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0호 김예은⁄ 2024.04.19 10:15:06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1년 초저출산국(출산율 1.3명 미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18년 처음으로 1명 미만(0.977명)을 기록했다. 매해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4분기 0.65 명으로 추락했다. 지난해 연간 기준 국내 합계출산율은 0.72명 수준으로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OECD 회원국 평균인 1.58명(2021년 기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같은 저출산 심화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논의되는 가운데 자녀를 낳았을 때 생기는 여성의 경력 단절 우려가 합계출산율 하락의 40% 정도를 설명한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출산율 감소가 여성의 합리적 선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덕상 연구위원과 한정민 전문연구원은 16일 ‘여성의 경력 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 보고서를 통해 “경력 단절을 우려하여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며, “이 같은 여성의 선택은 출산율 감소의 40%가량을 설명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고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소득이 높으면 출산율이 같이 상승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양질의 공교육이 확대되고, 공적·사적 보육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소득이 많아지면 아이를 적게 낳던 과거의 상관관계가 약해진 것이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출산율 역시 함께 상승하는 모습이 나타나며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정도가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한국 역시 소득수준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꾸준히 증가했지만 2010년대 이후 출산율은 급격하게 하락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왔을까.
보고서는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없는 노동시장 환경이 지속되면서, 경력 단절 우려로 커리어를 유지한 채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근거로 30대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은 2015년 29%에서 지난해 24%로 5%포인트가 낮아졌다. 반면, 같은 기간 30대 자녀가 없는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은 28%에서 9%로 19%포인트나 급감했다. 이는 청년 여성이 성별만으로 고용에서 겪는 불이익은 감소했지만, 출산 후 겪는 경력 단절에 대한 불이익은 비교적 정체된 탓에 상대적으로 ‘차일드 페널티'(child penalty: 출산 및 육아 불이익)’는 커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같은 분석은 국내 여성들의 자녀 유무에 따라 겪는 출산 페널티를 수치화한 첫 시도다. 연구진은 “지난해 기준 30대 여성이 출산을 포기하면, 보수적으로 봐도 경력 단절 확률을 최소 14%포인트 이상 줄일 수 있다”며 “커리어 지속에 따른 임금 상승까지 감안할 때 개인의 평생 소득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출산 기피는 여성 개인에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의미다.
연구진은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의 부담이 비대칭적으로 과도하게 쏠려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이러한 경향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OECD 국가에서 남성의 육아 및 가사 참여도와 합계출산율은 일정한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는데, 남성 가사 참여도가 20%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에 비해 80% 수준을 기록한 스웨덴의 경우 합계출산율이 약 55%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석은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의 부담이 과도하게 쏠려있는 비대칭성이 완화되고 여성이 출산하더라도 경제적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일수록,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소득, 출산율이 모두 높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과 여성이 직면한 출산 및 육아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이 시행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한 우리 사회의 출산율을 제고함은 물론 인적자원 훼손을 방지하여 노동생산성 증가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도록 10년 이상의 장기적 시계로 일·가정 양립 환경에 대한 지원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육아기 부모의 시간 제약을 완화할 수 있는 재택 · 단축 근무 제도와 이를 지원하기 위한 보조금 정책의 확대, 남성의 영유아 교육 · 보육 비중 확대를 통한 여성의 비대칭적 육아 부담 경감 등이 대책으로 제시됐다.
이러한 가운데 KB국민은행이 금융업계 최초로 도입한 ‘재채용 조건부 퇴직 제도’가 올 상반기부터 본격화되며 경력 단절 개선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KB국민은행은 2024년 상반기부터 도입한 재채용 조건부 육아 퇴직 제도가 첫 접수에서부터 신청자가 45명을 보이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이 쏘아올린 '재채용 퇴직제도' 시도
KB국민은행은 지난해 8월 육아휴직을 쓴 직원이 퇴직할 경우 3년 뒤 다시 채용하는 기회를 주는 ‘재채용 조건부 퇴직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경력 단절 우려를 상쇄시키는 KB국민은행의 이 같은 조치로 직원들의 육아 기간은 5년으로 확대됐다. 이 제도를 이용할 경우 해당 직원은 육아휴직 2년을 포함해 최대 5년 동안의 육아 기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직원은 육아휴직과 퇴직 이후 3년 내에 별도 과정 없이 다시 KB국민은행에 채용되며, 재채용 시 퇴직 직전 직급으로 원복되어 급여도 유지된다. 5년 기간 동안 노사협의를 통해 오른 급여만큼 복직 후에도 동료 직원과 동일 급여를 받게 된다.
이 같은 제도는 퇴직 기간의 경력 공백이 불가피하지만 '육아로 인한 퇴직 시 경력 단절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은행도 이같은 정책을 도입해 육아로 인한 퇴직 3년 후 재채용 시 퇴직 전 호봉을 인정해 주는 ‘재채용 조건부 육아 퇴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돌봄 공백 대안, 365일로 확대되는 '육아 돌봄사업'
한편, 육아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돌봄센터 확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KB금융은 지난 2018년부터 총 1250억 원을 투입해 아이들의 돌봄 공백 해결을 위한 온종일 돌봄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의 초등돌봄교실 및 국·공립 병설유치원의 신·증설 지원을 위해 750억 원을 투입해 총 2265개의 국·공립 병설유치원 및 초등돌봄교실을 신·증설했다. 지난해 2월부터는 5년간 총 500억 원을 투입해 전국에 거점형 늘봄센터를 개관하고 있다.
KB금융이 진행하고 있는 거점형 늘봄센터는 맞벌이 가정의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도록 초등학생들에게 돌봄 및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평일에는 저녁 7시까지, 방학 기간에도 운영된다.
이 밖에도 KB금융은 지난달 23일 전국 최초로 주말에 운영되는 돌봄 시설을 열어 주말에 근무하는 맞벌이 가정을 지원한다. 꿈낭 초등주말돌봄센터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오전·오후반으로 구성된 ‘정규반’과 갑작스럽게 돌봄이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일시돌봄반’ 등을 통해130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다.
하나금융도 금융권 최초로 '365일 꺼지지 않는 하나돌봄어린이집' 지원 사업을 실시한다. 해당 사업은 주말·공휴일·정규 보육 시간 이외에 돌봄 서비스를 운영하여 보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나금융의 365일 꺼지지 않는 하나돌봄어린이집 지원 사업은 향후 5년간 300억 원 규모로 ‘주말·공휴일형’ 47개소와 ‘365일 형’ 3개소 등 총 50곳의 어린이집에 돌봄 공백 보육 사업을 지원한다. 365일 형은 돌봄 서비스는 365일 24시간 원하는 다양한 시간대에 돌봄 보육이 가능하며, 기존 어린이집에 운영되고 있는 반과 별도로 운영된다. 주말·공휴일형 돌봄 서비스는 주말과 공휴일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남성의 육아 기여도 확대를 위한 정책 움직임
이 밖에도 여성의 비대칭적 육아 부담 경감을 위한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 확대 제도가 올해 1월부터 도입됐다. 정부는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6+6 부모 육아휴직제’를 도입해 부모가 함께 육아휴직을 쓰면 첫 6개월간 기존 월급만큼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도 최대 450만 원으로 늘어 부부 합산 월 최대 9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현재 금융권의 육아휴직 제도를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의 경우 육아휴직 기간은 여성 직원 2년, 남성 직원 1년 6개월이다. 급여는 1년만 지급하며, 기간은 3회 분할해 사용할 수 있다.
하나은행은 남녀 모두 2년의 육아휴직을 부여하며 1년간 유급으로 진행된다. 이와 함께 임신기 단축근무, 자녀 초등학교 입학 시 3월 한 달간 10시 출근 등 단축 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우리은행 역시 남녀 모두 2년이며 휴직일로부터 22주(6개월)는 전액, 22주~1년까지는 월 급여의 25%, 나머지 기간은 무급이다.
신한은행은 남녀 동일하게 출산 전후 2년의 육아휴직이 가능하다. 휴가 직후 약 5~6개월간 정상급여, 이후 휴직 1년까지는 월 기본급의 27%가 제공된다. 나머지 기간은 무급이다.
IBK기업은행은 2019년부터 모든 부모에게 육아휴직 최대 3년을 보장하며 금융권 최초로 육아휴직 3년 시대를 열었다. 이어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에서도 육아휴직 3년 제도를 차례로 시행했다. 다만 이들 국책은행의 경우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에 의거해 정부에서 지급하는 육아휴직 급여와 중복 지급이 불가능해 육아휴직 기간동안 무급이 적용된다.
김나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기획팀장은 지난해 말 제3차 육아 정책 심포지엄에서 “육아휴직 등 시간 지원제도의 남성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제도 활용의 강제성을 높이는 방식이 필요하다”면서도, “휴직이 아닌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업무의 연속성 확보는 물론 전문성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