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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MZ세대가 바라본 휘황찬란하고도 고독한 세상

서울대학교미술관, ‘자아 아래 기억, 자아 위 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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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7호 김금영⁄ 2023.10.06 09:49:24

최지원이 그린 인물 형상들은 도자기 인형처럼 빛이 나지만 그 표정과 분위기에서 서늘함이 느껴진다. 사진=김금영 기자

“애매모호하고 위태로우며 불안하고 불확실하면서 이상한 장면들이 아슬아슬하게 나타나는 기묘한 판타지의 세계.”

서울대학교미술관은 전시를 이렇게 함축해 설명했다. 전시의 주인공은 1983~1996년생, 이른바 MZ세대 작가 19명이다. 요즘 어느 분야에서나 외칠 정도로 주목받는 세대다. 이번엔 MZ세대 작가들이 바라본 현시대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그 풍경은 어떨까?

현실인지 꿈인지 기묘한 세계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리는 '자아(自我) 아래 기억, 자아(自我) 위 꿈'전 현장. 사진=김금영 기자

서울대학교미술관이 ‘자아(自我) 아래 기억, 자아(自我) 위 꿈’전을 11월 26일까지 연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드러낸다. 부조리극을 보는 듯 관련 없는 이미지들이 한 화면에서 조우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설명할 수 없는 행동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가 하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간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마디로 예측 불가.

몇몇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연약하고 파편적인 모습을 보인다. 권회찬의 작품엔 얇은 종이를 말아 세운 듯한, 마치 성처럼 보이는 입체 조형물이 등장하는데 뜻밖에도 이 작품의 제목은 ‘자화상’이다. 자유분방한 선들을 다시 정교한 선으로 다듬고 명암을 넣어 견고한 형상으로 탈바꿈시킨 결과물이다. 가상의 공간에 세워진 이 조형물은 매우 튼튼해 보이면서도 찰나에 와르르 부서질 수 있는 연약함을 동시에 지녔다.

최지원과 김진희가 그린 인물 형상들은 각각 도자기 인형, 석고상처럼 매끈하고 빛이 나지만 그 표정과 분위기에서 서늘함이 느껴진다. 이 인물들은 창문 앞에 멍하니 서 있거나 어딘가로 이동하려 몸을 일으키는 등 평범한 일상의 한순간을 보여주지만, 기묘한 분위기로 인해 마치 현실인 듯 가상인 듯 애매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미술관의 거대한 벽을 채운 남진우의 작품은 영웅물 속 등장하는 벽화처럼 보인다. 사진=김금영 기자

손민석이 그린 인물들은 얼굴이 명확하지 않다. 주로 뒷모습 또는 앞을 바라보고 있더라 하더라도 뭉개져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현실의 대상을 그렸음에도 꿈속인 것 같은 기묘한 장면은, 평소엔 그냥 지나쳤을 법한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어 보도록 이끈다.

MZ세대 작가들이 그들이 보고 자란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에서 영향을 받아 이를 작품에 반영한 모습도 눈에 띈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이야기가 더 잘 보이는 김미래의 작품은 SF 영화의 한순간을 포착해 그려놓은 듯하다. 색채 없이 얇은 연필 선으로 이어진 이 형상들은 작가 자신이 경험하거나 본 것, B급 영화 속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미술관의 거대한 벽을 채운 남진우의 작품은 영웅물 속 등장하는 벽화처럼 보인다. 어릴 적 봤던 영웅물 속에선 선을 상징하는 인간 캐릭터와 악을 상징하는 괴물 간의 싸움에서 항상 선이 승리했는데, 작가는 이런 이분법적 상황을 전복시켜 그림 속에서 누가 과연 선이고 악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해 놓았다.

노한솔의 그림에선 '팟칭', '주르륵', '촤아' 등의 글자가 등장하며 일반적으로 전시회 그림에서 도외시되던 글을 마치 만화처럼 앞에 꺼내놓았다. 사진=김금영 기자

노한솔의 그림에선 ‘팟칭’, ‘주르륵’, ‘촤아’ 등의 글자가 등장하며 일반적으로 전시회 그림에서 도외시되던 글을 마치 만화처럼 앞에 꺼내놓았다. 작가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중요하게 배우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연관된 ‘언어’에 관심을 두고 이를 삶의 단상과 연결시켜 짧은 문구로 드러낸다. 이로써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생각해보게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저주받은 이미지’로 유명한 콘텐츠들은 전다화의 손을 통해 회화로 재현됐다. 스마트폰 탄생 이후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이미지를 접하고, 생성하며 이를 서로 공유, 소통하게 됐는데 작가는 본래 저화질에 구도와 초점이 맞지 않았던 원본 사진들을 회화로 재현하며 나름의 대응 방식을 취했다.

허무맹랑한 판타지 소설이나 추리소설, 웹툰 등에서 영감을 얻은 박서연은 추상적인 형상과 구체적인 형태가 교차해 등장하는 이미지를 한 화면에 공존시키면서 현시대에서 느끼는 부조리와 불안, 긴장을 풀어냈다. 이수진은 일상 속 때때로 잠식하는 불안의 감정을 다루기 위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클로즈업해 화면에 묘사했다. 유예림은 구글에서 검색해 얻은 이미지 중 가장 전형적으로 여겨지는 이미지들을 선택한 뒤 이를 재구성해 본래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전시장 3층에 박서연,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권회찬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들이 바라보는 시대의 모습은 환희와 유토피아의 공간이기도, 반대로 불안하고 기괴하며 우울함이 가득한 공간이기도 하다. 기억과 꿈이 공존하며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나드 채의 화면은 미래를 기대하는 현재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특히 ‘관계’에 집중한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불확실성이 대두되지만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에서도 가상의 친구 윌슨을 만들며 생존했듯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가상세계의 커뮤니티를 통해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의 화면에서도 사랑과 즐거운 에너지를 교류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다 오류가 나 창이 여러 개 뜬 화면을 그려놓은 듯한 김해리의 작품은 이발소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출발했다. 어린 시절 흔히 마주했던 이발소 그림들은 작가 개인에게는 현실 도피적 감각을 느끼게 했다. 사람들이 욕망하는 온갖 좋은 것만을 가득 담아 놓은 이발소 그림, 전단지 등 환상적인 이미지는 한없이 아름답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일 것만 같아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다시 보게 한다.

임현정의 화면은 언뜻 보면 동화의 한 장면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섬뜩함이 느껴진다. 화면 속 인물들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일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행하고 있는데, 서로를 경계하는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하다. 이는 작가가 미국에서 거주하던 시절 갑자기 뒤바뀐 환경에서 마주한 혼란스러움을 담은 영향이다. 도시 자체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그 속 면면을 들여다보면 노숙자, 마약 거래를 하는 사람들 등 위험도 공존했다. 이 일상적 풍경에 작가는 상상의 이미지들을 더해 동화와 같은 세계로 현실을 표현했다.

류노아가 그린 공간은 게임 또는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사진=김금영 기자

류노아가 그린 공간은 게임 또는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작업실 옆 건물이 무너지고 새로 지어지는 모습을 본 그는 이를 게임 속 반복되는 장면처럼 느껴 여러 공간과 시간이 한 장소에 공존하는 화면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게임 속 세상처럼 불안하고 스산한 디스토피아적 감성이 화면에 감돌게 됐다.

이밖에 최모민은 자신이 생활하는 주변의 모습을 기괴하고 으스스하게, 때로는 황당하게 화폭에 담아냈고, 전현석은 맥락 없는 이야기들과 원근법이 제거된 풍경, 관련 없는 인물들이 정신없이 펼쳐지고 화면으로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김민조는 목적지 없이 어디론가 떠나는 배, 비행기 등의 모습으로 우리네 인생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존재의 허무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김겨울은 삶의 순간에서 느낀 감정과 인상을 옅은 물감의 레이어들과 가녀린 선으로 드러냈다.

과거와 미래 사이 현재에 우뚝 서다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서울대학교미술관 조나현 학예연구사. 사진=김금영 기자

이처럼 작품 속 현실의 풍경들은 다소 모호하고 불안해 보이며, 마치 꿈과 같이 비현실적이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전시를 기획한 서울대학교미술관 조나현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이들의 작품을 묘사한 평론들에서는 실제로 ‘애매모호’, ‘위태’, ‘불안’, ‘불확실’, ‘이상한 장면’, ‘아슬아슬’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과거엔 이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불확실하고 두서없으며 바뀌지 않는 냉정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좌절, 비판의 관점에서 주로 바라보고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할 수 없는 기묘한 이 환상의 세계를 현실에서 눈을 돌리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닌, 현재 젊은 작가들이 현실에서 자신들이 경험하고 느낀 동시대의 모습으로서 접근했다.

손민석이 그린 인물들은 얼굴이 명확하지 않다. 사진=김금영 기자

조나현 학예연구사는 “M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 시대로, 그들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일상에 살고 있다. 그들이 봤던 수많은 매체에서 이런 콘텐츠와 기술을 다루고, 자연스럽게 그들이 보고 자란 세상은 현실과 가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 유연하게 오가는 현상이 돋보였다”며 “이 경험은 작가들의 화면에도 비현실적, 초현실적 요소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고 말했다.

어떤 현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태도는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본래 전시는 ‘추상’과 ‘구상’이라는 키워드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조나현 학예연구사는 “과거엔 추상은 정신성과 수행의 의미, 구상은 보다 명확한 형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두 분야의 경계가 명확했다”며 “반면 현재는 이런 이분법적 구분이 의미를 잃고 구상 작업에서 비현실적·초현실적 요소가 발견되고, 추상에서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는 등 보다 자유롭게 혼재된 형태가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저주받은 이미지'로 유명한 콘텐츠들은 전다화의 손을 통해 회화로 재현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는 이어 “관련 작업을 찾아보던 중 젊은 작가들의 작업이 눈에 띄었고,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며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초현실 작품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젊은 작가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런 경향은 시대의 변화를 극명히 드러내 주는 징후”라고 짚었다.

특히 회화 작품들을 모았다. 조나현 학예연구사는 “기묘한 판타지를 담은 세계를 그릴 때 ‘환영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맞닥뜨린 작가들은 여러 표현 방식을 연구하는데 회화는 빠질 수 없는 전통적인 매체”라며 “또한 지금 시대의 회화는 과거와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동시대 회화의 경향을 읽어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주요 포인트”라고 말했다.

김민조는 목적지 없이 어디론가 떠나는 배, 비행기 등의 모습을 그렸다. 행선지는 어디일까. 사진=김금영 기자

그저 MZ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는 데 그쳤다면 방향을 잃고 그저 그런 전시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시 현장에서는 이들의 작품에서 발견한 공통점,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는지 살펴보고 고심한 흔적이 여실히 느껴졌다.

서울대학교미술관 심상용 관장은 “지난 전시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작가편’이 전혀 상관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 시대의 사회, 공동체, 관습 등의 현실과 긴밀하게 맞물린 예술의 위치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접근했다면, 이번 전시는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함축된 코드를 읽어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추구해야 할 가치도 없고, 의심의 여지 없이 받들어야 할 진리도 없는 삶을 드러낸 작가들의 작품들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균열을 내 일상을 의심하고 다시 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미술관 심상용 관장.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명에서 ‘자아 아래 기억’은 과거, ‘자아 위 꿈’은 미래를 상징한다고 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자아, 그리고 자아는 개인이 지닌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흔히 목표, 이상향으로 그리는 미래는 꿈으로 대변되곤 한다. 이번 전시는 이 과거와 미래 사이 현재에 서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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