 장관의 아파트로 출발하였는데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를 막 넘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매일같이 언론과 야당에서 검찰이 수사를 축소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었고 여권에서는 빨리 수사를 마무리하여 여론을 가라앉히라는 압박이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밤 깊은 새벽 시간이었지만 무리해서라도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한시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거의 새벽 2시가 다 되었습니다. 주범 K가 지목하는 아파트 동호수에 이르러 초인종을 눌렀더니 집주인이 놀라 누구냐고 물어 검찰이라고 말하고 일단 출입문을 열어주시면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겠다고 하자 문을 열어주길래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후 혹시 근래에 도둑을 맞은 적이 있는지 확인하니 자신은 이사 온 지가 얼마되지 않았는데 직전에 살던 집주인으로부터 이사를 가기 위해 이삿짐을 싸놓은 상태에서 도둑이 든 적이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급하게 다시 직전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또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자신이 근처로 이사를 갔다고 하면서 현장으로 당장 찾아오겠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직전 집주인이 도착하여 세세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은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주범 K가 김00 장관의 집에서 절취하였다고 주장하는 일시 무렵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하여 짐을 싸놓고 있는 상태에서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어 포장해놓은 짐의 포장을 이것저것 찢어놓았길래 확인해 보니 별 피해가 없는 것 같아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김대중 정권 시절 이른바 ‘고관집 절도 사건’이 야당의 정치 공세와 맞물리면서 큰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1999년 4월 17일 당시의 경향신문 사회 1-2면 지면을 이 사건 관련 기사가 거의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범 K의 기자회견

밤 깊은 시간에 인천에서 서울까지 현장을 확인하러 와서 고생을 하였지만 큰 개가를 올렸습니다. 주범 K가 절취하였다고 주장한 김00 장관의 아파트는 실제 김 장관의 집이 아닌 미용실을 운영하는 다른 사람의 집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6억 원짜리 운보의 수묵산수화나 3억 원짜리 남농의 동양화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습니다. 아마도 주범 K가 근처에 있던 김 장관이 실제 살고 있던 집과 위치를 착각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한 사항들을 주범 K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인천지검에 돌아올 때까지 전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 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그 전날 상황을 보고하였더니 누군가의 아이디어인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당장 기자들에게 연락하여 그날 오후 2시경 주범 K가 주장하는 김00 장관의 집 앞에서 주범 K의 기자회견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알려주고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여 그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여 좋은 아이디어라고 뜻을 모아 즉시 출입기자들에게 연락하여 알리고, 주범 K에게도 승낙을 받고 그날 오후 2시에 그가 김 장관의 아파트라고 지목한 곳 앞에서 그가 절취한 내용에 대해서 기자회견을 하도록 하였는데 당시 모인 기자들의 숫자가 중앙지, 지방지, 방송사 기자 등 약 50명 가까울 정도로 취재 열기가 대단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범 K는 기자들 앞에서 김 장관의 아파트에서 자신이 운보와 남농의 동양화를 훔친 사실은 물론 그 밖에 다른 고관집과 정치인, 사회적 저명인사들의 집에서 금괴와 물방울 다이아몬드 등을 절취하였다느니, 순금으로 만든 변기 뚜껑을 뜯어내려다가 실패하여 변기를 잡고 울었다는 등의 말을 신이 나서 마구 쏟아내었습니다. 그런 후 기자들은 김00 장관의 아파트라고 하는 집의 전, 현 주인들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주범 K의 진술이 너무나 터무니없고 허황된 거짓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부터 방송사의 뉴스에서 보도가 빗발쳤고, 석간 신문, 다음날 조간 신문에서 일제히 주범 K의 기자회견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일개 도적의 세치 혀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사실확인도 없이 진실인 양 폭로해서 단순 절도 사건이 정치 사건으로 비화 변질되는 바람에 사건의 파장이 컸고 언론 또한 사실확인도 없이 경찰과 검찰이 사건을 축소·은폐 수사하는 것으로 맞장구를 치며 보도하는 바람에 온 국민이 조롱을 당한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주범 K의 허풍으로 ‘태산명동 서일필’

그 이후에도 주범 K가 훔친 금괴를 안양 시내의 모 금방에서 처분하였다는 정보를 접하고 그 금은방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본 결과 주범 K가 동거녀 김 씨를 시켜 금은방에 처분한 것은 금괴가 아니라 반 돈짜리, 한 돈짜리 돌 반지 몇 개인 것으로 대장에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1 킬로그램짜리 금괴 여러 개를 절취하였다고 허풍을 떨었으나 확인된 것은 돌 반지 몇 개에 불과하여 그야말로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었습니다.

이처럼 40여 일의 세월이 꿈속처럼 흘러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다, 무슨 일을 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보다 무슨 일이 없었다, 무슨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는 몇 배의 힘이 더 들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무슨 일을 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진술을 하나씩 하나씩 탄핵하여 그 신빙성을 배척해야 하고 이를 모두 배척하더라도 이를 100% 입증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의혹이 남게 됩니다.

이 사건도 100% 피의자들의 진술을 배척할 수 없었지만 피의자들의 진술의 신빙성을 토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학의 가설 중에서도 ‘A = B’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보다 ‘A = B가 아니다’라는 가설을 증명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수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관 집에 운보와 남농의 그림이 없었고, 대통령 경제특보와 전라북도 지사의 서울 관사에 12만 달러가 없었으며, 경찰서장의 관사 김치 냉장고에 뇌물을 받은 800만 원이 든 돈 봉투 20여 장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훔쳤다는 피의자들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다른 진술들을 토대로 그 신빙성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수사였지만 주범 K의 기자회견 후 정치권과 언론의 의심은 물밑으로 모두 가라앉았습니다.
 

주범 K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음을 보도한 KBS TV의 1999년 4월 17일 뉴스 화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

검찰은 정치적 중립이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럼에도 항상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심을 받아 왔습니다. ‘검찰이 정치 권력의 도구로 쓰인다는 데 대한 불신’, ‘검찰권의 행사가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는 의심’, ‘검찰권의 행사에 성역이 존재한다는 의심’, ‘제도적인 견제가 없는 상태에서 재량권을 남용해왔다는 데 대한 불신’ 등이 쌓여 검찰 수사는 그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강하게 받아왔던 것입니다. 게다가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와 정치권의 편향된 시각 등이 보태지면 그에 대한 불신은 더욱 증폭되어 항상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에 대한 경험적 사례도 많습니다. ‘이종기 변호사 비리 사건’과 ‘검찰총장 부인의 옷 로비 의혹 사건’, ‘대검찰청 공안부장의 파업 유도 발언 사건’ 등 검찰 내부의 문제에 대한 검찰의 자체 수사는 국민들로부터 축소·은폐 수사 의심을 벗어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너무 자주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반성한다”는 말을 하여 ‘더 이상 깎을 뼈도 안 남은 검찰’이라는 비아냥과 야유를 받을 정도였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일선 검찰청의 특수부를 중심으로 주도되던 검찰의 부패 통제 수사와 관련하여 항상 제기되는 ‘표적 사정, 하이에나식 사정’, ‘축소·은폐 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이중 잣대의 비판과 ‘정권 초기에는 중수부(현재는 특수부)가 바쁘고 정권 후반기에는 공안부가 바쁘다’, ‘공안 검사들은 국가의 안위보다는 정권의 안위를 더 중시하는 정치 검찰의 대명사다’는 비판 속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역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수사 기밀을 검찰과 집권층이 함께 조율하고 있다는 의심과 ‘표적 사정, 선별 기소’의 의심은 정치적 반대자들에 의해 범죄 혐의를 정치화함으로써 범죄성을 희석시키거나 오히려 자신을 ‘정치적 속죄양’으로 미화시키는 경우까지 나타났습니다. 정치 권력에 대한 불신, 검찰에 대한 불신이 강력한 상황에서 이러한 ‘범죄의 정치화 전략’은 때로는 성공을 거두어 훗날 정치적 재기를 성취하는 사례도 많이 있었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불신을 불식한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정치권은 대검찰청의 중앙수사부 폐지, 특별검사 제도를 도입한 바 있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일가에 대한 수사를 계기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검찰 수사권 축소 등 소위 ‘제도적, 민주적 통제 수단’을 도입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검찰 내부에서도 검찰 조직의 존폐에 대한 위기감을 감지하고 ‘정치적으로 논란이 예상되는 사건에 획기적인 투명성 방안을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슈가 검찰의 탄생 시점부터 수십 년이 지난 오늘 이 순간까지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 대통령 선거 후보자였던 이재명 대표의 성남시장 및 경기도지사 역임 시의 대장동 개발 의혹과 관련된 수사를 비롯한 그 밖의 일련의 수사’ 사례에서 보듯이 계속하여 되풀이되는 것은 그동안 공수처 설치, 경찰의 수사 독립권 인정 등으로 검찰권이 많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사권, 기소권, 영장 청구권이라는 한국의 사회와 정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그 존재 자체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기 어렵다’고 합니다. 따라서 ‘검찰은 수사를 해도 정치적이고, 수사를 안 해도 정치적이다’는 의심을 끊임없이 받아 오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검찰 수사를 받는 정치 세력들의 ‘정치 탄압’이라는 저항에 부딪혀 검찰이 아무리 정치적 중립이라는 구호를 외치더라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지 모를 것입니다.

지금 현 정치 상황은 ‘더불어민주당의 전 대통령 선거 후보자였던 이재명 당 대표의 성남시장 및 경기도지사 역임 시의 대장동 개발 의혹과 관련된 수사를 비롯한 그 밖의 일련의 수사’로 인하여 정부와 여당은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검찰을 앞세워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이에 동조하는 국민적 여론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검찰은 더욱 기본으로 돌아가서 국민의 입장에서 겸허한 자세를 견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국민적 성원만이 검찰을 정치적 중립에 대한 강한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여야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수사’, ‘압수수색의 남발 및 인디언 기우제 식 수사 지양’, ‘수사 착수 시기에 대한 정치적 고려 지양’, ‘정치적 의심을 초래하는 기획 수사 금지’ 등을 통해서 정치적 중립에 의심스런 행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만 검찰이 국민들의 진정한 사랑을 받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망각하면 검찰의 생명은 잠깐 빛날지는 몰라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950년 4월 공산 게릴라가 경무대를 습격하고, 요인을 암살하려 한다는 날조 정보로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을 얻어 사설 수사기관을 만들어 무고한 사람을 체포, 고문해 공산당으로 만든 ‘대한 정치 공작대 사건’이 터지자 ‘기소하지 말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를 외면하고 배후 수사로 확대하고, 경찰이 송치한 좌익분자를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하고, 반민 피의자 노덕술을 숨겨준 김태선 수도경찰청장을 범인 은닉 혐의로 체포하라는 지시를 하여 격노한 이승만 대통령의 인사 조치로 6.25를 불과 3일 앞둔 1950년 6월 22일 검찰총장에서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좌천되었던 ‘제2대 검찰총장 김익진’의 기개를 교훈 삼고, 2003년도에 있었던 ‘대선 자금 수사’에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각광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당시 수사는 여야를 막론하고 균형 있게 수사를 하였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화환과 격려 편지가 쇄도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권의 선의, 검찰총장이나 검사 개개인의 정의감만으론 정치적 중립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검찰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현실적 노력이다”는 일각의 비판을 귀담아듣고 가슴속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무리

통상 인천지검 국정감사는 서울고검 국정감사를 받을 때 함께 받습니다. 그러나 그해(1999년)는 이 사건으로 인천지검 독자적으로 국정감사를 따로 받게 되었고, 필자는 공소유지를 위해 동기생들이 다른 곳으로 전보될 때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무사히 국정감사를 넘겼고, 공소유지도 잘 마무리되어 주범 K는 징역 7년에 보호감호 처분을, 공범 K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공범 K의 출소 후 내방과 감사 인사

공범 K는 필자보다 한 살 많았고 고향이 부산으로 필자와 동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필자가 수원지검에 부장검사로 근무할 때 5년간의 복역을 모두 마치고 고향인 부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하여 내려가는 도중에 필자가 수원에 근무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당시 자신에게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었던 것이 기억이 나서 인사차 들렀다고 하며 찾아왔기에 남은 인생을 잘 지내시라고 덕담을 해 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필자 소개>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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