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5호 천수림(사진비평)⁄ 2024.07.02 10:57:40
“어쩌면 인류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특정 동물종의 발전상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했던 사람이 다시금 유인원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 이상한 희극의 결말에 관심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말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틈 사이에서 인간의 관계와 유대감에 대해 관심이 많은 천경우는 어쩌면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했던 사람을, 인간의 저 밑에 놓여있는 욕망과 사랑의 속성을 끄집어내는 안옥현은 어쩌면 인간의 이상한 희극에 관심이 있는 작가일 수도 있다. 인성과 신성 사이 그 어디에서 헤매는 특이종을 우리는 ‘인간’이라 지칭했다.
천경우, ‘경청자들:LISTENERS’
천경우는 사진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실험으로 현대미술계에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인간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 현장에서 이뤄지는데 결과물은 사진과 당시 설치현장의 재현을 통해 재소환된다.
플랫폼엘에서 진행된 ‘경청자들:LISTENERS’(3월 23일~6월 23일) 전시에서는 핀란드 헬싱키 비엔날레 커미션작 ‘버드 리스너(Bird Listener, 2021)’ 인도 고아 지방의 어린이들이 참여한 사진 신작 ‘레조넌스(Resonance, 2023)’,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영상작품 ‘송스 위다웃 리릭스 II(Songs without Lyrics II, 2023)’ 등이 국내에서는 처음 소개됐다.
이번 전시는 대중의 참여로 이뤄진 사진, 영상, 퍼포먼스와 설치, 프로젝트 기록 등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연구해온 작가의 궤적을 따라갔다.
레조넌스는 인도 남서부 고아 지방의 어린이합창단이 함께 참여한 사진 시리즈다. 작가는 열대우림에서 자연과 가까이 살며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는 어린이들에게 숲과 식물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참가자들은 각자 불러주고 싶은 노래를 정한 후 연습했다. 사진엔 실제로 노래를 불러주는 동안의 시간과 움직임의 과정이 담겼다. 아이들은 나무에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는 프로세스에 따라 촬영했고, 최종 이미지는 나무 사이에 있는 어린이들의 흐릿한 뒷모습이 담겨 있다.
천경우는 오래 전부터 장시간 노출을 통해 시간을 중첩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시간의 중첩은 그가 ‘사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 수 있는 증거다. 그는 사진(寫眞)을 조선시대 초상화를 일컫는 데서 착안했다. 이때 그의 사진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영혼의 초월을 의미한다. 몇 분, 한 시간, 길면 하루 등 장시간 프로젝트를 통한 축적을 통해 비로소 사진 한 장이 완성된다.
천경우는 시간의 중첩 외에 우리 자신과 타인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런 그의 철학은 ‘해석의 감각(Sense of Interpretation, 1997+2024)’에서 엿볼 수 있다. 조색된 젤라틴 실버프린트와 40명의 손 글씨 사진 40장과 빈티지 프레임으로 구성된 사진 설치작품인 ‘해석의 감각’은 두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다.
작가가 1997년 이스탄불에서 만난 사람들을 촬영한 두 장의 사진을 보여준 후 사진에서 느껴지는 감정 그대로 한국어로 직접 쓴 글씨를 쓴 편지형식의 글을 촬영한 후 작가에게 전송해주는 프로젝트다.
사진엔 젊은 청년들이 수영하는 모습과 햇살 드는 창가에서 한 여인이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습이 담겼다. “은은한 유리창으로부터의 햇빛을 등지고 한 여인이 어두운 실내를 바라보며 무언가 상념에 잠겨 있다.”, “물결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고 사진의 하단 부분은 거친 바위의 질감이다. 바닥의 맨 앞에는 초점이 맞지 않은 식물의 일부가 흐릿하게 보인다.” 참가자들은 이렇게 사진 두 장을 놓고 보이는 데로 서술하기도 하고, 각자 이야기를 상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진 연작 ‘엄지의 법칙 #1-#6(Rule of Thumb)’은 스마트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도록 유도한다. 액정 속 세계와 마주한 손의 형상이 담겨 있지만 미세한 상처와 균열이 보인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기계와 인터넷 시각 이미지, 손가락 감각에 의존한 현 시대의 일상을 담고 있다. 제목은 서구의 관용어 Rule of Thumb(엄지의 법칙)를 역설적 제목으로 차용했다.
인도 수나파란타고아예술센터(Sunaparanta Goa Centre for the Arts)의 큐레이터이자 프로그램 디렉터인 레안드르 드 수자(Leandre D´Souza)는 “천경우는 인간 행동의 복잡성이 모든 상황의 결과를 결정한다는 가정을 전략으로 삼는다. 그는 실험을 계속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전제조건을 수정해 나간다. 반복적인 작업 속에서 인간성과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대한 매핑이 완성되기 시작한다”고 평했다.
언제나 우리는 나와 타인, 세상과 우주로 연결돼 있고,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가 지시한 사진촬영의 조건과 퍼포먼스, 영상 작업은 늘 그 틈의 평범한 자각을 이끌어낸다.
안옥현,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서로 신성함으로 이끈다’
안옥현은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통해 개인의 욕망과 사랑, 죽음과 치정의 서사가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 독일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와 영화감독 헬무트 디틀이 공동 작업한 시나리오와 에세이를 엮은 ‘사랑’을 떠올려보자.(시나리오 작업은 영화 ‘사랑의 추구와 발견’(2005)으로 제작됐다.) 특히 쥐스킨트는 사랑하는 이를 되찾아 오기 위해 죽음과 맞서는 시인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소환한다.
“오르페우스는 그 점에서 우리와 아주 가깝다. 기뻐 어쩔 줄 모르다가도 금세 변덕을 부리고, 맹목적인 용기는 없으나 어느 정도 문명화돼 있고, 빈틈없고 현명하나 완전히 치밀하지는 못하다는 점에서 그는 우리와 닮았다. 또한 오르페우스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인간이었다. 아니, 바로 그 좌절 때문에 그는 의심할 바 없이 더 완전한 인간이었다.” - ‘사랑’ 277p
우리는 그런 면에서 오르페우스의 후예들일까. 상업화랑 사직에서 진행된 안옥현의 개인전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서로 신성함으로 이끈다’(5월 9일~6월 1일)는 그간 관심을 뒀던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죽음을 문턱에 둔 노년의 사랑과 질투, 욕망을 다룬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유교적인 가치를 내세운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노년의 사랑이나 욕망을 터부시해왔다.
2015년 ××농약사이다 사건을 모티브로 한 비디오 ‘사랑의 전당’(단채널비디오, 사운드, 14분)은 80세가 넘은 노인들 간에 벌어지는 치정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보여준다. 오페라 팔리아치의 2막의 구조를 빌려온 사랑의 전당엔 영상 속의 연극, 연극 속의 영상이 혼재됐다. 극중 극 형식은 특히 무대 위의 배우와 아내의 불륜을 혼동해 연극 도중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이는 내용과 형식이 정교하게 맞물린다.
사랑의 전당엔 배우 정동환과 정영숙 배우가 출연해 한편의 무대를 완성했다. 팔리아치와 달리 이번엔 여성이 불륜을 저지른 남성을 여러 번 칼로 찌르는 장면이 등장했다. 작가는 찔러 죽인다는 서사보다는 반복적으로 찌르는 행위에 초점을 두었다. 어쩌면 이 잔혹한 행위는 연극이어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이 막을 내리면 낡은 단독주택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는 노인남녀(부부)의 한가한 오후를 보여준다.
여인은 남자를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지만 남자는 상념에 잠겨 있는지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여인은 미소를 거두고 서늘한 표정을 남긴 채 영상은 끝을 맺는다. 우리가 봤던 것은 무엇일까. 한편의 연극인지, 혹은 실재인지 모호한 채 끝나버리는 영상 말미에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휴(Jean-François Hue)의 ‘사랑의 신의 섬(L'île d'Amour, 1751)’ 그림이 등장한다.
사랑의 전당 비디오 작품과 함께 전시된 사진연작 ‘여자와 남자는 서로 신성함으로 이끈다’엔 영상작품과 대비된 남녀의 누드사진과 낭만적인 빛깔을 지닌 소라를 찍은 오브제 작품이 등장한다. 작가는 두 남녀 모델에게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뽐내달라’고 주문했다. 사진 찍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의 죽음’에서 늙은 예술가 아쉔바흐가 미소년에 매혹당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자각을 한다.
젊은 몸을 찬미하는 사진과 함께 미국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클리프 점핑(Cliff jumping) 사진은 앞서 설명한 비디오 작품 사랑의 전당에 등장한 늙은 몸과 대비된다. 클리프 점핑의 떨어짐처럼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안옥현이 질문을 던진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서로 신성함으로 이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가 소개>
천경우(b. 1969 Kyungwoo Chun)는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문화권에서 실험적인 사진과 대중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퍼포먼스, 영상, 설치, 공공미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외 다수의 전시와 과정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 경력을 갖고 있으며 네덜란드 사진미술관 하위스 마르세유, 프랑스 막발 현대미술관,미국 LA 카운티미술관, 덴마크 오덴세 사진미술관, 폴란드 라즈니아 현대미술관과 국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뮤지엄 한미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영구 소장돼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안옥현(b. 1970 Okhyun Ahn)은 사진과 비디오 작가다. 홍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 디자인을 뉴욕SVA대학원에서 사진과 비디오를 전공했다. 안옥현은 서로 이질적인 전형들 사이를 미묘하게 떠돌면서 불편하고 불확실한 감정들을 표면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뉴욕, 스톡홀름 등지에서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서로 신성함으로 이끈다’, ‘사랑에는 이름이 없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본 세상’, ‘호모 센티멘털리스’ 등 12차례의 개인전과, 2018년 광주 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쌈지 레지던시(서울), ISCP (International Studio and Curatorial Program, 뉴욕), AIM ( Bronx Museum, 뉴욕) 레지던시에 참가했고 사진비평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등에 작품이 소장됐다.
글: 천수림(사진비평)
이미지 제공: 플랫폼엘, 상업화랑 사직