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8호 김응구⁄ 2024.03.20 17:42:35
두 가지를 합쳐서 하나의 성과를 내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쉽게 접근한다고 무조건 실패율이 높거나 어려운 만큼 꼭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마케팅은 어렵고 또 어렵다.
국내 주류업계의 이종(異種) 결합은 오래된 일이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유통·판매 방식에서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스마트오더(Smart Order) 시스템이 소비자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주류의 하이브리드 마케팅을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나는 주류기업 쪽에서, 다른 하나는 유통기업 쪽에서. 그중 주류기업은 마케팅 대상이 ‘연예인’이다.
이제 유명인은 이름만 내걸지 않는다
소문난 애주가인 가수 성시경은 지난해 9월 2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자에겐 처음 공개하는데, 내 이름을 건 술을 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영상에는 배우 하정우가 출연했다. 둘은 음식과 술을 즐기며 근황을 주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성시경은 라벨이 없는 막걸리 세 가지(6도·8도·12도)를 선보였다. 하정우는 이 술들을 차례로 마신 후 12도짜리를 두고 “이건 무조건 출시해야 할 것 같다”고 평했다.
하정우의 바람대로 성시경의 소속사 에스케이재원은 올해 2월 21일 막걸리 ‘경(璄)탁주 12도’ 출시를 알렸다.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따 브랜드 이름을 지었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 제품은 무(無)감미료, 고도주(高度酒) 막걸리다. 인공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았고, 알코올도수는 12도로 높은 편이다. 오직 쌀, 누룩, 물만 사용했다.
성시경이 이 막걸리를 직접 만드는 건 아니다. 그와 손잡은 주류 제조 스타트업 ‘제이1’이 충남 당진의 신평양조장을 통해 위탁 생산한다. 성시경은 맛과 디자인을 감수한다.
신평양조장은 3대째 이어오고 있다. 설립 연도가 1933년이니 90년이나 됐다. 이미 ‘백련막걸리’로 유명해 애주가라면 모를 리 없는 곳이다. 그간의 ‘활약’도 화려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인 2009년에는 청와대 만찬주로 백련막걸리가 올랐다. 2014년에는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73번째 생일 만찬주로 ‘백련 맑은 술’이 선정돼 한동안 ‘회장님 술’로 화제가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캐주얼 다이닝 한식 주점 브랜드 ‘부엉이산장’과 함께 만든 ‘아울막걸리’를 출시했다.
성시경은 경소주, 경사케, 경하이볼, 경위스키 등의 상표 등록도 출원해, 앞으로 ‘경(璄) 시리즈’를 차례로 낼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싱글몰트에 투자하고 레몬사와 만들고
자신의 이름을 딴 술을 내는 셀럽들은 이제 이름이나 얼굴만 빌려주지 않는다. 달리 얘기하면 그런 방식은 지금의 주류시장에서 소비자의 구매심리를 자극하지 못한다. 이에 술 개발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기획, 제조, 마케팅 등을 양조장과 함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종도 막걸리뿐만 아니라 소주, 위스키, 맥주 등 다양해졌다. 양조장 입장에선 이제 그들을 모시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비즈니스로 인식한다.
성덕(성공한 덕후)의 끝은 론칭일까. 배우 박성웅은 지난해 12월 싱글몰트위스키 ‘버지니아 C&C, VHW’를 론칭했다. 평소 싱글몰트 마니아였던 그가 직접 테이스팅을 거쳐 론칭까지 이었다. 이 제품은 아메리칸 위스키 중에서 유일하게 국제 기준에 맞춰 싱글몰트위스키를 만드는 버지니아 증류소가 생산한다. 박성웅은 이 위스키에 직접 투자한 데 이어 홍보 앰배서더로도 나섰다.
박성웅은 “차별화한 숙성공법에 짙은 오크(참나무)의 풍미, 그리고 달콤한 과일 향과 몰트의 감칠맛을 동시에 음미할 수 있는 버지니아 C&C에 매료돼 앰배서더 겸 회사의 주주가 됐다”고 밝혔다.
버지니아 C&C 측은 3월 20일 오후 6시 서울 잠실 KT 송파타워 2층 어물전청 잠실점에서 시음회를 연다. 이날 현장에는 박성웅이 직접 참석해 위스키 마니아들과 소통할 계획이다.
수제맥주 업체 부루구루는 걸그룹 티아라 출신 배우 효민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 12월 6일 그와 함께한 RTD(즉석간편음료) 제품 ‘효민사와’를 선보였는데, 출시 이후 2주 만에 20만 캔을 팔아치웠다. 이 제품은 일본에서 즐겨 마시는 레몬 맛 사우어(sour)로, 일본에선 ‘레몬사와’로 발음한다. 희석식 소주에 레몬즙과 탄산수를 섞어 만든다.
효민은 본인의 장점을 살려 개발 전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그에겐 일식 조리 자격증이 있다. 당도나 산도를 결정하는 레시피를 직접 리드하며 개발하거나 일본 레몬사와와 달리 까나두(canadou) 사탕수수 시럽을 사용하기도 했다. 자신의 생일인 5월 30일에 맞춰 알코올도수를 5.30도로 정한 것도 효민의 아이디어다. 홍보 전략도 그의 아이디어가 한몫했다. 광고 촬영은 물론 ‘헤메스(헤어·메이크업·스타일링)’까지 살뜰히 챙겼다.
효민은 “평소 즐겨 마시는 레몬사와를 좀 더 편하게 마실 방법을 생각하다가 제품으로 만들게 됐다”며 “이름을 걸고 만든 제품이어서 더욱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부루구루는 배우 이엘과도 뭉쳤다. 지난해 12월 20일 ‘이엘코냑하이볼’과 ‘이엘프렌치커넥션’ 등 하이볼 2종을 출시했다. 이어 2주 만에 누적 판매량 40만 캔을 돌파했다. 평소 와인·코냑에 관심이 많은 이엘은 프랑스어에도 능통해 직접 프랑스 코냑(Cognac) 지방에서 생산자와 만나는 등 개발에 참여했다.
편의점도 셀럽 마케팅 가세... GS25는 AOMG, CU는 츄
편의점도 가만있지 않았다. GS25는 지난해 9월 국내 힙합 레이블 AOMG와 함께 기획한 스파클링 와인 ‘AOMG 스파클링(모스카토)’을 단독출시했다. 750㎖ 용량에 6000병 한정 수량이었다. 이 패키지에는 LP 모양의 코스터(컵받침)까지 들어있다.
GS25는 한정판 스페셜 패키지 2종도 선보였다. 한 가지는 이번 협업을 기념해 특별 제작한 LP 음반과 와인 세트다. LP에는 사이먼 도미닉, 로꼬 등 AOMG 소속 뮤지션들이 참여한 넘버가 실려있다. 또 하나는 샴페인 플루트 글라스와 함께 구성한 세트다.
스파클링 와인, LP 코스터, LP, 플루트 글라스 등 전 제품 포장에는 그라피티로 특별히 디자인한 AOMG 스페셜 로고를 담았다.
CU는 2월 7일 가수 츄(CHUU)와 협업해 만든 하이볼 RTD ‘츄-하이’ 2종을 선보였다. 일본식 츄하이 중 가장 인기인 복숭아 맛을 한국인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피치’와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리치’ 두 가지다.
츄하이(チューハイ)는 실제 일본에 있는 주종이다. 츄-하이와 마찬가지로 희석식 소주에 과즙과 탄산수를 넣은 하이볼이다. 단어는 소츄(しょうちゅう·소주)에 하이볼(ハイボール)을 더해 만들었다. 일본에선 마트·편의점 등에 츄하이 전용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젊은 층에 인기가 높다.
이처럼 셀럽을 내세운 주류기업·양조장은 높은 홍보 효과와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셀럽 역시 자신의 관심사를 비즈니스에 적극 활용하면서 수익 창출까지 노릴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셀럽과의 협업은 한동안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H&B·햄버거·패션 시장도 주류 끌어들여
주류는 이제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만 판매하지 않는다. 의외의 곳에서도 반가운 만남이 이뤄진다. H&B(헬스&뷰티) 매장이나 햄버거 가게에 이어 최근 패션업체도 주류 판매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주류업계보다 이들 시장이 하이브리드 마케팅 일환으로 술을 선택하는 모양새다.
국내 H&B 시장 1위 기업인 CJ올리브영 매장에서 와인 같은 술이 눈에 띄는 건 이제 별달리 새로울 일도 아니다. CJ올리브영은 2022년 3월 정관(定款) 내 사업 목적에 ‘주류 제조업 및 도소매업’을 추가한 데 이어, 10월에는 70여 매장에서 주류 판매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지난해에는 판매 매장이나 주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매장 대부분에서 주류를 팔고 있다.
주종도 다변화했다. 처음에는 하이볼, 칵테일 캔, 컵 와인, 과일향 에일 맥주 같은 RTD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술 종류가 무척 다양해졌다. 위스키, 와인, 하드셀처에 전통주까지 가세했다. 특히, 서울 코엑스몰점은 대형 보틀숍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치킨·버거 프랜차이즈 KFC는 2월 6일 버거펍(burger pub) 콘셉트의 압구정로데오점을 새로 오픈했다. 여기선 드래프트 맥주(생맥주)나 맥주 칵테일, 하이볼 RTD를 판매한다. 이들과 함께 먹기 좋은 메뉴로 구성한 ‘스낵버켓’ 3종류(프렌치프라이·닭껍질튀김·텐더)도 내놨다.
이곳은 ‘콜키지 프리’ 매장이다. 자신이 마실 술을 직접 가져와 즐겨도 된다. 이 서비스는 현재 각종 소셜미디어(SNS) 등에 소개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KFC 측에 따르면 주말 낮에도 콜키지 프리를 이용하는 고객이 많다. 조만간 주종을 더욱 다양화해 압구정로데오점만의 특별함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KFC는 현재 전국 150여 지점에서 드래프트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패션업계도 주류 판매에 뛰어들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 계열사 한섬은 3월 25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이 자리에서 신규 사업 목적으로 ‘주류판매업’을 추가하는 정관 변경안을 의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섬은 현재 서울 성수동의 의류 편집숍 EQL 그로브에서 음료 등을 파는 F&B(식음료) 매장을 운영 중이다. EQL 그로브는 한섬의 온라인 편집숍 브랜드 EQL의 첫 오프라인 매장이다. 한섬은 또 성수동의 MZ세대 특화 매장 톰지(TOMG)의 한 개 층을 F&B 브랜드와 협업 공간으로 활용 중인데, 지난해 10월 말부터 3개월가량 타코 매장과 협업해 맥주, 테킬라, 칵테일을 한시적으로 판매했다.
유통 전문가들은 H&B·패션 매장 등의 이 같은 행보가 소비자의 체류 시간을 늘려 매출 증대 효과까지 얻으려는 전략인 것으로 분석했다. 무엇을 구매할지가 분명하고 그 필요가 끝나면 매장을 나가지만, 주류를 판매하면 체류 시간이 늘어나는 데다 또 다른 매출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경험을 선호하는 MZ세대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이들을 적극 끌어들이려는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