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수⁄ 2023.09.08 15:39:05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경희궁, 창경궁, 덕수궁 등 조선시대 5대 궁궐이 남아 있다.
그 중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1997년 1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세계 유산위원회에서 수원 화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서을 5대 궁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거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 역할을 했으며,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한국문화재재단은 가을밤 창덕궁의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야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창덕궁 달빛기행' 프로그램은 은은한 달빛아래 녹음이 어우러진 창덕궁에서 전문해설사와 함께 궁궐의 곳곳을 관람하며, 각 전각에 대한 해설과 전통예술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창덕궁 달빛기행'은 9월 7일부터 10월 15일까지 진행된다.
창덕궁 달빛기행 야간관람 코스는 돈화문에 집결 후 금천교, 인정전, 희정당, 낙선재, 상량정, 부용지·부용정, 불로문·애련정, 연경당, 후원숲길로 100분동안 이어진다.
먼저 돈화문은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앞에 넓은 월대를 두어 궁궐 정문의 위엄을 갖추었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원래 돈화문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한다.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9년에 재건됐다.
금천교는 창덕궁의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위에 설치되어 있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며, 궁궐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각상과 아름다운 문양,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 기술 등이 돋보이는 이중 홍예교로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뛰어나다.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혼전으로 쓰이면서,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부용정은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또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경에 창건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문화경제 이윤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